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는 시나리오]
[뒤집는 시나리오] <쌍화점>
2009-01-21
글 : 길윤형 (한겨레 기자)
“당장 만쑤의 거시기를 그냥 콱!”
<쌍화점>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그리하여 때는 지금으로부터 600하고도 35년 전. 한때 세운상가를 발정난 수캐마냥 워워거렸던 그 남자, 유하 감독이 최신작을 들고 우리 곁에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름하여 <쌍화점>. 당대 최고의 톱스타 조인성의 화끈한 살신성인에 힘입어 흥행은 순풍에 돛단 듯 이어지고 있지만, 시나리오 자체의 힘만으로 놓고 보자면 심히 아쉽다는 항간의 반응 있겠다. 그리하여 내놓는다, <쌍화점> ‘리로디드’.

그러니까 때는 고려 말. 공민왕을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되지만, 굳이 공민왕일 필요는 없는 그 남자의 이름은 ‘맹박’, 그가 아끼는 측근의 이름은 ‘만쑤’ 되겠다. 강호에 노을이 지고, 꽃잎 위에 서리가 앉을 무렵, 원나라 타클라마칸 사막 위서 삽질을 하던 그 남자 전임자 ‘무현 거사’의 삑사리성 실책에 기대 왕위에 오른다.

평생 공사 현장으로만 떠돌다 국내 지지기반이 없던 맹박은 그를 곁에서 보필해줄 병든 아저씨들을 긁어모아 친위대를 삼으니 그들의 이름은 ‘자연위’ 되겠다. 공통된 특성은 예성강 남쪽의 변화한 거리에 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송도 부근의 알짜배기 땅을 사들였다는 점. 만쑤는 그 자연위의 총관이 되는데, 자료 소실로 명확한 고증은 힘들지만, 자연위 총관은 당시 당연직으로 재정경제부 장관을 겸했다고 한다. 이로써 맹박-만쑤는 당시 개경에 머물던 색목인들에게서 ‘리-만 부라더스’라는 별칭을 얻게 되니, 그들이 600년 뒤 등장하게 될 ‘유남규-현정화’ 조, ‘김용대-이효정’ 조와 함께 한국 역사 3대 ‘환상의 복식조’로 등극할지 그 누가 예측이나 했겠냐는 말이다. 아으 다롱디리! 그러나 집권 초기부터 예성강~청천강~압록강 물을 이어 운하를 만들고, 원나라의 병든 말고기를 무더기로 수입한다는 엉뚱한 정책으로 여론은 들끓기 시작한다. 결국 보다 못한 백성들은 개경 송악산 대광장에 모여 항의의 촛불집회를 열고 만다. 적들로 둘러싸인 맹박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만쑤의 무력을 동원해 사태를 해결하려 든다. 만쑤는 송악산 광장 한가운데 ‘맹박산성’을 쌓고 백성들을 흐뜨려뜨리려 하지만 백성들의 외침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미 말씀은 알아들었쏘! 이제 그만 물러들 가시오.”(만쑤)

“그렇담 내일 자시에 다시 오겠쏘!”(백성)

만쑤는 백성들의 고운 목소리에 점점 동조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맹박이 누구던가. 만쑤에게 맹박은 큰형님이자, 스승이고, 연인이었던 것. 정체성의 근원이었던 맹박의 뜻과 백성들의 뜻에 괴리가 발생하자 만쑤는 견디지 못할 심적 고통을 겪게 된다. 만쑤의 변심을 눈치챈 맹박은 점점 광포한 정치를 저지르고 만다. 집회 참가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고려의 참 역사를 위해 고민하는 훈장들을 파면한다. 그리고 대운하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벽란도~예성강’ 구간의 공사를 전격 개시하게 되는데…. 모든 자연위 멤버들을 모아놓은 지하 벙커 회의실. 만쑤는 결국 “백성들을 연모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네 지금 연모라 하였느냐. 당장 저놈의 거시기를 그냥 콱!”

그 사이 점점 커진 백성들의 촛불은 개경 왕성을 둘러싸고, 몸을 피한 맹박은 맹박산성 뒤 송악산에 오른다.

“쌍화점에 쌍화병을 사러 갔더니~.”

백성들의 노랫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맹박의 눈 속에 한 방울 이슬이 맺힌다.

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 장렬한 클라이맥스. 마침 이 현장을 글로 써 옮기던 필받은 당직 사관 과도한 의역과 후대의 오기로 노래 제목을 ‘서리꽃’(霜花)에서 ‘이슬꽃’(露花)으로 잘못 적고 마는데…. 이후 노래는 <고려사절요>에 채록돼 600년 뒤 <아침이슬>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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