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에게 신이 내렸다. 3월25일 한국과의 결승전이 끝난 직후 그는 인터뷰에서 연장 10회 초 안타를 치는 순간 신이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만화에서만 듣던 ‘야구의 신’이 강림했다는 말이다. 말은 참 번드르르하게 한다 싶어 역시 이치로란 생각이 들었다. 끝나지도 않을 것같이 지난하게 이어지던 경기는 그의 안타로 마무리됐다. 그간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치로는 다시 웃었고, 한국 팬들은 다시 속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이치로는 계속 말했다. “드디어 사무라이 재팬이 될 수 있었다”, “결과가 나와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등. 화려한 말, 말, 말이 이어졌다. “분한 마음에서 시작해, 고통으로 이어졌고, 다음엔 마음이 아팠지만, 최종적으론 웃는 얼굴이 되었다”고 답한 인터뷰는 시적이기까지 했다. 보도의 와전, 왜곡에 대한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는 항상 야구만큼 말과 멋으로 뜨겁다.
WBC의 이치로를 보면서 일본의 대표배우 기무라 다쿠야가 떠올랐다. 둘 다 모두 실력으로 정상에 올라선 선수, 배우지만 이들의 화려함에는 실력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이 있다. 일단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일본 야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선수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해 단숨에 톱타자로 떠올랐다. 첫해부터 안타 242개를 치며 빌 테리 이후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고 아메리카리그의 신인왕, MVP도 수상했다. 그는 일본에서 수출한 최고의 스포츠 선수가 됐다.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국가 대항전을 할 때는 일본의 자존심을 손에 쥔 나라의 영웅이었다. 이치로는 자기만의 시원스러운 말들과 멋을 의식한 듯한 타격 자세로 일본인들의 마음을 샀고, 사람들은 그를 보며 야구를 넘어 일본의 위상을 생각했다. 그의 안타가 유난히 얄미운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기무라 다쿠야도 마찬가지다. 그의 인기에선 스포츠 선수에게서 곧잘 보이는 대중의 열망이 보인다. 젊고 생생한 남자 배우들이 끊임없이 나와도 그가 쥐고 있는 각종 랭킹 1위의 타이틀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이돌 그룹 SMAP에서 시작해 20년 가깝게 톱 그룹의 자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은 참 신기하다. 물론 인기의 5할은 그가 가진 매력과 실력의 결과겠지만 나머지 5할은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념의 결과다. 데뷔 초기 기무라 다쿠야는 흔들리는 청춘의 초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일본의 프라이드가 되었다. <히어로> <엔진> <프라이드> <체인지>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그를 일본의 또 다른 영웅으로 만들었다. 기무라 역시 이에 응답해 어깨에 힘을 넣었고, 가끔은 시 같고 가끔은 노래 가사 같은 말들로 자신을 특화했다. <롱 베케이션>과 <프라이드>의 기무라는 너무 다르다. 사람들은 마치 ‘일본의 대표 미남’을 지키듯 기무라를 사랑한다. ‘일본의 자존심’을 내세우듯 이치로를 자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겉에서 보기엔 소란스럽지만 그게 일본에서 국민스타가 완성되는 방식이다. 스즈키 이치로와 기무라 다쿠야. 둘은 야구와 TV에서 그릴 수 있는 최상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