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언제나 책임감 강하고 믿음직한 절제된 남성미를 보여주던 이정재가 철없는 오빠로 돌아왔다. <태풍>(2005) 이후 무려 3년 만이니 그는 이른바 연예계 데뷔 이후 가장 오랜 휴식을 취한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변신의 폭은 크다. <1724 기방난동사건>(이하 <기방난동사건>)의 ‘천둥’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까불고 철부지인 캐릭터 중 하나다. ‘조선시대 조폭 이야기’인 영화에서 그는 털모자를 눌러쓰고 시종일관 어수룩한 표정으로 CG와 함께 춤을 춘다. 이제껏 보지 못한, 가장 생동감 넘치는 이정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이정재는 다시 연기에 몰두하고 싶어 했고, 제법 긴 공백이 아무렇지 않은 듯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젊은 남자>(1994)로 그해 거의 모든 ‘신인’상을 휩쓸고, 2000년대 초반까지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남자였던 그가 여전히 밝은 얼굴로 돌아온 것은 그래서 반갑다. 그는 이른바 ‘몸짱’, ‘모델 출신 배우’의 원조 격이었다. <기방난동사건>이 끝나면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들과 함께 만드는 공연인 <햄릿>의 햄릿 역할로 12월24일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밤 10시가 돼서야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한다며 자리를 떴다. 이정재의 햄릿이라, 그는 정말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사실 당신 필모그래피의 1/3은 코미디영화다. 그중에서도 <기방난동사건>은 가장 과장된 형태의 코미디영화라 생각된다.
=맞다. 사실 난 코미디영화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은 “어, 정말?” 그러면서 의아해한다. 아무래도 내가 깔끔하고 차갑고 절제된 이미지로 많이 비쳐서인지 그런 코믹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오! 브라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순애보>도 소프트한 코미디라 할 수 있고 <선물>에서는 전체적인 정서가 그러지 않을지는 몰라도 아예 직업 코미디언으로 출연했다. 난 그런 걸 딱히 배우로서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지금껏 출연했고 시도했던 장르영화인 거다. 내가 여러 모습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욕심도 있고.
-메이저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던 여균동 감독과 함께한다는 게 불안하진 않았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그거다. 근데 난 왠지 기대가 됐다.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면 자신의 박식함을 유머를 통해 표현하는 솜씨가 대단하고, 본인 스스로가 연기 자체를 내추럴하게 잘한다. 시나리오도 본인이 썼는데 아주 잘 썼다고 생각했다. 요즘 관객과의 접점에 대해 묻는다면 여균동 감독님에게 딸이 셋 있는데 차례로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다. 말하자면 요즘 모든 젊은 세대와 늘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다. 아저씨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젊은 감각을 가지고 계셔서 놀랄 때가 많았다. 오히려 내가 더 늙은이 같았다고나 할까.
-심지어 그 정도란 말인가.
=예를 들면 나는 얼마 전까지도 ‘안습’이란 말이 뭔지 몰랐다. 시나리오에 안습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나는 <기방난동사건>이 사극이니까 무슨 한자 단어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거 꽤 어려운 사극이네, 그랬지. 그런데 ‘안구에 습기 찬다’는 말이라 하더라고. (웃음) 나는 뭐 평소에 TV도 잘 안 보는 사람이라 정말 잘 모른다. 그리고 CG 분량이 꽤 많은 영화라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겠다 싶었다. 어쨌건 내가 이 감독을 믿고 뭔가 배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아쉬운 건 감독님과 친해지니까 분명 뭔가 좀 아쉬워하시는 것 같은데도 “괜찮아, 좋았어, 오케이”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너무 친한 데서 오는 단점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느낌이 좋았다. 다음에 또 코미디영화를 한다면 <기방2>가 아니면 안 할 것 같다. (웃음)
-당신의 코미디영화들은 특정 시기에 몰려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하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배우로서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려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 틀린 얘기는 아니다. 늘 그때마다 생각이 있었다. 진짜 인위적으로 변신하려고 했던 영화는 <박대박>(1997)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설명하는 수사는 거의가 ‘<모래시계>의 이정재’였다. 정말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고 일부러 코미디영화를 선택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당시 팬들이나 관객은 나의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태풍>에 이르러서는 다시 <모래시계> 이미지로 돌아가려 한 듯한 느낌을 줬다. 곽경택 감독도 당신의 그런 모습을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었고.
