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뵙게되어 영광이옵나이다.
=어머. 지나친 경칭어는 부담스러워요.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러겠사옵니다 부인.
=아우 경칭어 생략해달라니까요.
-부인의 용안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칭이 저절로 나오는 걸 어떡합니까.
=하긴 뭐. 그렇긴 하겠죠. 호호호호.
-어머나. 그렇게 급솔직해지시다니. 근데 대체 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셨사옵니까. 그냥 편안한 잉글랜드 저택에서 승마나 하시면서 시종들 몇명 보내면 될 일 아니었나요?
=남편이 분명히 바람을 피우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저처럼 아름다운 부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잉글랜드 동부에서 저만한 미인은 흔치가 않아요. 그런데도 남편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면, 그건 분명히 엑조틱한 오스트레일리아 미녀와 정분이 난 거라고 믿었던 거죠, 뭐. 오판이었어요.
-에이. 그 정도 미모시면 잉글랜드 동부가 아니라 브리튼 섬 전체에서 따를 여자가 없질 않습니까. 잠깐 정분이 난다고 하더라도 부인 같은 분을 버리고 딴 여자와 살림 차릴 남자는 세상에 없다고요.
=결혼 안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그게 그리 중요한지.
=결혼하시면 이해하게 돼요. 왠지 연애 시절보다 더 조바심이 난달까. 아무튼 그래요.
-그렇군요. 조바심이라. 그렇게 좋은 건 아니군요.
=아무래도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 남자가 이젠 완전히 내 남자다 싶으면 다른 데로 눈 돌리는 꼴은 못 보거든요.
-여러모로 피곤합니다. 결혼이라는 거.
=결혼하실 때가 되셨나봐요?
-내년까지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져서요. 험험. 이런 이야기는 프라이버시니까 더 진전시키지 말도록 하죠. 여하튼, 정말 놀라운 건 어떻게 1500마리의 소를 몰고 직접 대륙을 가로지를 생각을 하셨냐는 거죠. 대륙을 가로지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농장에서 다윈까진 엄청난 거리잖아요.
=화가 났죠. 이 먼지 풀풀 날리는 유배지에 왔더니 아무도 제 진가를 모르는 게 아니겠어요.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죠. 좋다. 내가 누구냐. 애쉴리 가문의 가장 아름답고 호방한 딸 아니더냐. 저를 희롱하고 얕잡아보는 대농장주 킹 카니 일족에게 한방 먹이고 싶어지더라고요.
-흠. 혹시 온몸의 근육이 잘 구운 피부 위로 울룩불룩 에어즈록처럼 솟아 있는, 휴 잭맨 닮은 몰이꾼 때문은 아니고요?
=호호호.
-아니고요?
=호호호.
-네?
=험. 험. 그런 마음이 아주 약간 제 마음속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네? 뭔 말이…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
=이 친구야! 당신 말이 맞다고요. 이미 남편은 죽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괜찮은 남자도 나타나지요. 뭐, 평소 제가 좋아하던 스타일은 아니지만 여튼 멋지긴 하잖아요. 게다가 아들 삼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원주민 꼬맹이도 나타나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국에 돌아가봐야 칙칙한 날씨랑 빚더미에 올라 있는 저택밖에 없지요. 저로서도 도박을 걸 타이밍이었어요.
-꺅. 멋집니다. 그쵸. 가끔은 그냥 가야 하는 상황이 있는 거죠 인생에는.
=바로 그거예요.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주무실 땐 뭘 입으세요?
=샤넬 No.5요.
-에이. 그건 마릴린 먼로가 먼저 말했는데. 게다가 가상 인터뷰를 잠시 뛰어넘어 말하자면, 니콜 키드먼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배우가 샤넬 No.5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죠. 혹시 그래서 그러는 건가요?
=흠. 광고 계약이 물려 있어서 다른 향수 이름은 말하면 안되는데. 이렇게 해두죠. 사실 제가 뿌리고 자는 건 땀이라고요. 몰이꾼의 흠뻑 젖은 가슴팍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
-헉. 체통을 지키시오소서. 갑자기 그런 육덕스러운 표현을 쓰시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그런가요? 저도 이제 아웃백 여자 다 됐나보죠 뭐. 꺌깔깔깔깔깔깔깔깔.
-체… 체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