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전영객잔] 일본영화나 소설적인 어떤 것
2009-05-07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 던지는 두 가지 물음표

4월16일 11회 서울여성영화 폐막식에서 아시아 단편영화 경선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심사위원장 공효진이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어 상영된 수상작 중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것은 한 여고생이 첫 경험을 한 뒤 연달아 겪는 성폭행에 관한 단편 <내게 사랑은 너무 써>(전고운 연출)였다. 다른 상은 대만, 중국의 여성감독들이 받았다. 공효진은 심사 과정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서울여성영화제가 공효진을 심사위원으로 청했던 것은 물론 최근 그녀의 활약 때문이다.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와 부지영 감독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 출연하면서 그녀는 2008년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여성감독들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난 <행복>의 수연 역의 공효진이 그녀에겐 최선의 적역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피 무늬를 입은 호리호리 한 맹금류가 도시에 나타난 듯했다. <행복>에서 내가 그녀를 보기 전 ‘전영객잔’의 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허문영은 스크린 밖 공효진의 어떤 빛나는 생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후 난 스크린 위에 그녀가 나타나면 그 빛을 찾곤 한다. <미쓰 홍당무>에선 정확히 그런 빛은 아니지만 전반부 피부과에서의 언변은 대단하다. 연출가가 연기 호흡을 참 잘 잡아낸다고 느꼈다. 한편 당시 정성일은 배우 정유미의 열정에 대해 말했다. 지금이라면 난 배우 양은용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설득력 없는 깨달음

지난주 바로 이 지면에서 정한석은 <우리집에 왜왔니> <키친>과 더불어 다른 여성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인 <그녀들의 방> <어떤 개인 날> <나무 없는 산>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언급하면서 이 영화들이 달콤한 케이크 장르와 씁쓸한 연대의 양태로 나뉘어져 있다고 관찰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 관한 평들은 대부분 두 자매 명주(공효진)와 명은(신민아)의 연기 방식에 공감하지만, 반전에 이견을 단다. 사실 난 공감도 이견도 견지하는 바가 없고 오히려 왜 이런 서사가 동시대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왔는가에 관심이 간다. 첫 번째 참조물은 페드로 알모도바르다. 두 번째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신민아 주연 영화와는 다른 텍스트) 등의 소설이다. 이 순서는 아마 바뀌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자매, 모녀의 관계를 다룬 많은 영화들, 소설들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 좀더 좋은 것으로 섞어내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다.

의견 분분한 반전 이전에 이 영화가 안전핀으로 장착한 것은 의외로 ‘고향’이다. 이 고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엔 물론 새로운 것이 있다. 제주도 바닷가가 두 자매의 고향이다. 명주는 제주도에서 엄마의 가업인 생선가게를 이어받아 부지런히 일한다. 영화의 첫숏이 명주가 생선가게용 장화를 신는 장면이고, 이어 서울에서 커리어를 쌓는 명은과의 대조적인 교차편집이 이루어지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받고 둘은 제주에서 만난다.

살고 있던, 그리고 다시 찾은 고향을 뒤로하고 둘은 명은의 생부를 찾아 나선다.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내륙으로 향한다. 배에서 명주와 명은의 갈등이 튀어나온다. 명주는 배 안에서 설치된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논다. 명은은 명주에게 알코올중독자이고 사생아를 낳은 무책임한 엄마이며 남자들에게 치근댄다고 폄하한다. 명은이 명주를 오락실에서 보기 전 우리가 본 것은 명주가 남자들에게 치근대는 광경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가 명주에게 접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린 명은의 이런 질타가 과장된 것임을 일찌감치 알아챈다.

