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톰 행크스] 톰 행크스 코드, 언제나 미더운
2009-05-08
글 : 김도훈
<천사와 악마> 주연 톰 행크스

로버트 랭던 교수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지구 종말의 날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런 게 유행할 리가 없다는 소리다. <다빈치 코드>에서 보여준 톰 행크스의 헤어스타일은 2006년 할리우드의 최고 실수 중 하나였다(두 번째 실수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리메이크라고 해두자). 혹자는 <다빈치 코드> 자체가 톰 행크스 경력상 최대의 실수라고 했다. 여하간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건 분명했다. 공식적으로야 원작자 댄 브라운도 톰 행크스의 캐스팅을 반겼다지만, 그는 소설 속에서 로버트 랭던이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고 썼다. “로버트 랭던을 톰 행크스가 맡는다고? 완벽하구먼!”이라며 무릎을 쳤을 리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제작진이 톰 행크스를 캐스팅한 속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바티칸과 수천만명의 크리스천들을 분노로 들썩이게 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 로버트 랭던을 좀더 친근하고 선량하고 공명정대한 이미지로 완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야 대답은 하나다. 톰 행크스.

마치 종교적 제임스 본드 영화같은

톰 행크스의 덕이었건 원작 팬들의 덕이었건 <다빈치 코드>는 전세계적으로 8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당연히 속편이 나왔다. 제목 한번 직설적인 <천사와 악마>다. 그런데 <천사와 악마>의 원작은 사실 댄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보다 먼저 출간했던 책이다. 스위스의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과학자 베트라가 가슴에 일루미나티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해된다. 베트라를 죽인 살인자는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로 발탁된 네명의 추기경을 고대과학의 4원소인 흙, 공기, 불, 물을 이용해 살해할 것이라 경고한다. 게다가 살인자는 수천년 전부터 지속되어온 교회의 일루미나티 탄압에 대한 복수로 어떤 물질과 닿기만 하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반물질을 바티칸 깊숙이 숨겨놓는다. 이제 로버트 랭던은 24시간 안에 반물질도 찾고 추기경 살인도 막아야 한다. 톰 행크스에 따르면 <천사와 악마>는 전편보다 더 빨리 본론으로 달려가는 액션영화다. “이번 영화에는 ‘이제 로맨스를 위해 한번 멈추어 서볼까?’ 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로버트 랭던이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전력질주 장면과 폭발과 화염이 나온다. 주먹다짐은 없다. <천사와 악마>에는 계속해서 째깍째깍 흐르는 시계가 존재한다. 랭던은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암살자의 시도를 멈춰야만 하니까.” 전작이 종교적인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종교적인 제임스 본드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더 재미있을 거란 소리다. 게다가 로버트 랭던 교수의 헤어스타일도 전편보다 훨씬 낫다.

사실 지난 몇년간 톰 행크스는 잠시 멈춰 섰다. <로드 투 퍼디션>(2002)과 <터미널>(2004), <찰리 윌슨의 전쟁>(2008)의 행크스는 여전히 근사했지만 기억에 콱 박히지는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여기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는 <터미널>이 톰 행크스의 가장 위대한 연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톰은 미국이 아끼는 아들이다. 그런 이미지를 없애고 동구권 악센트로 말하는 캐릭터를, 이전에 보아오던 톰 행크스처럼 보이지도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그건 배우로서 더 뻗어나가려는 톰 행크스의 용기다.” 스필버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톰 행크스는 <필라델피아>와 <포레스트 검프>에서 절정을 맞이했고, 이후로는 적당히 안전했다. 그게 나쁜 일인가. 글쎄. 생각해보면 톰 행크스는 이제 노력할 필요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는 53살이다. 나이보다 미숙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코미디 배우로 시작해 지독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가 제임스 스튜어트에 비견할 만한 미국의 얼굴이 됐다. 한 배우가 성취할 수 있는 모든 단계의 변신을 다 부려봤으니 이젠 믿을 만한 톰 아저씨로 남는 게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선병질적인 연기파 배우가 득세하는 시대에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언제나처럼 믿음직하고 굳건하게 남아 있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라면 믿을 수 있다

행크스는 <천사와 악마>에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CERN의 빅뱅 실험 재가동 스위치를 켤 예정이다. 지난해에 시험 가동을 한 CERN의 빅뱅 실험은 말이 많았다. 스위치를 켜는 순간 지구가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갈 거란 소문 때문에 전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해는 시험 운행에 불과했다. 올해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면 전세계 음모론자들이 또 난리를 쳐댈 것이다. 이쯤 되면 CERN이 톰 행크스의 손을 굳이 빌린 이유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건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의 제작진이 톰 행크스를 캐스팅한 이유와 동일하다. 그는 너무나도 믿음직한 이미지의 배우다. 지구가 톰 행크스의 손 위에서 종말을 맞이할 거라고 상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지구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에 대한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물론이다. 하지만 블랙홀 말고 지구를 연기하고 싶다.” 톰 행크스라는 종교는 언제나 미덥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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