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블러드>에 전지현(영화 크레딧에는 ‘지아나’라고 오른)이 어떻게 나올까 꽤 기대했다. 딱히 전지현의 팬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스타가 국제적인 영화의 주연으로 나오면 어떨까 궁금해서다. 그녀에게도 꽤 현명한 배역 선택인 것 같았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의 침울한 TV 프로듀서 역보다는 1970년대 일본에서 여고생인 양 행세하며 영어로 말하는 악마 사냥꾼 전지현을 보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홍콩의 유덕화나 한국의 송강호는 극단적 상황에서 그들 자신을 발견하거나 특별한 일을 해내는 보통 사람들을 연기하면서 스타가 됐다. 따라서 그들의 스타 이미지는 친숙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그것이다. 이에 반해 전지현이나 장동건 같은 한류 스타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들이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스타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출연한 광고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그들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런 스타 이미지는 그들이 계속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송강호는 자신이 원하는 이러저러한 역을 할 수 있을 테지만, 한류 스타들이 평범한 역을 맡는다면 스타 이미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요즘 관객은 특별한 스타들이 평범한 인물로 나타나는 것을 혐오한다. 따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역은 굉장히 특별한 인물들뿐이다. 예를 들어 장동건은 장진의 다음 영화에서 한국 대통령으로 나온다(언뜻 보기엔 말도 안되는 듯하지만 제법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 좋은 것은 해외에서 영화를 만들어 새로운 글로벌 관객을 만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커리어상에서 상향 이동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 그들의 스타덤 자체가 이들을 한국 밖으로 내모는 것이기도 하다.
<블러드>는 성공작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재미있는 원작에 기초한데다 여러 문화권에 어필할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원래 감독을 맡기로 한 우인태가 아무 재능도 없어 보이는 크리스 나흔으로 교체되면서 영화를 망쳤다. 시나리오 각색 역시 형편없다. 크리스 차우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이 사람은 생명력없고 무거운 대사와 영화 내내 표정 한번 바꾸지 않는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인물들을 만들어낸 벌로 100시간 동안의 지역봉사 명령을 받아 마땅하다.
전지현은 그녀가 연기해야 했던 평면적 인물을 그런 대로 잘 소화해냈다. 영어도 괜찮았다. 원어민이 하는 것처럼 들리지야 않겠지만 그녀는 비원어민 역할을 한데다 그녀의 목소리가 갖는 질감은 그나마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앞으로 그녀는 성공적인 국제적 경력을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할리우드 스타들도 처음에는 형편없는 영화들로 경력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고예산 국제영화에 캐스팅되는 것은 어렵지만 스타의 특정한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A급영화에 캐스팅되는 것은 더 어렵다. 한류 스타들은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