=나는 처음부터 감독님과 시각이 좀 달랐다. 처음 나온 시나리오의 몇몇 버전이 있는데, 나는 완성된 영화처럼 국가관이 투철한 강세종 캐릭터를 원하지 않았다. 근데 감독님은 나라를 등지고 동남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는 해적 씬(장동건)과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캐릭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엘리트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해경으로 해달라는 얘기도 했다. 모든 해경이 그러진 않겠지만, 전에 TV 인간다큐 같은 프로그램에서 정말 고되게 일하는 해경의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한 적이 있다. 굉장히 위험한 일을 하고 거의 목숨 걸고 작업에 나서는데도 별다른 보험혜택도 못 받더라. 딱히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조작업 중에 화상 같은 거 입어도 사비로 치료하더라. 그래서 영화도 고된 작업을 마치고 불판에 삼겹살 구워먹으며 소주 마시다가 우연히 바닷가에서 번쩍거리는 걸 보고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다. 그런 게 더 훨씬 더 사람냄새 나고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러면서 애국심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고. 맨 처음 세종의 생각은 우리가 이렇게 등골 빠지게 나라 위해서 일하는데 우리가 얻는 게 뭐냐 이거다. 씬이 그런 것처럼 세종도 어머니를 위한 개인적 복수 때문에 사건에 뛰어드는 건데, 둘 다 속한 집단이 다를 뿐 결국 같은 인간인 거다.
-어떻게 보면 좀 재수없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너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지나쳐서.
=하하. 맞다. 그런 대사가 있다. 국정원 간부가 작전 중 불상사에 대해 현금 보상 얘기나 성공하게 되면 직장을 잡아준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데, 강세종이 대뜸 앞으로 해군사관학교 출신 군인을 차출하실 땐 돈이나 직장 얘기는 하지 마십쇼,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만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뭐 그렇게 얘기한다. 보상은 안 바란다는 거지. 그런데 어떻게 보면 좀 재수없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관객도 쟨 뭐야, 깬다,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한 세종은 자기가 먼저 “이번 작전 성공하면 아파트 하나 해주시는 겁니까?”라고 말하는 남자였는데, 하여간 좀 아쉽다.
-최근 어떤 인터뷰를 보니 ‘농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 뭔가 준비하는 게 있는 건가.
=요즘 먹을거리로 고민 많지 않나. 그래서 직접 유통에 참여해서 먹을거리를 챙기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정도의 관심이지, 구체적으로 조만간 농사를 짓고 살겠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수도권 좀 벗어난 지역에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며 상추나 깻잎만 팔아서 엄청나게 큰 수익을 올리는 분들도 많더라. 귀농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된다는 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쨌건 꼭 도시에서만 사는 게 질적으로 낫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그렇게 삶의 태도를 좀 바꿔보자, 뭐 그런 의미다.
-<모래시계>가 대표적이지만 당신은 늘 책임감있고 절제된 남자로 많이 나왔다. 그런 점에서 <기방난동사건>의 건달 천둥은 <태양은 없다>(1998)에서 연기한 ‘홍기’와 비슷한 것 같다. 뭔가 좀 풀어헤쳐진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런 국가관이나 뚜렷한 책임감도 없는 인물이다.
=홍기는 영악하지만 욕심만 많고 얄미운 캐릭터다. 순수하지도 않다. 거기에 비하면 천둥은 단순무식하면서 좀더 순수한 남자다. 정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이 졸지에 양아치 중의 양아치가 된 거다. 바람결에 스쳐지나간 짧은 사랑의 인연도 믿으려고 하고, 남자로서 꿈도 가져보려 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복수도 하려 하고. 하여간 굉장히 복합적인 캐릭터다. 홍기나 천둥이나 기존 내 이미지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는 점에서 애착이 가는 캐릭터들이다.
