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용화] 신파라고? 그건 오해
2009-08-14
글 : 강병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

<국가대표>가 개봉한 뒤, 김용화 감독이 주로 찾는 곳은 역시 극장이다. 그에게는 언론과 평단의 평가보다 관객의 표정이 가장 공신력있는 별점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를 통해 기대했던 별점은 “벅찬 감동을 얻은 표정”이었다. 현재 김용화 감독이 받아든 별점은 기대 이상이다. “종영인사 겸해서 후반 30분을 같이 본다. 그 정도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남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물 흘리며 보더라. 심지어 내 미니홈피에 방문자 수가 늘어나는 현상도 처음 경험했다. (웃음)” 하지만 그가 본 풍경과 달리 <국가대표>의 감동이 진부한 신파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선도 있다. 말하자면 <국가대표>는 스포츠영화에 기대할 법한 감동코드가 잘 살아 있다는 평가와 그래서 평범한 스포츠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 사이에 놓인 셈이다.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영리한 대중영화의 모델을 보여준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에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한 걸까. 지난 4일 화요일, 본격적인 무대인사 순례를 앞둔 김용화 감독을 만났다.

- 개봉을 좀 늦게 했다면 어땠을까. <해운대>가 워낙 세다.
= 배급사, 제작사와 협의 끝에 결정한 날짜다. 8월6일과 7월31일이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더라. 게다가 8월6일에는 <지. 아이. 조: 전쟁의 서막>도 있어서 지금보다 적은 스크린 수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내 영화는 개봉 4주 만에 1위를 한 적도 있고 해서 은근히 뒷심을 기대한다.

- <미녀는 괴로워>와 비교할 때, 반응이 어떤 것 같나.
= 그때는 기대가 너무 없었다. 이번에는 그 정도의 성격이 아닌 것 같다. 미니홈피에 찾아온 어떤 분은 자기가 ‘<해운대> 쾌청, <국가대표> 흐림’이란 제목의 기사를 봤는데, 당신이 감독이면 이런 기사 막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영화를 너무 좋게 봤는데 안타깝다고 그러더라. (웃음) 영화가 세긴 센가보다 하고 있다.

- 특히 스키점프 장면에 대한 호평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 그런 걸 평가받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스키점프영화에서 스키점프가 잘 찍혔다는 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나. 영화는 관객이 어떤 감정을 얻었는가가 중요하다. 물론 어떻게 찍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백서를 쓸 수 있을 거다. (웃음) 카메라 렌즈의 선정, 퀵캠의 속도 등등 7개월 동안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연구했으니까. 그래도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나.

- 스키점프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바로 캐릭터들을 떠올렸다고 들었다. <국가대표>는 루저들의 성장 이야기지만, 가족의 회복이란 테마가 전면에 있다.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가족은 자연스럽게 따라온 건가.
= 처음부터 생각한 거다. 스포츠영화에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운동선수들에게도 가족은 한계상황으로 작용한다. 사람이 고통받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게 관계인데, 그중에서도 가족은 불가분의 관계 아닌가. <오! 브라더스> 때도 그랬지만 가족관계의 회복을 통해 개인이 치유받는 과정을 그리려 했다. 내가 어릴 적에 운동을 하면서 느낀 가족관계의 상처들과 주변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도 포함됐다.

- 어렸을 때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다고 하더라.
= 칠구가 봉구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그때 경험 중 하나다. 강원도 대표로 소년체전에 나갔었는데, 결승전에서 광주 애한테 한대 맞고 들어왔더니 코치가 다짜고짜 뺨을 때리더라. 그 모습에 장내가 숙연해질 정도였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극중에서 밥의 엄마에 관한 에피소드도 개인적인 감정이 담겼다. 어머니가 몸이 너무 안 좋으셨다. 해골처럼 마르셨었는데, 내가 시합에 나갈 때마다 항상 오셨다. 그게 어찌나 싫던지. 다른 애들 엄마는 다 예쁘고 건강한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시합 중에 엄마 얼굴을 보곤 했다. 그런 감정이 영화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

- 태권도영화를 연출하면 제대로겠다. 배우들한테 직접 트레이닝시킬 수도 있고.
= 만약 태권도영화를 한다면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려 할 거다. 하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류승완 감독이 있으니, 나는 드라마나 잘해야지. (웃음)

- <국가대표>를 준비하는 동안 스포츠영화가 많이 나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나 <킹콩을 들다>도 봤나.
= 시나리오를 쓰면서 스포츠영화는 하나도 안 봤다. <우생순>은 시나리오를 중간까지 읽다가 덮었다. 사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비슷할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더라. 다른 영화를 보고서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빼버릴 수도 있으니까.

