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must see] <드래그 미 투 헬> 공포는 무시무시한 리듬이다
2009-06-16
글 : 김도훈
고전 호러영화에서 발견한 새로운 즐거움, <드래그 미 투 헬>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감독 샘 레이미 각본 샘 레이미, 이반 레이미 출연 앨리슨 로먼, 저스틴 롱, 로나 레이버, 제시카 루카스 수입·배급 (주)케이디미디어 제작연도 2009년 상영시간 99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6월11일 상영관 와이드 릴리즈

샘 레이미가 호러 장르로 복귀했다. 20여년 만이다. 물 만난 고기가 얼마나 헤엄을 잘 치는지 알고 싶다고?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면 된다. 여기서 샘 레이미는 고전적인 호러영화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낸다. 아주 무시무시하다. 미친 듯이 웃긴다. 정신없이 구역질난다. 진짜 롤러코스터 호러영화란 이런 걸 말한다.

그 옛날 한국의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무섭다고 소문난 비디오가 몇개 있었다.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인간>(From Beyond)이나 미켈레 소아비의 <아쿠아리스>(Deliria),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Demoni) 같은 영화들 말이다. 입소문의 정점에는 언제나 샘 레이미의 데뷔작 <이블 데드>가 있었다. 호러영화 마니아들은 다소 거드름을 떨며 말했다. 역시 <이블 데드> 정도는 돼야 무섭다고 할 수 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설명은 조금 핀트가 어긋났다. <이블 데드>는 뭐랄까, 정말 무섭기는 한데 너무 무서워서 오히려 웃음이 나거나, 혹은 이게 지금 무서운 건지 웃긴 건지 대체 구분이 안되는 종류의 영화였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튀어오르면서도 키득거리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샘 레이미가 <이블 데드>를 새로운 각본으로 리메이크해서 만든 <이블 데드2>는 광포한 고어와 광란의 코미디가 아예 절반쯤 뒤섞여 있는 오락영화였다.

<이블 데드> 시리즈를 향한 B급 영화광들의 컬트적 숭앙은 이제 일종의 전설로만 남았다. 지금의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거대 스튜디오의 총아다. 하지만 샘 레이미의 오랜 팬들이라면 이 남자가 스튜디오의 압박을 벗어나 끝내주는 저예산 호러영화 한편 만들어주기만을 고대하고 있었을 거다. 샘 레이미 역시 자신의 뿌리를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스파이더 맨2>의 병원 시퀀스를 <이블 데드>에 대한 오마주처럼 찍어냈고, ‘고스트 하우스 픽처스’라는 호러 전문 영화사를 만들어 <부기맨> <그루지> <메신져: 죽은 자들의 경고> 같은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그리고 샘 레이미는 마침내 오랜 장르로 복귀했다. <이블 데드>를 함께 만들었던 동생 이반 레이미, 친구 로버트 타퍼트를 모두 끌어들인 <드래그 미 투 헬>은 오랜만에 자신의 진짜 영역으로 들어선 대가의 난장판 놀이터다.

파리·침·오물 삼키기… 샘 레이미의 악취미는 여전

주인공 크리스틴(앨리슨 로먼)은 성실하지만 어딘지 약간 자신감없는 은행 대출 상담원이다. 그녀는 소박한 인생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줄 중요한 두 가지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는 부지점장으로의 승진,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대학교수 남자친구(저스틴 롱)와의 결혼이다. 각각의 목표에는 장벽이 있다. 지점장은 크리스틴이 부지점장이 되기에는 결단력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남자친구의 부유한 부모는 가난한 시골 출신의 크리스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틴은 집을 차압당하게 된 노파 가누쉬(로나 레이버)의 대출 상환 연기 상담을 맡게 된다. 크리스틴은 불쌍한 가누쉬 부인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부지점장으로 승진하겠다는 욕망 때문에 결국 부탁을 거절한다. 가누쉬 부인은 갑자기 크리스틴의 코트 단추를 뜯어내며 악마 라미아의 저주를 퍼붓는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이후 3일간의 유예를 둔 채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악마 라미아에 맞서는 크리스틴의 고난기다.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온갖 악취미를 찬란하게 펼친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더럽고 추악하고 역겨운 것들을 삼켜야만 한다. 파리, 노파의 입에서 쏟아지는 침, 죽은 노파의 입에서 쏟아지는 오물, 눈알 등등이 영화 내내 그녀의 입으로 벌컥벌컥 기어들어간다. 노파의 팔이 통째로 크리스틴의 입으로 처박혀 들어가는 장면은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를 연상시키고, 영매가 나오는 강령회 장면은 <엑소시스트>나 로버트 와이즈의 <더 헌팅>(The Haunting) 같은 오래된 오컬트영화를 떠오르게 만든다. 샘 레이미는 <드래그 미 투 헬>을 통해 새로운 불쾌함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레이미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호러영화 속 도구들을 내키는 대로 끌어들였다. TV에서 기어나오는 처녀귀신? 머리를 쪼개는 고문장치? 그보다는 파리와 구더기, 오래된 공동묘지가 훨씬 재밌어! 라는 투다.

