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정원] “재밌는 영화라는 말 듣고 싶어”
2009-07-24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차우> 감독 신정원

66억원이라는 큰 순제작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촬영, ‘차우’라 불리는 식인 멧돼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소재 등으로 알려져왔던 <차우>가 드디어 몸집을 드러냈다. 알려진 정보만을 종합한다면 분명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됐을 법한 이 영화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예상을 엇나가게 하는 면모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거대한 스케일이나 숨막히는 액션쪽보다는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이루는 장르들의 혼합과 해괴한 캐릭터들에서 비롯되는 절묘한 웃음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인 멧돼지도, 배우들도, 시각효과도 아닌 <시실리 2km>에 이어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신정원 감독인 셈이다. 전작을 통해 독한 풍자와 엇박자의 유머로 관객을 즐겁게 했던 그는 <차우>에서 그 지평을 ‘괴수 어드벤처 영화’로까지 연장했다. 영화가 드러내는 경쾌함과 달리 표정없는 얼굴과 과묵한 말투를 가진 신정원 감독의 심경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땐 일단 ‘간’을 보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완성한 버전이 마음에 드나.
= 감독이 자기가 만든 영화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안되지 않나. (웃음) <시실리 2km>가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서 30% 정도를 충족했다면 <차우>는 절반 정도를 채웠으면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나온 것 같다.

- 어떤 부분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 컴퓨터그래픽만 해도 시간이나 비용이 좀더 많이 주어졌다면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그런 영화 만들기가 힘들잖나. 시스템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고. 그래서 미국쪽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이나 여건이 잘 안 맞아 100% 성과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 순제작비는 어느 정도인가. 그중 VFX(영상특수효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 순제작비는 66억원이라고 들었다. 거기서 CG, 실제 크기대로 만들어진 일종의 로봇이라 할 수 있는 애니매트로닉스 차우와 스턴트맨들이 들어가서 직접 움직이는 스턴트 차우, 그리고 미국 촬영 비용까지 합쳐서 30억원 정도 들었다.

-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은 미국에서 촬영됐다. 왜 그랬나.
= 차우를 찍기 위해서다. 만약 차우를 100% 3D CG로 만든다면 작업기간도 무한정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3D 캐릭터는 노출될수록 티가 난다. 이 영화에서 차우의 눈을 클로즈업하는 장면 같은 건 다 애니매트로닉스인데, 만약 CG로 한다면 만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운용하려면 수많은 스탭들이 필요하다. 입꼬리 하나만 움직이려 해도 한 사람이 붙어서 운전해야 한다. 애니매트로닉스에만 거의 스무명 정도 따라다녔다. 그런데 뒤늦게 문제를 깨달았다. 공룡 같은 경우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진짜 같은데 멧돼지는 전체가 다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실감이 난다. 그러니까 포유류는 애니매트로닉스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팀도 털난 포유류 애니매트로닉스에 관한 데이터가 별로 없더라.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는 거다.

- 미국에서 촬영한 장면은 어떤 것인가.
= 한신 안에 섞여 있다. 차우가 클로즈업으로 보여지는 장면은 모두 미국에서 찍었고, 산장으로 올라가는 신도 한국에는 그렇게 큰 나무가 없어서 거기서 찍었다. 처음에는 마을회관 내부 장면도 미국에서 찍으려 했는데, 말이 안되더라. 거기 한인들을 마을 사람들로 기용해야 했는데, 느낌이 달랐다. 거기서 구할 수 있는 의상이나 그쪽 헤어스타일 때문에 북한 주민이나 조선족 동포 같은 분위기가 났다. (웃음) 막걸리병도 다르게 생겼고 편육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편육은 현지에서 조달하기 어려웠는지 준비하는 것을 봤더니 부리토를 구해왔더라. (웃음)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진작에 거기서 찍는 것을 포기했다.

