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자민 버튼
2009-02-18
글 : 김도훈
“근사하게 나이드는 건 좋지”

-부러워요.
=뭐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늙는 게 인간의 숙명인데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젊어지시는 거 말이에요.
=아니. 그게 왜 부러운 거죠.

-요즘 사람들이 안티에이징에 얼마나 돈을 쏟아붓는지 아십니까. 2008년 미국 안티에이징 화장품 구매액이 40억달러래요 40억달러. 한국도 마찬가지죠. <씨네21> 기자 중에 안티에이징 화장품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걸요. 흠. 정한석, 이영진 기자는 없으려나. 뭐 여튼.
=이해가 안되네요. 젊어지고 싶어서 돈을 얼굴에 바르다니.

-이해가 안되긴요. 돈으로 젊어질 수 있다면 처바를 가치는 있죠 뭐.
=그래도 나이들수록 근사하게 늙어가는 게 좋은 일 아닌가요.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처럼만 늙을 수 있다면야 좋은 일일 수도 있겠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문제 아닙니까. 저도 지난해 여름 갑자기 입가에 팔자주름이 생겨서 거울 볼 때마다 속이 쓰려요. 그것도 왼쪽에만 팔자주름이 생겼다니까요. 웃기게스리.
=왜 왼쪽에만….

-제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조소하는 걸 좋아해서 항상 왼쪽 입매를 치켜올리면서 웃었거든요.
=그건 성격 탓이군요.

-뭐 그렇다면 그런거고요. 하여간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가 사실은 ‘자연스럽게’ 늙는 것도 아니라고요, 둘 다 아침마다 눈가와 입가에 안티에이징 크림 바를걸요. 그것도 제일 비싼 걸로다가. 나이 더 들면 보톡스도 슬쩍슬쩍 맞을 테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나이가 들수록 젊어지는 게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데이지는 점점 늙어가는데 저는 점점 젊어져야 했으니까요. 밤마다 저의 시간을 자연의 시간에 맞춰달라 신께 빌었습니다. 이 마음.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데이지도 초큼 좋았을걸요. 내 남자가 근육질의 정력 넘치고 생기 팔팔한 청춘으로 점점 원상복귀하면서도 한눈 안 팔고 자기만 사랑해주니 속으로 얼마나 기뻤겠어요. 이건 여담인데. 험험. 듣자하니 어린 남자와 한 10살 연상의 여자가 궁합이 최고래요. 게다가 요샌 연하남, 연상녀 커플이 대세라고요.
=아니 이 사람아. 지금 제 삶의 포인트가 그게 아니잖아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마법처럼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은유 같은 영화예요. 무엇보다도 러브 스토리고요. 안티에이징이랑 연상연하 커플이 거기서 왜 나온담.

-허험. 그거야 저도 알죠. 그냥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럼 좀 제대로 질문을 해봐요.

-그나저나 저 그거 진짜 탐나던데요. 거꾸로 가는 시계 말입니다.
=그건 또 왜….

-목요일 아침만 되면 저는 괴로워요. 왜 어젯밤에 마감을 안 하고 잤을까. 오늘은 또 얼마나 독촉을 받아야 하나. 왜 만날 시간에 쫓기듯이 반쯤 포기한 채 원고를 전송해야 하나. 마음이 쓰라려요.
=그게 거꾸로 가는 시계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그걸 마감 저녁 편집장 팔목에 몰래 채워두는 거죠. 그럼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도 수요일 아침인 줄 알 거 아녜요. 호호호.
=지금 장난하냐 이 사람아. 기자라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긴 한 거야 뭐야. 질문이 오늘 왜 이래 대체.

-너 왜 반말이냐.
=응?

-보자하니 나이도 어린 게 계속 반말이네. 너 어른한테 그렇게 대답하라고 부모가 가르치디. 응?
=이거 무슨… 저 벤자민 버튼이에요. 제가 어려 보이고 피부가 팽팽하긴 하지만 나이가 좀 많거등요. 저 노인이에요 노인.

-많긴 무슨. 입증해봐. 입증해봐. 어딜 봐서 니가 노인이니. 새파랗게 젊은 게.(젊은 브래드 피트의 머리에 꿀밤을 강력하게 냅다 꽂는다. 울며 졸리에게 달려가는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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