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2월16일(화) 오후 2시
장소 메가박스 코엑스
이 영화
고려 말, 원나라의 외압이 거세지면서 조정은 어린 남성들을 훈련시켜 왕을 호위하는 부대 건룡위를 만든다. 이중 홍림(조인성)은 뛰어난 무공과 외모로 남성을 사랑하는 왕(주진모)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다. 이 와중 원나라는 왕위를 이를 세자가 없다는 것을 빌미로 경원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채근하고 왕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왕후(송지효)와 홍림의 합궁을 명한다. 억지로 관계를 맺기 시작했지만 서로의 육체에 빠져든 홍림과 왕후는 이제 서로에 대한 욕망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왕의 거센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100자평
<쌍화점>은 이왕 이야기를 하려면 끝을 보겠다는 욕심이 돋보이는 멜로드라마다.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존중과 애착도 두드러진다. 홍림과 공민왕, 왕비 세 불운한 연인은 분명 집요한 사랑을 나누나, 그 시점과 감정의 본질은 줄곧 어긋난다. <쌍화점>의 시나리오는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2+1’의 구도로 번갈아가며 한 명을 소외시키는 과정을 밀도있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왕과 홍림의 오랜 관계는 원나라에서 시집 온 왕비를 소외시키고, 왕과 왕비의 정치적 목적은 홍림을 소외시키며, 홍림과 왕비의 에로스가 동반된 사랑은 왕을 소외시킨다.) 배우들은 대체로 승리를 거두었다. 유년기에 고착돼 공민왕의 총애를 받다가, 수컷 대 수컷의 투쟁심을 품게 되는 홍림은, 선이 곱고 천진한 외모 안에서 불쑥 불덩이를 끄집어내는 조인성에게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비등점에서 곧잘 불안해졌던 그의 연기는 위험한 지점들을 무난하게 넘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조인성의 아름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송지효가 분한 왕비는 가장 성숙하고 용감한 인물이다. 어리면서도 위엄을 갖춘 송지효의 이미지와 잘 들어맞는다.
게이 섹스를 포함한 약 일곱 차례의 정사 장면은, 드라마와 감정의 흐름을 의식해 디자인한 티가 역력하다. 몸을 댄 두 사람의 움직임 못지않게 미묘한 표정과 홍조를 잡아냈다. 액션 역시 초반부 공민왕 시역 사건 장면을 제외하면 장쾌한 스펙터클의 기능보다 감정의 부딪힘을 표현하는 무대장치로 쓰이고 있다.
세 주인공 누구에게도 기울지 않는 <쌍화점>의 밸런스는 영화의 장점이면서 약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이것은 누구의 사랑 이야기인가? 혹은 하나의 풍경인가? <쌍화점>의 결말은 유하 감독이 끝까지 선택을 망설였다는 인상을 남긴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쌍화점> 속 인물들의 갈등 구도는 매우 흥미롭다. 남자를 사랑하는 왕은 후사(後嗣)문제를 빌미로 자신을 왕위에서 제거하려는 원나라의 압박을 막기 위해 사랑해마지 않는 홍림을 왕후와의 잠자리에 내보내고, 오로지 왕의 뜻을 받들어 왕후와의 관계를 가졌던 홍림은 처음 접한 이성과 사랑에 빠져 왕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 왕후 또한 홍림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 갈등의 소용돌이는 갈수록 증폭된다. 이 인물들의 관계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치정 관계가 이들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맥락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결국 <쌍화점>은 남녀상열지사와 권력 싸움이 결합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흘러가는 모습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뤘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격렬한 러브신이다. 조인성과 주진모의 애정장면도 파격적이지만, 조인성과 송지효의 정사신은 <미인도>를 훌쩍 뛰어넘는 수위를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러닝타임이다. 왕의 질투심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하면서 갈등도 본격화되지만, 이상하게도 이때부터 영화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2시간27분의 러닝타임 중 후반부 1시간이 흥행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문석 <씨네21> 기자의외로 액션이 없다. 유하 감독은 삼각 관계(혹은 사각)에 집중하며 암투와 질투가 공존하는 궁중 심리드라마로 완성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금지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그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누구도 마음이 놓일 리 없다. 인물들의 절박함은 바로 거기서 온다. 신하들과의 정치적 관계, 왕비(송지효)의 오라버니의 존재 등을 더 잘라내서 보다 슬림한 로맨스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더 돋보였을듯.
주성철 <씨네21> 기자<쌍화점>은 시작부터 발화점이 높다.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는 종종 이글이글 불타는 듯 하고, 세 캐릭터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도 좋다. 그런데 영화의 온도는 2시간20분의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을 거치며 천천히 식어간다. 강렬하게 마무리되어야 할 후반부의 이야기가 질질 늘어지며 발목을 붙잡는 탓이다. 후반부를 지금보다 짧고 타이트하게 편집한다면 훨 재미있을텐데.
김도훈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