영화의 예의 반전은 뭐 그렇지만 내게 좀 의외의 과잉은 자동차 사고와 모친상 이후 두딸들의 애도의 부재다. 영화에서 자동차 사고는 우리 실제 인생과는 달리 사실 어떤 쪽으로나 극적으로 사용되는 장치다. 즉 갑자기 극중 인물을 죽일 수도 있고 또 기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존하는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종종 이렇게 자동차는 질주 대신 플롯의 조정 및 인물 특징의 갑작스런 변경과 제거 장치로 쓰인다. 이 영화에서도 반전을 위한 깨달음은 자동차 사고 이후에 온다. 자동차 사고로 갈비뼈에 금이 간 사람이 회전놀이기구를 타는 설정도 이상하지만, 그 회전기구를 타다가 성을 둘러싼 어떤 전환에 대한 이해로 머리 회전이 되는 것도 미스터리다. 비주얼하게 개연성이 있어 보일지 몰라도, 아, 안타깝게도 마음이나 머리로 설득력있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이 영화가 자신의 당면한 과제를, 현실을 핍진성, 개연성있게 재현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넘어가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질문은, “이러한 미스터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에 기운다. <우리집에 왜왔니>를 따라 정한석이 여성감독들의 영화에 던진 질문 ‘그녀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의 변형이기도 하다.

모친상 이후 애도가 보이지 않는다

회전놀이기구 위에서의 깨달음의 미스터리에 더하여 또 다른 미스터리는 모친상 이후 애도의 부재다. 영화의 초반, 상을 치를 때의 통곡(명주)이나 흐느낌(명은),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 정리 뒤 명은은 애도에 잠기는 대신 아버지의 행적과 거취를 찾아 나서자고 성화다. 그러면서도 명은은 명주에게 어머니의 상을 치른 사람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엄마와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시작하지만, 영화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사실 신속히 아버지 축으로 옮겨간다. 아버지를 찾는 여행이 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명주가 아니라 명은의 아버지다. 배다른 자매들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이러한 우회로를 거쳐 이 영화가 던지는 그리고 맞닥뜨리려는 미스터리는 ‘나를 낳고 버린 아버지’의 거취다. 영화는 이상하게도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엄마의 과거와 연결된 자로서의 두 번째 아버지보다는 생부로서의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말하자면 엄마의 무덤이 채 마르기도 전에 딸은 오히려 장례식 절차를 위한 휴가 기간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사용한다. 당연히 이 영화의 빈 곳은 그래서 모녀나 자매, 여성의 연대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발견함으로써 메워지게 되어 있고, 반전은 그래서 반전이 되는 것이다. 영화가 발견해내는 아버지는 그러나 그 빈 곳을 채우는 아버지는 아니다. 이러한 ‘대안적’ 아버지는 이미 아버지로 호명되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탐색이 아버지 아닌 아버지를 깨닫는 것으로 끝날 때 이 영화는 명주의 어머니 그리고 명주, 명은 그리고 명주의 딸 그리고 플러스를 더한 명주의 라인을 완성한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모계에 통합된다.

영화 초 중반부의 소란하고 히스테릭한 분위기에도 이 영화에는 어딘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낙관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에게는 고향과 엄마가 물려준 가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역설적이기도 하고 직설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은 매우 일본적인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두딸은 영화의 결미,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는데 사실 이러한 귀향은 근대화가 일어난 60, 7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아들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그 무엇이다. 반면 이 이복자매들은 함께 외지에 나가 교통사고 등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가질 파급력에 대해 그렇게 낙관하는 편은 아니다. 영화 언어적으로는 그리 전복적이거나 대항 논리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마음의 질서, 정동의 논리로 전환시키지도 않는다. 난 상투적 형식으로 대안적 서사를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 편이다.

<어떤 개인 날>에 주목한다

이 영화와 더불어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이다. 이 영화는 여성들간의 차이에 대한 독백과 대화의 한 경관을 펼쳐 보인다. 지정남이라는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라디오 진행자이자 배우인 여성의 성에 대한 입담이 진경 중의 진경이다. 이 영화에도 어떤 안전장치가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혼한 엄마의 딸에 대한 애정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고향이나 <어떤 개인 날>의 모녀와 같은 대안적 안전장치들이 좀 불편하다. 이 수구의 시대, 대안과 대항 사이에 어떤 교량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런 장치들이야말로 여성감독들이 고안해낼 수 있는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오락가락한 상태에도 난 지난해 이후 상당수의 여성감독들이 자신의 작품을 영화제와 시장에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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