- 이 영화에서 차우는 애니매트로닉스, 3D CG, 스턴트 등으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배합은 어떻게 했나.
= 영화 특성상 이번에는 애니매트로닉스의 비중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 냄새를 맡거나 물거나 그런 장면들은 모두 애니매트로닉스로 만들어야 했다. 사실 촬영된 애니매트로닉스 장면은 훨씬 더 많지만 만족스럽지 않아서 많이 잘라내야 했다. 3D CG는 멀리서 차우가 달려가는 장면 같은 데서 쓰였다. 스턴트 차우의 경우는 스턴트맨이 모형 차우 안에 들어가서 찍는 것인데, 이를테면 차우가 풀숲을 달리는 것을 가까이서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쓰였다. 사실 새끼 돼지도 애니매트로닉스로 만들어야 했는데 잘 안돼서 실제 돼지로 찍다보니 정말 힘들었다. 영화 속 그 새끼 돼지는 일반 돼지를 분장한 것인데 가방에서 자꾸 빠져나오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해서 한 장면을 찍는데도 하루 종일 걸렸다. 그렇게 찍다가 내가 왜 이런 동물을 내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뱀이나 악어였으면 고생을 덜했을 텐데. (웃음)

- 사실 장르 마니아 입장에서는 차우와 사람이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기대했을 텐데,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더라.
= 욕심 같아서는 멧돼지를 많이 노출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여건이 맞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애초 내가 생각한 것만큼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경제적으로 찍기 위해 촬영회차도 적게 잡아놓았는데, 만약 차우가 사람을 물고 하는 장면까지 다 만들려 했다면 아마 지금까지 찍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그런 장면들을 성취하지 못해 낙담했나.
= 애초부터 공포영화나 B급영화로 시작했다면 그런 장면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시실리 2km>의 연장선에 있는 농촌의 소동일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차우>는 멧돼지보다는 사람이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 아닌가.

- 영화를 보고 난 첫인상은 홍보 내용이나 예상과 달리 코미디가 강조됐다는 점이다.
= 만약 내가 마음먹고 코미디를 하려고 했다면 더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자꾸 거짓말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찍으면서 웃기려고 한 적이 없다. 찍으면서 즉흥적으로 나온 코미디는 있다. 배우들이 박혁권씨 말고는 모두 처음 만난 분들인데 작업을 하다 보니 차츰 성향을 알게 되면서 그 느낌을 많이 살려 조금씩 집어넣게 됐다.

- <시실리 2km>도 그렇고 <차우>도 그렇고,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게 만들어준다.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좋은 것 같다.
= 나는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 얘기하는 것 듣는 것을 되게 좋아한다. 누가 뭐라고 말하나, 어떤 행동을 하나를 눈여겨본다. 어렸을 때부터 표현을 못하는 내성적인 스타일이어서 얘기 듣고 행동을 구경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리고 그랬던 것 같다. 영화를 하게 되니까 그런 게 장점이 된 것 같다.

- <시실리 2km>에서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서도 단순한 말장난이나 슬랩스틱코미디가 아니라 상황에서 비롯되는 풍자적인 블랙유머가 많다.
= 사실 이 영화에는 코믹 연기에 능한 배우가 한명도 없었다. 특정 상황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는 그래서 더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찍을 때는 배우들이 좀체 웃지 않았다. 엄태웅씨는 녹음실에서 믹싱할 때 편집본을 처음 봤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 자기 분량이 처음보다 줄었는데도 그런 건 상관없고 너무 웃기다는 거다. 자다가도 생각난다고 하고. 당시 믹싱 작업한 분이 그러더라. 이 일을 꽤 오래했는데 주연배우가 믹싱하면서 낄낄 웃는 것은 처음 봤다고. (웃음)

- 캐릭터들이 전반적으로 비열하고 가식적이며 이중적이다. <시실리 2km>의 인물들도 그렇다.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가진 듯 보인다.
=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을 관찰해왔는데 좋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하는 행동과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그게 아주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겉모습과 달리 부끄러운 면을 숨기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면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지나치게 세상을 뒤틀어서 보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나.

- <시실리 2km>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욕망에 관해 이야기했다. <차우>에서도 인간의 욕망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고 그로 인해 차우라는 변종이 탄생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내용을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강조하더라.
= 사실 촌스러워질까봐 그런 면을 너무 많이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안 드러내면 이 영화가 장난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을을 개발하려는 곽 사장도, 심지어 차우도 적은 아닌 것 같다. <시실리 2km>에서도 그랬지만, 비극이나 재앙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우리 모두 아닌가. 우리 모두 거기 동참하거나 묵인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 아닌가. 이 영화 주인공들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 모든 캐릭터가 재미있고 희한한데, 그중에서도 고서희와 박 순경 캐릭터는 더욱 특이하다.
= 두 캐릭터 모두 시나리오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실제 배우를 만나고 나서 달라진 케이스다. 고서희씨는 처음 만날 때부터 이상한 기가 느껴지더라. (웃음) 뭔가 강한 포스가 있어서 주위 스탭들은 접근도 못했다. 그러고 나서 캐릭터가 좀더 강화됐다. 박 순경도 처음에는 대사없는 캐릭터였다. 그러다 배우를 만났는데 불만이 많은 성향이더라. 애초 내정됐던 배우가 출연 못한다고 해서 갑자기 연락받고 온 상황이었는데 나에게 이야기하는 태도가 김 순경에게 말하듯 삐딱하더라.

