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때 <슬리퍼>를 처음 본 이후 우디 앨런의 팬이었다. 이번에 런던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들었는데, 오디션 요청을 못 받아서 속상했다. 감독님이 이 기사를 혹시라도 읽는다면, ‘나 정말 출연하고 싶으니까 내 에이전트에게 꼭 연락주세요!’” 이 인터뷰가 실리고 3개월 뒤, 기적처럼 우디 앨런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서 반갑소. 미국식 악센트를 할 수 있나?’ 난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럼 됐소, 안녕.’” 2주 뒤 그의 비서가 전화했다. “다음 영화에 당신이 출연했으면 한다. 촬영지는 스페인이다.” 그렇게 레베카 홀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 출연하게 됐다. 14살부터 꿈꿔온 환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2003년 연극 <워렌 부인의 직업>으로 데뷔하자마자 이안 찰슨 어워드를 수상한 이래,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와 D. H. 로렌스를 휩쓰는 동안 레베카 홀은 전설적 여배우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재래’라는 찬사를 지겹도록 받았다.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출연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비키 역이 쉽지만은 않았다. 예전 우디 앨런 영화에서라면 대부분 앨런 자신이 직접 연기했을 주인공의 성격이 부여된 비키, 소심하고 자기혐오에 시달리며 핑계와 체면을 찾느라 부산을 떠는 그런 인물. 레베카 홀은 스칼렛 요한슨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후끈한 에너지의 반대편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는 비키를 한치의 오차없이 리얼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우디 앨런과의 꿈에 그리던 작업을 마친 소감은 과연 어땠을까? “그는 언제나 솔직하고 감성적이며 따뜻한 사람이다. 모두가 그의 침대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 (웃음)” <프로스트 vs 닉슨>에 이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까지 보고 레베카 홀을 점찍었다면, 이 영리하고 매혹적인 배우의 차기 출연작에 오스카 와일드 원작을 영화화하는 <도리언 그레이>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