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한강에서 로빈슨 크루소 만나기
2008-11-25
사진 : 이혜정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씨 표류기> 촬영현장

상상이 되시는지. 정려원의 봉두난발(?)이.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고 놓아둔 머리가 마냥 길고 여기저기 탈색되어 군데군데 색도 다르다. 3년 동안 집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은둔형 외톨이인 셈인데 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 여하간 지금은 그렇게 방 안에서만 지낸다. 하지만 생활계획표대로 움직이고 생식주의자인데다 아침은 옥수수 캔, 점심은 라면, 저녁에는 다이어트 삼아 아무것도 안 먹는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다. 취미가 있다면 방 안에서 운동하고 인터넷하고 달 사진 찍기. 방 안에 온통 붙어 있는 사진들이 바로 그 달이다. 누군가가 “이 방이 그녀의 정체성”이란다.

11월12일 세트 촬영 첫날이자 55회차 촬영이 시작됐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웹서핑 중인 정려원을 찍는 숏. 이해준 감독이 머리칼 한올 한올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 스탭들에 둘러싸여 정려원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머리칼로 뭔가 가리는 게 중요했었나 보다. 덥수룩하게 수염, 발톱까지 기르고 나타난 정재영이 “오늘 보니 너는 손하고 키보드하고 발만 찍대?”라고 농담을 던지니 정려원은 존경인지 시비인지 정재영을 가리키며 “저거 보세요 예수님이 되셨어요”라고 한마디 던진다.

그렇게 조용하고 화기애애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다른 날처럼 달 사진을 찍으려던 정려원이 자살에 실패하고 한강 밤섬에 표류해 들어온 김씨(정재영)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뒤로 밤섬에 갇혀 살아가게 되는 김씨와 방 안에 갇혀 살던 이 여자의 관계가 형성된다. 감독은 지금 뭔가 풀어가는 중인가 보다. “결말이 정리됐다고 들었다”고 누군가 말하자 반은 퉁명스럽고 반은 농담처럼 “정리가 됐대요? 좀 물어보아야겠다”라고 튕겨낸다. 하지만 “남은 숙제들만 잘하면 예상한 대로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잊지 않는다.

한강 버전 로빈슨 크루소 <김씨 표류기>는 12월 중순까지 촬영을 마치고 내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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