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박보영] 제 고민 좀 들어보실래요?
2009-03-06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국민여동생’으로 뜨고 있는 <과속스캔들> 박보영의 2009년

아무도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취재차 찾아간 영화 <울학교 이티>의 촬영현장.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주인공인 김수로가 있었고 그의 양옆에는 이한위와 김성령 등 고참 배우들이, 그리고 또 한쪽에는 고등학생으로 분한 남녀 배우들이 주눅 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본인을 포함한) 기자들은 오로지 김수로에게만 질문했다. 선배 배우들과는 간단히 대화했다. 하지만 어린 배우들에게는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실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그들 가운데 한명이 몇 개월 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될 줄은 누가 알았을 것이며, 다른 한명은 <과속스캔들>의 정남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당시 이민호는 그저 평범한 학원물에 등장하다 사라질 것 같은 다소 ‘센’ 외모의 소년이었다. 박보영은 유난히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소녀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단 한 사람, 배우 이한위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후배들을 한명씩 소개해줬던 그는 박보영을 소개하며 “제2의 문근영을 찜해놓은 배우”라고 말했다. 물론 그의 말은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는 응원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의 예언은 적중했고 박보영은 지금 “김연아씨가 있는데 어떻게 감히 제가…”라고 손사래 치는 국민여동생이 됐다. 이러니 대중이 먼저 선택해야만 반응하는 기자는 얼마나 무력한 직업인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이 박보영을 주목했다고 해도 대중의 동의가 없이는 무력한 발견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관객의 입소문으로 800만 흥행을 달성한 영화의 주인공인 박보영은 더더욱 관객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해 등장한 스타일 것이다.

지금 박보영은 전국의 배우지망생들이 사례분석을 할 법한 하나의 성공신화다. 충청북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우연히 친구들이 찍는 영화에 출연했다가 그 작품을 본 어느 기획사에 발탁되어 상경했다는 과거는 몇 십년 뒤 자서전에 써도 어울릴 전사(前史)다. 게다가 그녀가 800만 흥행의 주역이 되기 이전의 상황들이 알려지지 않다는 것도 신화를 만들기에 적절하다. 나름 많은 청소년 드라마에 출연했고 그중에는 조기종영된 작품도 있었다는 것. 연예인이란 개념이 워낙 희박한 동네에서 살았던 터라 “쟤가 그런 일을 하는 애라며?”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차라리 공부나 계속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했다는 사연들 대신 “분명히 뒤를 봐주는 스폰서가 있을 것”이라는 악성리플이 나돌고 있다. 어떤 사연이 있든 간에 지금 대중에게 박보영은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떨어진 스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박보영이 제2의 문근영이 될 수 있냐”는 리플이나, “이민호 옆에서 떨어졋!”이라고 외치는 안티팬들의 성화도 같은 이유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것이다.

박보영을 둘러싼 이러한 과도한 현상은 불과 2개월 사이에 일어났다. “그저 내가 또 한편을 했구나 하는 성취감 정도”로 <과속스캔들>에 출연했던 그녀에게는 감당하기가 상당히 벅찬 상황이다. 갑자기 미니홈피 방문자 수가 증가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들이 폭주했다. 그녀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소년팬들이 생겼다(인터뷰를 하던 이날에도 18살, 20살의 남성팬들이 아침부터 스튜디오 앞을 지켰다). 말하자면 요즘 그녀의 표정은 ‘당황’이란 두 글자다. 팬들의 환호성에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이고, 학업과 연기를 병행할 계획인데도 “학업에만 전념하겠다”는 기사가 나와 당황이다. 갑자기 쏟아진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 또 당황이다. 순진함이 때로는 상처로 돌아오는 이 세계에서 그녀는 이제야 자신을 지킬 무기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게 뭔가 싶죠. 잠은 잘 자는 데, 깨어 있을 때는 고민투성이에요. 저는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이제 운이 다한 거라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이 많아요. (웃음)”

어쩌면 박보영의 당황은 그녀의 일상이 변하는 속도가 그녀에 대한 시선이 증가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표정일 것이다. 매년 케이크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생일상에 쇠고기 반찬이 올라왔고 평소에는 무심했던 친구들이 사인을 부탁하기 시작했으며, 동네 슈퍼를 갈 때 옷매무새를 챙기게 됐다는 게 일상의 변화라면 변화다. 물론 인터뷰를 하면서 간간이 농담을 섞는 여유나 스튜디오 밖에서 추위에 떠는 팬들을 불러 사인을 해주고 돌려보내는 배려도 생겼다.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어느 정도 철도 들었고, “예전에는 할당량을 채우려 했다면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도 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웃는 얼굴을 포커페이스로 장착할 만큼의 의연함은 아직 자라지 않았다. 굳이 미니홈피까지 찾아와 악플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야속하다. “흔히 그런 것에 무뎌진다고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그녀를 찾아 달려온 팬들에게 무엇을 해줄지 몰라 난감할 때도 많다. “웃고 손 흔드는 것밖에 못해서 죄송하죠.” 무작정 “남자친구 있냐”고 캐묻는 기자들 때문에 곤혹스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만 걸려라 하고 질문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사적인 질문은 아직도 힘들어요. (웃음)” 게다가 아직 빠지지 않은 젖살도 고민이다. “다들 실제로 봐야만 예쁘다고 하셔서 슬퍼요. (웃음)” 그러니 “기쁨보다 걱정이 많다”는 말은 괜한 투정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박보영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 앞으로는 영광보다 상처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이제는 잘해봤자 본전”이라고. 남들은 동안이라고 부러워하지만 “오히려 동안이 어느 한순간 팍 삭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지난 2008년을 다시 돌이켜보기도 한다. “지금 와서 보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싶은” <왕과 나>의 소화, “젖살이 가장 통통하게 올랐을 때”라 부끄러웠던 <초감각커플>의 현진, “오빠들 틈에서 마음껏 어린 티를 낼 수 있었던” <울학교 이티>의 송이, 그리고 “어느 장면 하나 민망하지 않은 게 없었던” <과속스캔들>의 정남까지. 오죽 걱정이 많았으면 2009년의 목표를 “무조건 잘 버티자”로 정했을까. “아마도 출연한 작품들이 계속 안됐다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부담없이 일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올라가는 게 있으면 내려가는 게 있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2009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생활 2개월차의 배우는 지금 그처럼 남들이 덜어줄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이다. 물론 그 뒷면은 설렘으로 가득이겠지만.

스타일리스트 장미영·의상협찬 JIAKIM, ELIZABETH, TOPGIRL, JACK & JILL, vianni, PARK K ,GUESS, McGINN KNIGHTS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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