- 평소 메모까지 하면서 다른 영화를 참고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 이번에는 드라마 <안투라지>를 많이 참고했다. 주로 캐릭터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봤다. 90% 영감받은 건 <미스 리틀 선샤인>이다. 영화 속 식탁장면에 대한 오마주도 있었다. 얘네들이 얼마나 남루하고 개차반인지를 보여주려 했다. 지금은 뺐는데 500만명이 넘어가면 다시 붙일 거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장면이지만, 관객이 계속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장면은 아닌 것 같더라.

- 과거 인터뷰를 보면, 어떤 시나리오든 쓰다보면 어둡게 빠진다고 했다. <국가대표>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랬나.
= 밥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어두운 면이 있었다. 원래는 흥철이 주인공이었다. 어느 날 프로듀서가 밥이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국가가 버린 애인데, 국가대표가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거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꿨다. 그러면서 밥이 엄마를 찾는 과정이 다 어두웠다. 지금은 많이 뺐지만. 원래는 밥이 엄마를 찾으려다 엄마 행세를 하는 가짜를 만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쇼박스 대표님이나 KM컬쳐 대표님이나 400만명 넘어갈 때부터 준비하라고 하더라. 그때 원하는 거 다 붙이라고. (웃음) 그래서 요즘 편집을 다시 정리하는 중이다.

- 전반부를 보면 시나리오에서 여러 부분을 들어낸 것 같았다.
= 스키점프 장면에 집중하려는 것도 있었지만, 애매한 게 있었다. 기능적으로는 재밌지만 본질적으로 상관없는 장면들을 뺐다. 캐릭터들이 성기는 게 있다는 평가도 그 때문인 것 같다. 편집의 첫 번째 목표는 올림픽으로 빨리 가자는 거였다. 관객 반응을 볼 때,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내 생각에 가깝게 나온 작품인 것 같다.

- 앞부분에서 정리를 하다보니 뜬금없거나 작위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재복이 사실은 아버지를 존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 그랬나? 나는 플롯적으로는 말이 안돼도, 관객은 공감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 관객이 다 눈물을 흘린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많이 저주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그분 나름대로 속이 상했을 시간들과 나에게 남겨준 좋은 경험들이 떠오르더라. 원래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아버지가 재복에게 “오늘이 니 엄마 기일이다”라고 말하면, 무릎 꿇고 있던 재복이 말한다.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 아내가 애를 낳고 죽었으니, 아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큰 거지. 모자란 데가 많으니까 매번 실망했고, 또 매번 다른 것들을 시키려 한 거다. 아들은 또 무슨 생각을 했겠나. 재복의 입장에서도 아버지가 자기를 미워서 때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만약 영화 속 부자관계가 <천하장사 마돈나>의 부자관계였다면 사실은 존경했다는 그 부분이 정말 말도 안되는 장면이겠지만, <국가대표>의 부자관계는 그런 설정이 아니지 않나.

- 스포츠영화로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신파적인 감정이 <국가대표>에도 있다. 절제하려는 면도 있지만 밀고간 부분도 있다. 균형을 맞추려는 고민도 했을 텐데.
= 영화 보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한 거다. 더이상 가면 안될 거 같은 지점을 찾은 거다. 정말 신파적으로 할 거였으면 <애국가> 장면에서 밥이 더듬거리며 따라부르는 장면을 안 넣었겠지. 아예 1등을 시켰을 테고. 신파적인 감정이 세다고 말하는 건 잘못 오해하는 거다.

