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ust see] <작전명 발키리> 히틀러 암살 모의 서스펜스
2009-01-15
글 : 김도훈
할리우드의 번들번들한 공산품을 넘어서는 브라이언 싱어의 <작전명 발키리>

<작전명 발키리>가 지난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전미 개봉했다. 첫주 흥행성적은 2952만달러다.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톰 크루즈와 브라이언 싱어의 귀환으로는 조금 겸손한 수치다. 모든 비평가들의 환대가 좋은 것도 아니다. 확실히 <작전명 발키리>는 모두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영화다. 감정의 진앙을 뒤흔드는 오스카용 서사극도 아니고 톰 크루즈의 영웅적인 카리스마를 등에 업고 달려가는 스펙터클도 아니다.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날씬한 스릴러인 동시에 <엑스맨>과 <수퍼맨 리턴즈>를 잇는 또 하나의 브라이언 싱어표 히어로 영화다. 1월22일 개봉을 앞둔 <작전명 발키리>를 사전 시사를 통해 미리 관람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사람들은 많았다. 이를테면 평범한 독일 목수 게오르그 엘저의 케이스. 그는 1939년 수제 시한폭탄을 히틀러가 연설할 예정이었던 연단에 몰래 장착했다. 히틀러는 의외로 과묵한 남자였다. 연설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고 뒤늦게 터진 폭탄에 목숨을 잃은 건 죄없는 8명의 군중이었다. 게오르그 엘저는 그해 11월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그런데 엘저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글쎄.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왜 그럴 가능성이 없냐고? 히틀러 암살이 등장하는 대체역사 SF소설들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자. 주인공들은 히틀러나 스탈린을 암살하는 것으로 과거의 역사를 바꾸려 든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히틀러나 스탈린을 암살해봐야 역사는 바뀌지 않음을 알고는 땅을 치며 통곡한다. 히틀러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다른 독재자로 메워진다. 역사는 스스로를 복구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그 엘저는 악마의 우두머리를 처치하는 것으로 지옥의 문을 닫을 거라고 믿었을 테지만 그건 결국 정의로운 헛발질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본 슈타펜버그 대령의 ‘발키리 작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작전의 주동자들은 히틀러 암살만으로 독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히틀러와 그의 팔다리까지 모조리 제거하는 독일의 대수술이었다.

“나치 수뇌부 제거” 슈타펜버그의 야심적 반역

브라이언 싱어와 톰 크루즈의 <작전명 발키리>는 슈타펜버그의 야심적인 반역에 대한 영화다. 독일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군인 슈타펜버그는 히틀러 독재정권이 벌이는 위험천만한 전쟁에 신물이 났다. 상부의 말을 듣지 않고 나치 정권을 비판하다가 아프리카 튀니지의 전선으로 차출된 그는 영국군의 폭격으로 왼쪽눈, 오른손, 왼손가락 둘을 잃어버린 뒤 독일로 돌아온다. 그리고 1943년, 그는 이미 여러 번 히틀러 암살 작전을 시도했던 일단의 장교들과 함께 ‘발키리 작전’를 역이용해 히틀러와 측근을 제거하려 든다. 위험하지만 영리한 계획이었다.

‘발키리 작전’은 히틀러가 자신이 암살당하거나 축출당할 때 나치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비상 대책이다. 히틀러의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 작전이 자동으로 개시되면, 독일 예비군이 주요 정부기관을 장악한 뒤 나치 정권을 지킨다. 슈타펜버그와 공모자들은 마치 히틀러 친위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를 암살한 것처럼 꾸민 뒤 예비군을 이용해 나치 정부를 장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관련자들은 즉결처형당했다. 2차대전의 종료는 1년 뒤였다.

슈타펜버그와 ‘발키리 작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유주얼 서스펙트>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싱어의 단짝 크리스토퍼 매쿼리였다. 2002년 겨울, 매쿼리는 다른 영화를 위한 리서치 작업 때문에 베를린에 머물던 중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의 이름을 딴 거리 ‘슈타펜버그 스트라세’에 가게됐다. 그곳에서 발키리 작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알게 된 그는 ‘모든 독일인이 나치 지지자였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독일 바깥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독일인 모두가 히틀러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군대와 사화 각층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존재했다는 사실 말이다.” 매쿼리는 점점 슈타펜버그 대령과 히틀러 암살 계획에 매료됐고, 그건 친구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에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늘 흥미를 느끼는 주제는 자신의 현실세계 밖으로 어쩔 수 없이 떠밀려나온 사람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주인공은 결국 더욱 훌륭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톰 크루즈의 신체를 자르고 일그러뜨리다

