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콩을 들다>에 대한 판정은 들면 이기고 들지 못하면 지는 역도경기만큼이나 쉽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멜로드라마, 오합지졸 선수들이 진짜 선수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질 소동극, 게다가 실화, 결국에는 뻔하디뻔한 스포츠영화. 말하자면 <킹콩을 들다>는 ‘정통적’이다 못해 ‘전통적’인 영화다. 하지만 익숙한 공식들을 오밀조밀하게 엮어낸 솜씨를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다. 또한 비인기 종목인 역도경기에서 일어난 실화의 근거가 궁금해지는 영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아테네올림픽은 많은 사람이 지켜봤지만, 2000년에 열린 전국체전, 그것도 역도경기를 실제로 목격한 이는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데뷔작의 개봉을 기다리는 박건용 감독을 만났다.
- 시사회 반응이 좋은 것 같다.
= 좋아해주는 관객이 많아서 좋긴 한데, 그래도 긴장된다. 웃음이 많이 터져나온다고 해서 호응도가 좋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 배우들이 분명 앙금을 가지고 있을 것 같더라. 훈련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던데. 감독을 가만두던가.
= 나에게도 역기를 들어보라고 조르곤 했다. (웃음) 지지 않으려고 들어보기는 했는데, 한 30kg 들었던가? 최근 살을 빼려고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좀 해봤다. 해보고 나니 내가 정말 몹쓸 짓을 한 것 같더라. 이렇게 힘든 걸 시켰다니. (웃음) 사실 처음에는 같이 운동도 하려고 했었는데, 프리 프로덕션 때문에 같이 뛰지는 못했다. 같이 뛰면서 오바이트라도 했어야 했는데…. (웃음)
- 실화에 근거한 영화다. 어떻게 알게 됐나.
= <태풍>의 조감독을 했었다. 곽경택 감독님이 이야기해주신 거다. 친한 기자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전국체전 역도경기에서 한 소녀가 경기를 끝내고 막 울더란다. 왜 우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한 거다. 그때 땀인지, 눈물인지 구별이 안되는 얼굴로 역기를 들어올리는 소녀의 얼굴에 꽂혔다. 그 뒤 실화의 배경이 된 전남과 전북 지역을 돌아다니며 역도선수들을 만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 실화 속 선수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 다양했다. 지금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스포츠센터에서 일하는 분도 있다. 트레이너는 아니고 순창군청 사회복지센터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분도 있다. 주인공 이름을 따왔던 박영자 선수는 지금도 선수다. 순창군청 소속으로 활동하는데, 기록이 잘 나오고 있다.
-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반응이 어떻던가.
= 처음에는 사기꾼으로 알더라. (웃음) 보자마자 뭐 하는 사람인지부터 물어보더라. 그때가 2006년 여름이었다. <우생순>이 나오기 전이라 한국에 스포츠영화라는 게 생경하던 때였다. 다들 이 영화가 잘되겠냐고 반문했다. 어렵게 설득했다. 나중에는 손지영 선수라고, 실제 역도부 주장이었던 분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를 통해 당시 선수들과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실제로 선수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바는 또 달랐을 것 같다.
= 인터뷰하면서 녹음한 테이프를 서울 오는 길에 듣는데, 눈물이 나더라. 이들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훈련이 너무 혹독했다는 거였다. 또 자기들끼리 싸운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결국 다 그때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고. 왜 그렇게 그리워할까 생각을 해보니 이들에게 가장 빛났던 시기가 그때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 운동은 젊을 때 하지 않나. 어쩌면 전국체전 메달이라는 게 자격증보다 더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운동에서 환희를 맛보았을 테고, 그런 기쁨을 함께한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평소 역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 맞다. 사실 스포츠 경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역도경기도 올림픽 때 잠깐 봤을 뿐이었다. 야구장을 찾아다니면서 관람하지도 않는다. 다만, 스포츠영화는 정말 좋아했다. (웃음) <미라클> <오버 더 톱> 이런 거. 하지만 역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여기에도 역도 고유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더라. 들면 이기고, 들지 못하면 진다는 단순함, 행운보다 초능력을 원해야 하는 절실함 같은 거였다. 또 단순해 보여도 민감한 운동이기도 하다. 전병관 선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발톱 끝이 조금만 아파도 경기에서 질 수 있다고 하더라.
- 재밌었지만, 영화에 담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다.
= 재미있는 건 거의 다 넣으려고 했다. 당시 학생들이 술을 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조금은 다르게 넣었다. 힘이 들면 “오늘은 손목꺾기 운동 하러 가자” 하면서 술을 마셨다더라. 중국집 같은 데서 드셨냐고 물었더니, 야산에 있는 계곡에 간다는 거다. 영화에서는 전체 관람가이기 때문에 선생님만 마시는 걸로 바꿨다. (웃음) 또 한번은 학교 폭력을 당하거나, 집단으로 싸운 적이 있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군 내에서 자기들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 (좌중 웃음)
- 극중에서 이지봉 선생이 보성여중에 취임하는 장면이 있다. 교장선생의 연설을 들어보면 이 학교의 목표가 체육인 양성이라는 게 드러난다. 생각해보니 과거에 시골에 사는 여학생들이 잘살기 위한 방법이 공부 아니면 운동뿐이었을 텐데, 그중에서도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운동밖에 없었을 것 같더라.
