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가 재현해낸 1930년대의 경성은 과거의 죽은 시간이 아니라 눈앞에 타오르는 현실처럼 생생하다. 오랜 시간 CG와 색보정에 공을 들인 영화답게, 명동성당과 미쯔비시 백화점 옥상, 경성역, 숭례문, 경회루 등지를 가로지르는 도시의 밤과 낮은 눈이 부시게 매혹적이다. 당대를 다룬 기존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모던보이>의 기술적 성취는 뛰어나다(자세한 내용은 <씨네21> 670호 참고). 하지만 시사회 다음날 진행된 인터뷰는 경성의 재현이나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불운한 시대 속,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대한 여러 질문과 답들로 채워졌다. 정지우 감독에게서는 <사랑니>의 흥행실패 이후, 대중과의 교감 지점에 대해 오랜 시간 고심한 티가 역력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와 개인의 욕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풀어가면서 겪은 내적 갈등과 부담 또한 느껴졌다. 하지만 민감하고 공격적인 질문들 앞에서도 그는 열정적으로 조목조목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영화의 서사적 틈을 묻기 위해 원작 소설과의 차이를 종종 언급한 질문자에게 그는 수차례 매체의 차이를 강조하며 영화를 그 자체로 읽어줄 것을 당부했다.
-개봉을 몇 차례 미루고 6개월간 편집에 매달렸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운가.
=나는 정해진 동선으로 합을 맞추어 촬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전제로 찍기 때문에 조합의 경우의 수가 많다. 현장에서 영화를 완성하는 타입이 있다면, 나는 편집실에서 완성하는 타입이다. 게다가 핸드헬드로 촬영을 했는데 이 정도 분량의 합성이 있는 CG를 핸드헬드로 촬영하는 건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개인적으로는 충무로에서 상업영화들에 주어지는 편집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고치고 수정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영화가 나왔는가의 여부를 묻는다면, 글쎄…. 그건 구체적인 내러티브처럼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정서적인 차원에서 어떤 쪽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데, 그걸 끝까지 유지해서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느냐의 문제 말이다. 물론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단순히 이야기를 맞추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서 영화화를 결심했나.
=원래 1930년대에 대한 매혹이 있었다. 당시의 음침한 이야기와 무드에 관심이 있었고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에 비해 소설은 유쾌한 편이었지만, 작가가 당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통찰이 새로웠다.
-각색, 촬영, 연기지도, 편집 등에서 기존에 고수했던 작업방식과 차이점이 있다면.
=돈의 압박 수준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커서 늘 마음이 쪼들리고 뭔가 쫓아온다는 느낌으로 찍었다. 그런 점이 괴로웠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다른 건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시대적 배경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나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방식에서 <사랑니>와의 거리가 큰 영화다. <사랑니> 때는 마치 우물물이 퍼져나가듯이 인물들의 미세한 마음의 떨림에서 시작해서 인물 밖 프레임까지 정서가 퍼져나간다면, 이 영화는 반대로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 자체는 일면 전형적인 구석이 있지만, 빛이나 공간의 공기와 같은 인물 외부의 뭔가가 인물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있다.
=공간이 네 번째나 다섯 번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당대의 경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전의 시대극에 비해 새로운 공간의 느낌이 묻어난다면 그건 과거에 비해 제작상의 현실적 어려움이 많이 해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서사가 일본의 공간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의 일본인 주류사회 안으로 캐릭터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예전 영화들이 보여주는 형태의 공간 안에서는 이 시대의 특수성을 정확히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공간에 매번 스며드는 뽀얗고 화사한 빛이 인상적이다. 이 시대를 반어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 같기도 하고 현실을 지운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사실 고증에 입각한 굉장히 현실적인 설정이다. 당대에도 전기 수급은 이루어졌지만, 도시 전체에 전기가 있던 시기가 아니었고 형광등이나 간접조명은 없었다. 광량이 부족했을 텐데, 그래서 오히려 직접적인 백열등의 느낌이 강했을 것 같다. 물론 조명이 주는 정서적인 상태를 무시할 수는 없다. 촬영을 하며 그런 부분이 관계의 내면을 반영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받았을 테고.
-영화가 그리는 경성은 일면 무국적적이고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당대에 대한 사료들도 많이 찾아보았을 텐데, 30년대 경성을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나.
=현재 유행하는 근현대에 대한 각종 사료들을 보면, 아무리 과거지만, 참으로 동세대적 감성이구나, 이미 이 시대는 현대구나, 라고 느낀다. 실제 30년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놀란 건 근대 경성이 완전히 현대화된 근대도시라는 거다. 그런 다큐들은 대부분 관광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화려함에도 자극을 받았지만, 당대에 대한 여러 사례들이 파편적으로 나열됨에도 그 이면의 구조, 어떤 구조가 그런 사건들을 발생시켰는지에 대한 접근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경성의 현대성을 보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경성이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경성이 다양한 공간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싶었다. 이를테면 경성은 일본인의 공간이자 최상의 계층에는 향유의 공간이지만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농촌에서 유입된 엄청난 인구가 토막촌을 구성하고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있었던 공간이 경성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입체적인 경성을 드러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사실 전체 이야기 속에 토막촌 같은 곳의 촬영분도 있었지만 결국 영화 전반의 균형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들어냈다.
-원작 소설과 비교하자면 신스케의 캐릭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신스케의 캐릭터와 그와 해명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유키코라는 인물도 부재하고. 캐릭터들이 단순해졌다고 할까.