브라이언 싱어의 손에 <작전명 발키리>가 들어온 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슈타펜버그 대령은 엑스맨이거나 슈퍼맨이다. 그는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하고 초인적인 신념으로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인물이다. 싱어는 슈타펜버그를 돌연변이 전사로 각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화면 속 톰 크루즈의 신체에 카메라를 집중한다. “하일 히틀러!”를 왜 외치지 않느냐는 상관을 향해 잘려나간 팔을 들어 제3제국식 경례를 하는 장면, 혹은 히틀러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의안을 집어넣기 위해 잠시 멈추어서는 장면. 그리고 가장 섬뜩한 장면은 카메라가 안대를 벗고 있는 슈타펜버그의 안구 없이 짜부라진 왼쪽눈을 잠시 비출 때다. 톰 크루즈라는 일급스타의 얼굴은 기이하고 애처롭게 일그러진 채 스크린에 등장한다. 마치 가슴에 크립토나이트 조각이 박힌 채 쓰러진 슈퍼맨, 과거의 기억으로 몸부림치는 울버린의 모습처럼 말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슈퍼히어로 장르영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각효과를 통해 톰 크루즈의 육체를 자르고 일그러뜨린다. 그래서 <작전명 발키리>는 종종 <엑스맨>의 또 다른 속편처럼 느껴진다. <수퍼맨 리턴즈>의 제작자 길버트 애들러 역시 이것이 결국에는 싱어의 이전 작품들에 이어지는 후속편과 같다고 말한다. “슈타펜버그는 현실에 등장한 슈퍼히어로다. 평범한 사람이 결국 특별한 일을 해낸다는 이야기 말이다.”

더 재미있는 건 브라이언 싱어가 울버린과 슈퍼맨에 투자했던 만큼의 심리적 묘사를 슈타펜버그에게는 좀처럼 할애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사실이다. 톰 크루즈는 특유의 저돌적인 영웅의 아우라를 <작전명 발키리>에서도 여전히 밀어붙이지만 브라이언 싱어는 종종 크루즈의 돌진을 막아 세운다(크루즈는 여러 인터뷰에서 “제작자가 아니라 오로지 배우로서, 싱어의 지휘에 따랐다”고 말한 바 있다). 슈타펜버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무엇인지 영화는 속속들이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영웅의 마음이 아니라 행위에 한정될 따름이다. 심지어 슈타펜버그가 목숨을 거는 동기조차도 자세하게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이는 시나리오를 쓴 매쿼리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슈타펜버그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역사에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슈타펜버그를 하나의 상징이나 희생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내 생각에, 우린 그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희생을 감수했는지, 어떤 일을 하려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감독이 유대인 출신이지만 담담하게 접근

사실 브라이언 싱어와 매쿼리의 담담한 접근법이야말로 <작전명 발키리>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날씬한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는 증언한다. “작가들과 함께 홀로코스트 이야기나 역사적 캐릭터들을 최대한 이야기에 반영하려고 애쓰고 있으면 브라이언이 말했다. 아니지. 이건 엔터테인먼트야. 그냥 히틀러 암살에 대한 서스펜스 스릴러라고.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싣고 달려야 하는 영화야!” 다시 말하자면, <작전명 발키리>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거창한 역사의 교훈에 매달리는 오스카용 서사극이 아니라는 거다. 개봉일이 여러 번 연기되었을 때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브라이언 싱어와 톰 크루즈가 오스카 시즌을 노리는 게 틀림없다고 예상했다. 예상은 어긋났다. <작전명 발키리>는 자기 능력을 잘 아는 장인이 만든 효과적인 장르영화다.

물론 어떤 관객은 질문을 품을 것이다. 이미 실패가 예정된 암살 모의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에 어떤 서스펜스가 있을 수 있냐고. “어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마찬가지로, <타이타닉>과 <아폴로 13>의 귀결을 알더라도 영화적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톰 크루즈의 말이 첫 번째 답변이 되겠다. 두 번째 답변은 ‘스릴러를 지탱하는 브라이언 싱어의 솜씨’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재관람한다면 쉽게 이해된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문장은 스포일러 한줄이 망치는 영화관람의 즐거움에 대한 사료로서 오랫동안 애용됐다. 하지만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도 <유주얼 서스펙트>의 서스펜스는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작전명 발키리>에 참여한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적 친구 크리스 리는 말한다. “브라이언의 영화가 특별한 점은 캐릭터와 정서가 아주 복잡하고 흑백의 논리가 배제됐으며 모든 것이 속도와 액션으로 결합됐기 때문이다.”

