[영화제소식]
할리우드 뮤지컬의 ‘백조의 노래’
2008-09-10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사랑은 비를 타고>

<사랑은 비를 타고> | 스탠리 도넌, 진 켈리 | 1952년 | 103분 | 컬러 | 야외 및 특별상영

<사랑은 비를 타고>(1952)는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이 공동으로 연출한 뮤지컬이다. 바로 얼마 전에 개봉 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파리의 미국인>(1951)과 더불어 할리우드 뮤지컬의 최고작으로 종종 소개된다. <파리의 미국인>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이 영화는 원래보다 개봉이 늦어졌다. 두 영화 모두 진 켈리가 주연이기 때문에 제작사인 MGM은 켈리의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자 개봉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이던 진 켈리는 두 작품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뮤지컬 스타로 등극한다.

진 켈리와 협연했던 코스모 역의 도널드 오코너는 어릴 때부터 춤의 신동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영화 속에서도 그의 신기에 가까운 춤 솜씨가 여러 번 나온다. 특히 그가 혼자 연기하는 ≪Make’ Em Laugh≫는 압권인데, 그러나 얼마나 동작이 어렵고 과격한지 촬영이 끝난 뒤 그는 3일 동안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더욱 불쌍한 것은, 촬영한 필름이 모두 훼손돼 그는 그 어려운 장면을 다시 찍어야 했다.

여배우 데비 레이놀즈는 19살의 신인이었는데, 제작자 루이스 메이어의 캐스팅이었다. 노래와 춤 모두에서 못한다고 진 켈리로부터 엄청난 지적을 당했다. 진 켈리의 소개로 뮤지컬 선생을 만나,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는 맹훈련을 받아야 했다. 진 켈리, 도널드 오코너와 함께 부르는 ≪Good Morning≫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촬영을 마친 뒤 그녀는 실신했고, 하이힐을 벗겨보니 발이 상처를 입어 피가 고여 있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최고의 장면인 뮤지컬 속의 뮤지컬인 ‘브로드웨이 멜로디’는 시드 채리스라는 섹시 스타의 매력을 마음껏 펼치는 순간이다. 데비 레이놀즈가 연기하기에는 너무 어른스런 역할이었다. 채리스는 키가 커, 진 켈리 옆에서 춤을 출 때는 항상 똑바로 서지 않고 무릎을 구부린 채 서 있어야 했다. 뮤지컬의 역사, 더 나아가 영화의 역사를 반추하는 이 시퀀스는 소위 <사랑은 비를 타고>가 자기반영적인 시점까지 확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뮤지컬이 비로소 어른스러워진 것이다.

관객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은 진 켈리의 ≪Singin’ in the Rain≫은, 비 장면을 잘 보이게 하도록 비에 우유를 섞었다. 우리에겐 참 멋있어 보이는 동작들인데, ‘춤의 도사’라는 켈리도 우산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위해 계속 연습을 반복해야 했다. 무려 36시간이나 비를 맞으며 찍은 뒤, 영화 속의 그 장면이 완성됐다. <사랑은 비를 타고>를 통해 뮤지컬은 정점에 올랐고, 이후로 뮤지컬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러니 이 영화는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백조의 노래’와 비슷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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