=매체를 옮겨오면서 생기는 변화다. 영화의 결말 경우에 원작자가 시나리오 최종본을 보기 전에, ‘영화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한데, 소설처럼 끝맺으면 안 되는 거 아시죠’라는 농담을 했다. 말하자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결말과 소설의 결말은 달라야 하는 것 같다. 전체 분량으로 봤을 때, 신스케라는 캐릭터는 지금 정도의 정리가 맞는 것 같다. 유키코의 분량도 있었지만, 전체 균형상 지금과 같은 결과를 선택했다. <사랑니>를 봐서 알겠지만, 나는 영화를 복잡하게 만들라치면 그럴 수 있는 감독이다. 하지만 현재의 관객이 그런 복잡함을 이해해주는 수준은 문득문득 공포를 느끼게 한다. (웃음) 이 영화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너무 단순하게 정리한 게 아니냐고 물을 텐데, 여타의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익숙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다. 지금의 결과물이 가장 적절하고 흥미롭게 정리된 수준이 아닌가 싶다.
-편집에서 많은 부분을 잘라낸 것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벅찬 지점이 있었고 특히 해명과 난실의 러브라인이나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설득되지 않는 순간이 종종 있다.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묘사적인 이미지(화된 기억들)가 남는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해명과 난실의 난투극 신은 러브신과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다시 안 봐도 될 사람들이 다시 만나 러브신과 유사한 난투극을 벌이고 사랑을 이어가는 게 개인적으로는 별로 비약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이미지가 남는다고 느꼈다면, 이 영화는 완전한 실패다. 인물들 내면의 변화과정이 어떤 흐름을 타고 가느냐의 문제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근거가 인물에서부터 나오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영화다.
-원작에서 해명은 다른 선택을 한다. 지난 인터뷰를 보니 ‘식민지 근대화론을 일방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시선에 동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런 마음의 반영일까. 후반으로 갈수록,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영화가 개인에게 역사적 운명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다. 끝까지 가볍게 가는 길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일반 국민의 평균적인 감성을 피부로 느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얼마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지. 어리면 어릴수록 유쾌한 톤으로 질러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이 시대를 다루는 태도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이 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특정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순히 대중과 절충하겠다는 타협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결말에 나타나는 무드나 후반부 해명의 달라진 태도가 없었다면, 총독부 밖에서 이뤄지는 기념식이나 천황을 향해 절하는 장면들을 문제 삼고 상처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취향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 촬영, 편집 단계를 거치며 느낀 건 관객이 이 시대를 받아들이는 어떤 준비된 수준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취한 걸음이 성큼 뛰어넘어서 완전히 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면 영화적으로는 멋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로 남는다. 그 누군가는 내가 만든 영화를 위해 티켓값을 소비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아직도 위태로운 기분이 든다. 한쪽에서는 진부하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일본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주인공을 문제 삼으니까. 내가 방어적이거나 보수적인 입장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참 싫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을 통해서, 정말 많은 시간을, 가장 어려운 과정을 통해 내 태도를 결정했다. 단순히 어떤 선택이 좋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당시 인물들이 갈 수 있는 끝이 무엇일지를 고민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끊임없이 피드백을 했는데 모두들 시대에 대한 다양한 감성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하나의 태도로 모아지더라. 어제 시사 끝나고 벌써 우려했던 대로 일본 군가 나오는 행사, 일본인 공간 안에 들어간 주인공들이 취한 태도들에 대한 반감도 접했다. 아까 이 영화에서 이미지가 남는다는 말에 공포감이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경성에 얼마나 쇠락한 공간들이 많았는데, 경성을 이렇게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만약 이미지가 전부라면 답할 게 없다. 주인공들의 마음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는 감상이 없다면, 이건 치명적이다.
-핸드헬드로 촬영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배우들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배우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들에게 제한을 주지 않는 것은 내게도 절체절명의 매혹이었다. 그런 촬영을 즐길 수 있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각효과 면에서는 아주 힘든 작업과정이었지만, 멈춰서 찍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것 같다.
-김혜수의 어떤 점에서 난실을 보았나? <해피엔드>에서 텔레비전 드라마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데 그 모니터 안에도 김혜수가 있었다.
=그녀는 한국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웃음) 지금은 그녀의 불균질함, 알 수 없는 기운 같은 것이 섞였을 때 나오는 매혹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매력이 가면 갈수록 깊어진다. 그녀 특유의 몸의 기운이 어쨌든 휘발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것이 주변을 맴도는데, 그게 아직 명료하지 않아서 점점 재미있어질 것 같은 배우다.
-난실은 과거가 없는 여자다. 애초 설명을 거부하는 캐릭터이지만, 때로 그녀의 행동과 선택의 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인물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 난실의 경우 경회루에서 하는 조선왕조에 대한 언급이나 운동그룹 내에서의 리더 역할로서 여자가 왜 대역을 내세워서 일의 진행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지 등의 간단하지 않은 고민과 상황은 던져져 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는 것을 불친절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영화 내 캐릭터의 흐름에 있어서 일관성의 문제라든가, 맥락의 이해여부에 대한 문제라면 그다지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
-예전에 “경험으로 인간이 개선되면 얼마나 좋으랴만”이라는 말을 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해명과 난실은 결말에 이르러 달라진다.
=맞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라질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계기는 사랑이다. 사랑이 새로운 세계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반부의 기념식장 장면을 찍으면서 해명이 태극기를 꺼내드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힘으로 영화도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