- 욱하진 않았나.
= 한번 욱하긴 했는데 다른 분들이 참으라고 해서. (웃음) 그래, 내 한번 너를 뽑아먹어주마 하고 이런저런 것을 부여했다. 실제 모습대로 해보라고 하니까 연기도 굉장히 잘하더라.

- 윤제문 또한 희한한 캐릭터다. 굉장히 포악하고 잘난 척하는 인물로 보였는데, 개와 대화를 하거나 정유미를 짝사랑하는 등 의외로 순수한 면이 많다. 그런데 개와 대화하는 장면은 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 그건 나도 고민했던 점이긴 하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그런데 개 키우는 사람들은 다 개와 이야기하지 않나? (웃음) 물론 개의 말이 들리진 않지만 들렸으면 하는 생각은 있지 않나. 백 포수의 심리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또 개는 백 포수가 가장 믿는 존재 아닌가. 윤제문 선배는 촬영하면서 가장 혼란스러워한 경우다. 자신은 그동안 많이 나왔던 조폭 이미지 이런 것을 떨치고 멋진 포수 캐릭터를 하기 위해서 출연했는데 점점 뭔가 이상해지니까. (웃음) 그러던 어느 날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다 차 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죽 연결해봤단다. 그랬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릴 정도로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임하기 시작하더라. (웃음)

- 이 영화를 본 관객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 재밌는 영화라는 이야기다. 예전에 만들어졌던 이런 종류의 영화들과 다른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스타일로도 재밌는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줬으면 한다. 컬트영화처럼 특수한 사람들만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 영화계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
= 계원예대 졸업작품으로 1997년에 <아줌마>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줬다. 결혼식장에서라든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그 와중에 임창정씨의 <슬픈 혼잣말> 뮤직비디오를 찍게 됐는데 ‘너는 뮤직비디오를 영화처럼 찍는다’고 칭찬했다. 얼마 뒤 본인이 출연하는 <색즉시공> 비주얼 슈퍼바이저 자리를 소개해줬다. 윤제균 감독님 옆에 있으면서 장면 구축하는 것을 도와드렸고, 에어로빅 장면 같은 것을 찍었다. 아, 그전에는 <리베라 메>를 36부작 온라인용 드라마로 만든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몇편을 만들었다.

-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애니깽>에 참여한 것으로 돼 있던데.
= 그건 동명이인이다. (웃음) 나도 그걸 보고 놀랐다. <애니깽>에 출연했다니. 나와 이름이 같은 배우가 계신가보다.

- <시실리 2km> 때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오아시스>나 <시네마 천국>이 웃긴 영화라고 말한 적 있다. 웃음, 코미디, 유머에 대한 생각이 확실히 남다른 것 같다.
= <오아시스> 보고 안 웃은 사람이 있나. 관객도 다 웃던데. 그게 코미디영화는 아니지만,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잖나. 코미디가 아닌데도 왜 웃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영화였기 때문인 것 같다.

- 당신이 추구하는 웃음도 그런 종류의 것인가.
= 나는 아직 삶을 관조할 만한 내공이 없어서…. 물론 하고 싶은 건 확실하다. 왜 희극이라고 하지 않나.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희극 말이다. 정말 하고는 싶지만 좀더 내공이 쌓여야 할 것이다.

- 앞으로는 어떤 영화를 하고 싶나.
= 아무래도 희극이다. 내가 생각하는 코미디는 채플린의 영화 같은 것이다. 예전에 재개봉할 때도 열심히 봤는데 진짜 웃긴데도 뭔가 다른 감정이…. 웃긴 건지 슬픈 건지…. 이게 진정한 희극이라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다음 영화는 좀더 밝은 분위기로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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