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나는 관습이 지루하다”
2009-05-05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 특별전을 연 라야 마틴 감독

겨우 네 작품을 만들었을 뿐인데 그 때마다 칸영화제와 말이 오갔던 필리핀의 젊은 감독 라야 마틴.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며 그는 “아마도 실험적인 영화로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해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번 특별전 때문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라야 마틴을 만나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나는 젊다. 그래서 관습에 따르는 게 지루하다.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지’를 생각하며 도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무성영화 형식이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의 배경이 된 1890년대는 무성영화가 많이 제작되던 때다. 무성영화는 소리가 없어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다. 당시의 할리우드 무성영화보다는 소련 무성영화 감독인 도브첸코 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이미지가 기술적, 학술적이라면 도브첸코의 이미지는 진실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필리핀 무성영화들은 전쟁 자체만 다루고 전쟁으로부터 고통 받는 대중들은 전혀 다루지 않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대중들을 담고 싶었다.

-소리가 없어서인지 영화 중간마다 나오는 자막의 비중이 크다.
=불필요한 소리 없이 메시지를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그게 바로 자막의 역할이다. 문자를 통해 영화의 내용, 이미지를 함축시키는 것이 무성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필리핀 인디오...>는 <연인들>과 함께 필리핀의 역사와 필리핀 영화 자체에 관심과 애정을 쏟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부모님은 1970,80년대 마르코스 독재정권 아래서 정권에 저항하는 글을 썼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형 역시 진보적인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라 어릴 때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 또래 세대들은 자라면서 영어를 배우고 자랐지만 나는 필리핀어(따갈로그)를 배웠다.

-<다음 상영작>은 고다르의 <경멸>, 펠리니의 <8과 1/2>처럼 ‘영화 만들기’에 대한 생각 같다.
=맞다. 그들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 만들기’ 행위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미지들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 개인적인 소재를 어떻게 보편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다 보니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좀 더 편안해졌다.

-<상영중>은 4시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다.
=내게는 굉장히 자전적인 영화다.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일들을 주인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일기 쓰듯이. 일기라는 게 끝없이 계속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것처럼 ‘영화는 끝이 나지 않는 작업’이며 ‘끝날 수 없는 작업’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길게 만들었다.

-요즘 당신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가.
=최근 TV를 즐겨본다. 특히, ‘프로젝트 런웨이’와 같은 미국 리얼리티쇼를 열심히 본다. 유치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내게 많은 자극을 준다.

-차기작을 안 물어볼 수 없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디펜던시아>(Independentsia)라는 제목으로, 미국 점령기 시절의 엄마와 아들 이야기다. 또 다른 하나는 <마닐라>라는 제목인데, 마르코스 독재시절 수도 마닐라의 풍경을 다룬 내용이다. 유튜브에 가면 이 두 편에 대한 소개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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