그러니까 이건 진짜 구식 호러영화다. 샘 레이미 역시 <드래그 미 투 헬>을 통해 “구식(Old-Fashioned) 호러영화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확실히 <드래그 미 투 헬>은 최근 몇년간 할리우드와 프랑스, 아시아를 휘감았던 호러영화계의 트렌드를 완벽하게 역행한다. 관객이 입과 귀를 틀어막고 손가락 사이로 겨우 동공을 꺼내어 신음하게 만들어온 가학적인 ‘고문 포르노’의 마조히즘적인 속성은 여기에 없다. 물론 극단적인 고어에의 집착은 호러 장르 역사에 언제나 오롯하다. 문제는 실감나는 고어를 재현하는 것으로 훌륭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다. 샘 레이미 역시 ‘최근의 호러영화들이 장르가 필요없을 만큼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냐고? 호러 장르 본연의 즐거움이 빠졌다는 소리다. “나는 놀이동산에서 유령의 집에 들어간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싸구려 유령의 집에는 허영이 전혀 없다. 그저 사람들을 놀라게 해서 뛰어오르게 만들 뿐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이 바로 그런 영화다. 조금 싸 보여도 괜찮다. 어쨌거나 으스스하면서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

비명 지르다 폭소 터뜨리는 영화

샘 레이미는 호러영화의 목표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만큼이나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거란 걸 잊지 않는다. “내가 호러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함께 비명을 지른 뒤 다 함께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호러영화의 웃음이 헛웃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웃음은 전혀 기대치 않았던 부분에서 소스라치게 놀란 뒤 저절로 튀어나오는 종류의 웃음이다. 바로 여기서 샘 레이미의 거의 천재적인 완급 조절 솜씨가 빛을 발한다. 샘 레이미는 <드래그 미 투 헬>을 통해 공포는 무시무시한 비주얼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리듬이라고 설법한다. <드래그 미 투 헬>의 거의 모든 시퀀스는 능수능란하게 관객의 긴장을 조였다가 이완시키는 데 성공한다. 샘 레이미는 하나의 테이크를 도에 지나치게 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천히 당기고 당기고 또 당기다가는 갑자기 놓아버린다. 그 순간 관객과 주인공을 공히 괴롭히는 효과음과 어안이 벙벙한 연속 액션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모든 건 일순간에 멈추어버린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서서히 트랙을 오르다가 갑자기 추락한 뒤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롤러코스터다(한국 호러영화감독들에게 이 영화의 시퀀스들을 컷 바이 컷으로 베껴서 영화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드래그 미 투 헬>은 기막히게 배배 꼬인 일종의 도덕적 수난극이기도 하다. 주인공 크리스틴은 비합리적인 선택만 계속하다가 관객의 짜증을 남발하는 보통 호러영화들의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초현실적인 처지를 금방 납득한 뒤 합리적인 구원책을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행동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지옥문을 열어젖히고, 자잘한 실수들로 인해 지옥문을 닫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샘 레이미는 가차없다. 그는 크리스틴과 관객을 동일화한 뒤 결국 초자연적인 힘 앞에 가뿐히 무릎을 꿇리고야 만다. 어쩔 도리 있겠는가. 우리 모두 크리스틴과 함께 온갖 오물을 처마시고 뒤집어쓴 뒤 결국 이 기막힌 장르의 롤러코스터 앞에서 기진맥진한 채 항복하는 수밖에. 샘 레이미의 오랜 팬들이라면 박수를 치며 또다시 지옥문을 열어달라 간청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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