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켄 로치] “착취 논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
2008-09-23
글 : 장영엽 (편집장)
<자유로운 세계>의 감독 켄 로치

앤지의 삶은 팍팍하다. 그녀는 30대 싱글맘이며, 성희롱에 반발했다가 일자리에서 내쫓겼다. 앤지가 텅 빈 공터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줄 서라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지 않았다면, 여권 없으면 일자리도 없다고 매정하게 돌아서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그녀를 영락없는 켄 로치 영화의 노동자 여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세계>는 여성 고용주 앤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늘 노동자의 편에 서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바라봤던 켄 로치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서 현재 영국사회를 조명한다. <씨네21>은 켄 로치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변화에 대해 직접 물었다.

-이주노동자 얘기는 <빵과 장미> 이후 두 번째다. 이 주제를 선택한 배경이 궁금하다.
=잘 알려졌듯이 굉장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영국에 살고 있다. 이들은 불법으로 영국에 체류하는 등 약점이 많기 때문에 손쉽게 착취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경찰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 없다. 이건 현재 영국사회의 거대한 문제인데, 영화적으로 말할 거리도 많은 소재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선택했다.

-<자유로운 세계>는 고용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다. 왜 하필 그들의 시점인가.
=그들의 착취 논리가 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용자들은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을 받길 원하고, 결국 임금을 적게 주려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나 착취 논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도 사람다운 면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여주인공 앤지도 영화에서 그들을 착취하다가도 집으로 불러 따뜻한 빵과 수프를 대접한다. 고용주의 이런 면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착취 논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고용자를 여자로 설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영화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객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싶었다. 이에 따라 폴 래버티는 성적으로 희롱당하고, 싱글맘이고,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관객은 그녀를 더이상 동정하지 않는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앤지가 저지른 일을 보고 느낀 관객은 결국 그녀를 외면하게 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고용주를 만났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시나리오작가 폴 래버티는 취재를 위해 북스코틀랜드와 애버딘, 맨체스터, 런던과 서부 도시를 돌았다. 나도 다양한 배경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우리가 보고 들은 이야기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특별히 어떤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스물네 시간 동안 잠도 못 자고 일하는 이주노동자- 아마도 중국인일 거라 생각된다- 를 만났는데 충격적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나.
=짧게는 낙관적이라고 보기 힘들겠지만 길게 보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 경제는 재정 위기로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란 불안정하며 불평등을 심화한다. 미래를 기대하려면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잘 조직되어 있고, 얼마나 잘 싸우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

-당신의 영화에서 종종 노동자들은 (그것의 결과가 어떻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가.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단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다. 나는 영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기는 무척 힘든 환경이라고 본다. 일단 그들은 언어문제가 있어 쉽게 화합할 수 없고, 불법체류자가 많기에 서로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물론 노조를 결성하는 장면을 아예 안 찍은 건 아니다. 파업을 시도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촬영했지만, 이는 우리 영화의 흐름에 맞지 않는 장면이라 생각해 제외했다.

-당신은 비전문배우를 기용하고, 배우에게 완성된 대본을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건 사실이다. (웃음) 나는 그런 설정에서 예측되지 못한 연기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배우는 언제나 장면과 인물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원한다. 배우로서 그런 즉흥성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그렇게 해야만 더 흥미로운 영화가 나올 수 있다. 참고로 앤지와 로즈, 캐롤을 연기한 사람은 배우이고, 폴란드인으로 출연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비전문배우다. 그중에는 런던 부둣가에서 일하는 인부도 있다.

-키어스턴 웨어링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기간의 오디션을 거쳐 뽑힌 배우다. 우리(제작진)는 거의 모든 배우들을 직접 만났다.한 400명은 만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이번 여름에 영화 한편을 찍었다. 축구팬에 관련된 영화인데 축구 천재 에릭 칸토나에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자유로운 세계>보다는 훨씬 밝고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가 될 듯하다.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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