<작전명 발키리>가 올 겨울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쏟아지듯 개봉하는 홀로코스트영화(이를테면 에드워드 즈윅의 <디파이언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영화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브라이언 싱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 홀로코스트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두 번째 장편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1998)은 2차 세계대전에 사로잡힌 소년이 새로운 신분을 가지고 숨어 사는 나치 전범을 협박해 홀로코스트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강요한다는 이야기다. 첫 번째 <엑스맨>은 아우슈비츠에서 처음으로 초능력을 발견하는 매그니토의 과거를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역사적인 비극을 상기시키는 방식은 할리우드의 얄팍한 홀로코스트영화들과는 다르다. 싱어는 유대인(동시에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역사적 훈육의 무기로 삼지 않고 ‘악’(惡)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의 기회로 활용한다. 그리고 그의 탐구는 종종 미학적인 아름다움과 연결된다.

아, 괴물의 아름다움이라니

이를테면, 브라이언 싱어는 <작전명 발키리>에서 제3제국 풍광의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의 카메라가 레니 리펜슈탈처럼 제3제국의 웅대한 아름다움을 찬란히 과시하려 애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회색 수도 베를린에서 펄럭이는 수많은 적색의 나치 깃발들은 어쩔 도리 없이, 아름답다. <작전명 발키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은 슈타펜버그가 히틀러의 별장에서 처음으로 역사상 최고의 괴물을 마주하는 순간에 발현한다. 바이에른의 산맥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목조 별장에는 히틀러, 히믈러, 괴링 등 제3제국의 머리와 팔과 다리들이 모두 모여서 환담을 하고 있다. 그들은 나치를 캐리커처화하는 다른 영화들에서처럼 경박하거나 탐욕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들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괴물의 아름다움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처럼 뒤틀린 우아함에서 공포를 읽어내거나, 공포에서 뒤틀린 우아함을 그려낸다. <작전명 발키리>가 번들번들한 할리우드 공산품을 넘어서서 브라이언 싱어의 지장을 찍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을 통해서다.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된 공포와 매혹을 상업적인 장르영화에 마술처럼 버무릴 줄 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증명한다. 그럼에도 <작전명 발키리>를 싱어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엑스맨>이나 <수퍼맨 리턴즈>보다는 조금 겸손한 야심으로 완성된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빈틈없이 직조된 스릴러가 같은 주제를 창조적으로 변주하며 성장하는 작가의 믿을 만한 속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세계는 계속된다.

역사가 기억하는 ‘발키리’ 작전: <작전명 발키리>와 2차대전 연대기

1933년 1월30일
히틀러 독일 총통 자리에 오르다.

1938년 여름
육군 중령 한스 오스터.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군민 네트워크 작전에 실패하다.

1938년 11월9일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die Kristallnacht) 발생. 독일계 유대인 청년 헤르셸 그린슈판이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의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암살하자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계획적인 탄압이 실시됨. 점포 815개, 주택 171동, 유대인 예배당 193소가 파괴되고 유대인 2만여명이 체포됨.

1939년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2차대전이 발발함.

1939년 11월8일
목수 게오르그 엘저가 사제 폭탄으로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처형됨.

(↓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시작)

1943년 3월13일
헤닝 폰 트레스가 시한폭탄을 히틀러의 비행기에 실어 암살을 꾀하지만 실패로 돌아감.

1943년 4월7일
슈타펜버그 대령이 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해 독일로 송환됨.

1943년 여름
슈타펜버그 일행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히틀러의 발키리 작전을 수정.

1943년 10월
슈타펜버그가 올브리히트 휘하의 육군 장교 본부 참모총장으로 임명됨.

1944년 1월11일
슈타펜버그의 첫 히틀러 암살 시도. 불발로 그침.

1944년 1월15일
히틀러의 사령부인 늑대굴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슈타펜버그의 두 번째 계획도 실패.

1944년 7월20일
슈타펜버그가 직접 늑대굴에 폭탄을 설치함. 폭탄이 성공적으로 폭발하자 발키리 작전 시작.

1944년 7월20일 같은 날 밤
발키리 작전 실패로 돌아감. 슈타펜버그, 올브리히트, 알브레히트 메르츠 폰 퀴른하임, 그리고 베르터 폰 하에프텐 등 주동자 200여명이 즉결 총살당함.

(↓ 영화 <작전명 발키리> 종결)

1945년 4월30일
히틀러 권총 자살.

1945년 5월8일
독일 항복하고 2차대전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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