= 나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강남에 있는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 있던 운동부는 승마, 골프, 볼링 이런 거였다. 아이스하키도 있었다. 학교에서 운동부에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배우고 그걸로 대학 가거나, 취미로 하는 시스템이었다. (웃음) 그에 비하면 당시 지방 학교 애들은 정말 생존을 위해서 했을 거다. 또 그때는 여러 학교에서 일부러 역도부를 만든 것도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일단 초기투자비용이 적게 들어가지 않나. 또 당시 전국체전에서는 역도 메달이 많았다고 하더라. 메달을 따면 학교에서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서 한때, 역도부 창단 붐이 불었던 거다.
- 시나리오를 쓰면서 <우생순>을 의식하지는 않았나.
= 시나리오는 읽었다.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레퍼런스를 살펴보려고 했다. 오히려 다른 스포츠영화를 많이 분석했다. <골!>의 이야기 구조나, <빌리 엘리어트>의 감동적인 부분, 그리고 <불의 전차>에서 드러나는 스포츠에 대한 경외감도 배우고 싶었다.
-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만화적인 캐릭터라든지 영화의 전반부에 ‘열심히 하는 척’하려고 연기하는 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랬다.
= <스윙걸즈>와 <으랏차차 스모부>를 봤다. <스윙걸즈>에 나오는 아이들의 발랄함과 코믹함은 가져가고 싶더라. 실제 투자자들이 어떤 영화처럼 만들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도 이야기했다. <스윙걸즈>와 <빌리 엘리어트>와 <불의 전차>를 섞어놓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웃음)
- 배우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여배우들이 출연하고 싶다고 달려왔을 영화는 아니다.
= 이범수 선배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했다. 역도도 체급이 다양하니까 가능하다 싶었다. 게다가 준비하는 동안 몸짱배우로 거듭나서 정말 기뻤다. 선수 캐릭터 중에서는 현정이를 연기할 배우를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 여자 역도선수들이 초반에 겪는 고통을 모조리 갖게 되는 아이다. 일단 역도를 한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몸이 불어가는 것을 보면서 콤플렉스를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에는 전보미를 캐스팅하게 됐는데, 처음에 연출부가 가져온 사진 속 모습은 날씬했다. 현정이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요즘은 살이 좀 쪘다고 하더라. 실제로 만났더니 정말 살이 쪄 있었다. 왜 쪘냐고 물어봤더니, 실연을 당한 뒤 5kg이 쪘다는 거다. (웃음) 일단은 볼살이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는데, 연기 테스트에서도 순발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열정이 가득해서 촬영 전에 10kg을 더 찌워서 왔더라. 할아버지가 전운 선생님이신데, 정말 피는 못 속이는구나 싶었다.
- 전체적으로 에피소드들이 밀도있게 담겨 있다고 봤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과하다 싶은 부분도 있더라. 일단 중앙여고 역도부의 심상한 감독 캐릭터가 그렇다.
= 맞다. 사실 심상한 관련 부분을 더 심화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매를 맞지 않으려고 하다가 다른 걸 잃을 수 있겠더라. 내 목표는 심상한을 장치적으로 빠르게 들어와서 세게 보여주고 내보내는 거였다. 분량의 한계상 이지봉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채우고 싶었다.
- 중앙여고 로고를 찢는 장면에서 심상한이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은 다소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 심상한이 지봉에게 갖고 있는 콤플렉스를 생각했을 때, 또 로고를 떼는 장면을 봤을 때, 그 정도의 폭력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나도 뺨 맞고, 아이스하키채로도 맞았다.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더 심하게 맞을 것 같더라.
- 맞으면서 로고를 찢는 것에 더해 맞으면서 가슴에 이지봉 이름 세 글자를 쓰는 모습이 눈물을 강요하는 듯 보였다.
=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경기를 하는 게 금메달이나 학교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선생님 때문에 한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을 것 같았다. 나름 실화에 근거한 설정이기도 하다. 실제 선수들도 학교에 불만이 있어서 로고를 떼고 경기에 올라간 적이 있다고 하더라. 물론 다른 글자를 쓰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름을 쓰는 건 영화적인 설정이었다.
- <킹콩을 들다>가 데뷔작이다.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됐나.
=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음악을 하고 싶기도 했고, 사진에도 꿈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어머니가 TV 과외를 녹화하라고 비디오를 사주셨는데, 영화만 봤다. (웃음) 그러다 영화감독이 되면 영화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사진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자연스럽게 영화과에 들어갔고,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곽경택 감독은 어떻게 만났나.
= 유학을 다녀온 뒤, 연출부를 하면서 현장경험을 쌓고 싶었다. 우연하게 기회가 왔는데,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웃음) 감독님께 많이 배웠다. 감독님은 사투리 대사를 지도할 때 테이프를 따로 만들어 배우에게 주는데, 나도 이번에 그렇게 했다. 배우의 감정을 소중하게 보여주는 연출방식을 나도 따라가려고 한다.
- 다음 영화는 생각해둔 게 있나.
= 써둔 시나리오는 있는데 새로 쓰려고 한다. 소재를 찾는 중이다. 로맨틱코미디나 스릴러도 끌린다. 한편으로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다. 예전에 뉴스에서 경주에 있는 한 여대생이 졸업 뒤 환경미화원 시험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사진을 찍었더라. 나한테는 그 이미지가 짠했다. 물론 그의 행복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되지만, 한국의 실업문제를 마이클 무어식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 그 얼굴과 앞서 말한 ‘눈물과 땀이 구별이 안 가는 소녀의 얼굴’이 통하는 것 같다.
= 젊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고민이 흥미롭다. 94학번인 나는 역사적으로 보면 별로 한 게 없는 세대다. 하지만 또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미리 한계를 긋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살려고 하는 것 같다. 나쁘게만 보거나, 불쌍하게만 봐서는 안되겠지만, 그들 나름의 고통과 고민을 내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