-<모래시계>가 평생의 짐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절대 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래 가는 고마운 작품이다. 영화로는 <젊은 남자>(1994)가 가장 고맙고. 이정재 하면 떠오르는 뭔가를 만들어준 작품들이다. 절대 미워할 수 없다. 거기서 유래한 절제된 남성미를 아직 확 깨트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아직 난 젊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아까 <태풍> 얘기도 했지만 정말 땀냄새 나는 거친 남성 캐릭터에도 욕심이 난다. 이거 참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쓸 수도 없고. (정)우성이가 그래서 직접 감독을 하려는 건가? (웃음)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준다면.
=내 이미지에서도 조금 더 포악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좋겠다. 단순히 강렬하다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태풍>도 액션신이 더 파괴적이길 바랐다. 내가 직접 합도 짜보고 싶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는 아이디어도 종종 냈다. 비슷한 시기에 충격을 줬던 영화들은 <매트릭스>와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였다. <매트릭스>의 초현실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변기에 얼굴 박고 깨지고 하는 장면들이 파워풀하면서도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게 찍혔다는 점이 충격이었고, <본 아이덴티티>는 거의 모든 액션들이 생존에 가까울 정도로 직접적이고 극사실적이다. 그런 느낌들에 끌리던 때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재용 감독과 함께했던 <정사>(1998)나 <순애보>(2000)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을 것 같다. 그때로부터 꽤 세월이 흘렀으니 당신의 연륜이 더 담길 것 같고.
=개인적으로 정말 잘 맞는 감독이다. <정사>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당시 나는 <모래시계>를 벗어나려고 오히려 악수를 두다가 슬럼프에 빠져 있던 때였다. 대중이 원하는 이정재하고 멀어졌다고나 할까.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할수록 더 일이 안 풀리던 찰나에 <정사>를 하면서 다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물론 작품 약속을 하긴 했는데 스케줄이나 여러 여건이 잘 안 맞았다. 지금도 가장 연락 자주 주고받는 감독님이고 새로운 아이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있다. 조만간 한편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다세포소녀> 때 모든 선생님을 한분이 다 연기했는데 그 ‘모든 선생님’ 역할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하신 적도 있다. (웃음)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안 하게 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안 해서 좀 후회가 됐다.
-그런 이미지를 벗는 데는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일체 본인이 거절하는 것으로 아는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홍보에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런데 예전에는 영화 얘기하면서 상대배우 얘기도 들어보고 편집된 하이라이트 영상도 보여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포맷이 많이 달라져서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해야 하고 출연자 수도 많아서 오히려 자기 얘기보다 남 얘기 들어주는 시간이 더 많더라. (웃음) 물론 바뀐 대로 따라야겠지.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도사>의 경우 감독이든 배우든 관계된 영화인이 출연만 하면 영화가 잘되는 보증수표라는 얘기도 있다.
=황정민의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나 곽경택 감독의 <사랑>은 안된 걸로 아는데?
-뭔가, TV도 잘 안 보고 버라이어티에 관심없다는 사람이 그렇게 바로 대답이 나오다니. 평소에 늘 신경 쓰고 체크하나 보다. 출연이 임박한 것 아닌가? 그래도 <사랑>은 제작비 규모로 따지면 흥행영화라 할 수 있다.
=일단 내가 템포가 느릴까봐 걱정된다. 그런 자리에서는 원하는 얘기들이 바로바로 나와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수위가 높은 얘기들이 많다. 방송 불가 내용들이 많아서 깜짝 놀랄 텐데. (웃음)
-그럼 출연했다 치고 “요즘 무슨 고민이 있어 이 무릎팍도사를 찾아주셨수?”라고 대뜸 묻는다면.
=지구 온난화다. 정말로. 서울 도심에서 별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거 봐, 재미없잖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