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는 연기 변신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껄렁한 가죽점퍼를 걸치고 치렁치렁한 목걸이를 두른 외양에서 이전의 덴젤 워싱턴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가 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음주운전을 하고, 신참내기 형사 제이크(에단 호크)에게 마약 피울 것을 강요하는 비열하고 느글느글한 모습을 대하고 나면 이제까지 줄곧 그를 설명해오던 낯익은 문구 어디쯤에, 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형사 ‘알론 조’를 위치하게 해야 할지 난감함이 앞선다. <트레이닝 데이>의 마약단속반 고참은 그렇게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피의자를 살해할 수 있는 냉혈한 그대로이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독 이 배우, 덴젤 워싱턴에게만은 그런 통념이 금기시돼왔다. 수려한 외모, 지적인 말투, 확신에 찬 눈빛, 불의에 항거하는 신념…. 워싱턴의 사전에 등록된 보기 좋은 문구들은 이를 거스르는 어떠한 수식어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 빼곡이 들어차 있다. 훌륭한 악역을 보여주었음에도, 그간 출연한 영화 속 투사들의 변절이라도 대한 듯,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그에 대한 이런 기대치 때문이다. “한번도 이런 역할을 제안받은 적이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나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이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또는 ‘이런 역은 그가 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들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난 그것을 해냈고, 성취감을 느낀다.” 자신을 옭아매던 이미지를 가볍게 풀어젖힌 그에게서 당찬 결의가 배어나온다.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에단 호크의 말처럼 그는 잭 니콜슨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을 법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것이다.
‘흑인답지 않은…’, 줄곧 그를 평가해오던 잣대는 이 한마디에 짐지워진다. ‘흑인답지 않게도’ 그는 반듯한 마스크를 지녔으며, ‘흑인답지 않게도’ 그는 지적이고 세련된 풍취를 내뿜었다. 100% 순수 흑인혈통의 이 ‘흑인답지 않은’ 수려함은 백인 앵글로색슨 중심의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인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미리 갖춰진 덕목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백인의 사고를 가진 흑인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구색맞추기로 등장하던 폄하된 흑인의 이미지에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낸 몇 안 되는 배우임에는 이견을 달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흑인 인권운동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열변을 토하던 <말콤 X>의 목사 말콤에게서나, 인종차별에 의해 살인 누명을 쓴 채 22년간 투옥생활을 견뎌낸 불굴의 복서 <허리케인 카터>에서의 루빈을 마주하면서 또, 에이즈로 부당한 해고를 당한 변호사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필라델피아>의 강직한 변호사 조 밀러를 대할 때조차 비록 스크린에서지만 워싱턴에게서 찾고자 한 것은 한 사람의 연기자가 아닌 정의로운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다.
기자를 꿈꾸던 뉴욕 마운틴 버논 태생의 워싱턴이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우연히 출연한 대학 연극제이다. 이후 연기에 대한 매력은 그를 사로잡았고, 배우로서의 삶은 그의 인생 전반의 숙제가 되었다. 해마다 <피플>은 섹시한 남성의 순위에 어김없이 그를 올려놓지만, 실제 그는 더없이 건실한 중년의 가장이며, 말쑥한 정장보다는 헐렁한 면티에 운동화 차림이 익숙하고, NBA에 열광하는 편안하고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든 난 내가 좋은 것을 할 뿐이다”라는 뚝심만큼이나 보기 좋게 나온 배는 강한 역을 자처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은 채 스크린에 꼭꼭 갇힌 우상이 아닌, 틀을 깨고 나오려는 진정한 연기자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그래도 변신한 그의 모습이 영 마뜩하지 않았다면 이또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스카의 남우주연상으로 손색이 없다는 주위의 호평에 한 차례의 변신을 내심 대견스러워하던 그가 내년에 개봉하는 <존 Q>에서는 심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로 분해 <트레이닝 데이>에서의 ‘과오 아닌 과오’에 용서를 구한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