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를 ‘나이스 가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멀게는 <스플래시>, 가깝게는 <포레스트 검프>부터 <그린 마일>까지 순수하고 선량하면서도 강직한 캐릭터를 그가 도맡아왔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남성 스타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 밑바닥에 자리한 두려움과 유약함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가 연기한 <필라델피아>의 베케트,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 <아폴로13>의 로벨,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밀러 대위 등은 모두 외부적 환경이나 적과 맞서기 위해 이보다 훨씬 어려운 스스로와의 투쟁을 겪어야 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그의 ‘나이스 가이’ 이미지는 지적이진 않지만 사려깊어 보이는 인상과, 근육질은 아니지만 자신의 믿음을 관철시키는 행동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작 <캐스트 어웨이>는 이같은 그의 페르소나가 가장 잘 드러난 영화인지도 모른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척 놀랜드는 페덱스의 해결사로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태어난 듯 열정적으로 일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에 조난된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이곳에서 그는 무한한 시간과 절대적 고독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적을 만나게 된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는 조직할 시간이나 상대할 사람이 없는 이곳이 얼마나 두려움과 외로움을 주는가를,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스스로와 맞부닥치는 한 인간의 실존적 투쟁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연기 상대라곤 나무와 바람뿐이었다. 마치 무성영화를 만드는 것 같았다”고 설명하는 그는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와 결단을 맨몸뚱이로 소화했다.
이렇게 커다란 작품을 끝내놓은 상황에서도 그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 그는 올 봄 미국에서 를 통해 방영될 예정인 1억2천만달러짜리 10부작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러더스>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동시에, 이 미니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직접 감독하고 있다. 또 곧바로 샘 멘데스의 새 영화 <지옥으로 가는 길>에 동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