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는 시나리오]
[뒤집는 시나리오]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2009-02-25
글 : 길윤형 (한겨레 기자)
패한 적 없으면 말을 마~

두구둥!

때는 서기 200하고도 8년. 바야흐로 강호의 패권을 다투던 달인들의 시대입니다.

청코너! 지난 18년 동안 숱한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호구’ 조조! 정치력 96, 무력 93의 압도적인 스펙으로 북쪽 지방의 공손찬, 여포, 원소 등 호적수들을 모두 쓰러뜨린 희대의 기린아입니다. 역대 전적 18승무패. 이제 적벽에서의 세기의 대결을 준비하기 위해 전용 수레를 타고 저만치 강남이 보이는 중국집 양자강에서 자장면 한 그릇에 배갈 한병을 시키고 폼을 잡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홍코너!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무공으로 무장한 손권 체육관의 신예 주유. 지난 18년 동안 상대에게 한번도 속은 적이 없는 허접함을 자랑합니다. 정치력 92, 지력 98에 빛나는 테크니션으로 트라이앵글 초크, 암바, 키락 등 다양한 관절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마침 양자강에서 자장면 값 안 내고 도망친 제갈량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동남풍과 화공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이때, 공 울립니다. 경기 시작됩니다.

조조 선수 여유를 부리며 코너를 한 바퀴 휘젓고 있습니다. 당황한 주유 우물쭈물 간단히 잽을 뻗어보지만, 간단하게 피하는 조조. 당황한 제갈 트레이너 조조군 코너쪽으로 첩자 손상향 투입합니다. 눈치 못 채는 조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원투 스트레이트. 휘청하는 주유. 허겁지겁 클런치하며 위기를 벗어납니다. 조조군으로 투입된 손상향 가볍게 조조군의 막내 트레이너 포섭합니다. “돼지야!” 닭살 멘트 작렬하는 손상향, 분위기 후끈 달아오릅니다.

2라운드. 분위기 압도해가는 조조군. 주유쪽 코너로 감기든 관중을 집중 투입합니다. 당황하는 주유. “에취, 에취”, 기침하는 사람들 늘어납니다. 당황한 주유, 조조의 기습 태클로 테이크다운 허용합니다. 이리저리 몸을 돌리는 주유. 조조 파운딩 펀치 퍼붓고 있습니다. 주유 콜록콜록 기침하며 파운딩 허용합니다. 코피 터집니다. 당황한 주유. 손권 관장 수건 던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급히 제지하는 제갈량 트레이너. 이때 공 울립니다. 주유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3라운드. 첩자 손상향 돌아옵니다. 조조의 유일한 약점은 불이라는 첩보 전해옵니다. 그러나 바람은 아직 북서풍. 주유 선수의 부인 소교 조조 코너쪽으로 투입됩니다. 사모님 미모에 다리 풀린 조조. 멀찍이서 아웃복싱 구사하는 주유를 쫓아다니며 헛펀치 날리기 시작합니다. 십만스물하나, 십만스물. 허공을 십만번 가른 조조의 주먹. 이때 바람 방향 바뀝니다. 제갈량 트레이너 볏짚에 불 붙여 조조군쪽으로 날립니다. 조조군 트레이너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조조 잠시 한눈판 사이에 테이트다운 성공하는 주유. 몸을 틀어 조조의 왼팔을 꺾어 암바 시도합니다. 신음하는 조조. 경기 포기합니다. “달인 맞아? 나가!” 관중, 조조를 비웃습니다.

얼싸안는 주유와 손권 관장. 제갈량 트레이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제갈 트레이너 파이트머니 챙겨 유유히 양자강 건넙니다. 뒤쫓는 주유,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품 물고 쓰러집니다. 이 틈을 타 제갈량 재빠른 솜씨로 형주를 손에 넣습니다. 주유 선수 화병에 걸려 서른일곱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아,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는 달인들의 세계. 그날 적벽의 밤은 오우삼이 그렸던 것처럼 사내들의 의리와 순정으로 빛나던 아름다운 밤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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