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초읽기에 들어간 영화가 있다.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영화보다 배로 관심을 끈다. 영화 비평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영화감독으로 나선다. 그가 만들 첫 작품의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제). 정 감독은 지난 12월7일 저녁 신사동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으며, 이날 주연배우 신하균과 김혜나가 걷는 장면을 3분30초의 롱테이크로 찍었다. 영화 제작은 처음이지만, 정성일의 시나리오 작업은 1989년 영화 <애란>에 이어 두 번째다.
정성일 평론가가 메가폰을 잡고 영화사 북극성이 제작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다섯 사람의 사랑과 슬픔을 다룬 영화다. 한 여인(문정희)을 사랑하는 남자(신하균)와 그를 사랑하는 다른 여인(김혜나), 그리고 남자를 위로하는 두명의 여인(정유미, 요조)이 등장한다. 신하균은 일찌감치 정성일의 제의를 받고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2년간 기다렸으며, 홍대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는 요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영화 데뷔작이다.
90년대 국내 영화평론의 기반을 다진 정성일은 ‘영화광 1세대’로 분류되는 영화평론가다. 고등학생 시절 프랑스문화원에서 해외영화를 접한 것을 계기로 ‘문화원 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정성일은 극장에서 만난 김홍준(감독)과 친분을 쌓았으며 한국영화를 연구하여 책을 썼다. 대학생 신분으로 친구들과 영화 제작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큰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영화비평에 매진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영화월간지 <로드쇼>의 편집차장, <키노>의 편집장을 지내며 언론인으로 생활해왔다. 또 월간지 <말>에 영화평론을 16년 동안 고정으로 기고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 출연하면서 영화평론가로 널리 알려졌다.
한편 정성일은 전주영화제의 프로그래머, 시네마디지털서울의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내면서 알려지지 않은 새 영화의 발굴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여러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왔다. 정성일 자신은 내년 2월 촬영을 끝마칠 예정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