- <미녀는 괴로워>에는 묘한 균형이 있었다. 뚱뚱한 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거친 비애가 판타지적인 부분과 적절히 섞여 있어서 다양한 층위의 영화가 됐던 것 같다. <국가대표>의 방 코치가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한상준인데, 이 사람이 가진 이중성도 일조했다. <국가대표>에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분이 충분하다고 봤다. 나라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는 비애가 있을 테니까. <국가대표>는 이들의 좌충우돌에만 더 많은 초점을 맞춘 탓인지, 그리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
= 주인공이 2명뿐이었으면 그렇게 했다. <국가대표>의 인물들은 은유화되어 있고, 비약도 있다. 좋게 보는 분들은 그 이면도 관대히 받아주시는 거다. 신파로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미녀는 괴로워>보다 더 필사적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관중이 ‘코리아’를 연호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미녀는 괴로워>에서 ‘괜찮아, 괜찮아’ 하는 장면이랑 같을 것 같더라. 무엇보다 개인적 취향이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기획사 사장이 한나에게 술잔을 끼얹는 등의 장면은 사실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안 맞는 부분이었다. 초고에서 남아 있는 잔재였다. 나는 그렇게 자극을 주려고 하는 모습이 더 신파처럼 보이더라.

- 신파인데, 영화에서는 오히려 리얼하게 보였다는 거다.
= 맞다. 어떤 건지 안다. 사실 나는 <국가대표>에서 올림픽 개막식에 나간 선수들을 보고 위원장이 “저 새끼들 누가 앞에 세웠냐?”고 말하는 것도 좀 불편했다. 내가 써놓고 내가 연출했는데도 말이지. 내가 김용건 선생님께 실례를 범한 것 같기도 했고. 모든 캐릭터가 납득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면 좋겠는 데,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더라.

- 주인공이 2명이 아니고 4명이니 연기연출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었을 것 같다.
= 배우의 해석이 70%, 내 생각이 30% 정도였던 것 같다. <오! 브라더스>에서는 내가 주입식으로 연출했고, <미녀는 괴로워> 때는 리허설을 하면서 배우의 30%을 인정하고 70%를 내 느낌으로 담았다. 이번에도 한달 정도 풀 리허설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가능한 한 반대로 연기시키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평범한 해석의 반대상황을 생각하는 거다. 만약 지금 내가 당신에게 “야, 강 기자!” 이러면 어떨 것 같나. 당황하겠지만, 당황한 걸 티내려 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평범한 해석으로는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런 해석이 사람 같지 않은 거지. 가장 좋은 연기는 사람같이 보이는 거다. 땅에 너무 붙이면 다큐처럼 보이니까, 약간 띄워올리면서도 연기 같지 않은 모습을 찾는 게 연기연출의 목표였다.

- <놀러와>에서 하정우가 말하길, “어떤 여자든 김용화 감독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더라. 배우와는 어떻게 교감하는지 묻고 싶었다.
= 하하하. 미친놈이야, 미친놈…. (웃음) 기본적으로 감독을 하려면 그런 재주는 필요한 것 같다. 배우가 나랑 똑같은 경험을 했을 리는 없으니까. 내가 먼저 다 열고 내가 가진 기억과 경험을 털어놓아야 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먼저 열어버린다. 연기 면에서 평가해주는 게 나는 가장 고맙다. 나중에 내가 어느 정도 포지션이 된다면, 김용화랑 같이 하면 배우가 살아난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 촬영, 편집을 조율하는 게 기본적인 덕목이라면 연기연출은 감독이 가져야 할 최고 덕목이니까.

- 할리우드에서 연출할 계획이 있다던데.
= 진행 중이다. 강제규 감독님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미국에서 2편의 영화를 준비 중이신데, 그 와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몇몇 스튜디어와 논의하신 거다. 내가 먼저 가서 고생을 해볼 테니 이 작품은 내가 프로듀서를 하고 네가 감독을 해서 만들어보자고 하시더라. 재밌는 아이템이었다. <스팽글리쉬> 같기도 하고,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장치도 있었다. 한국 여자와 미국 남자가 만나서 문화충돌로 생기는 이야기다. 지금은 초고 직전까지 왔는데, 내가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바로 다음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세 작품 정도를 개발 중이다. 그중에서 가장 똘똘한 아이템을 먼저 하게 될 거다.

- 예전에는 센 캐릭터가 있는 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 이제는 그렇게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때는 누군가가 죽거나 거대한 싸움이 벌어지면 관객의 1차적 시선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잘하는 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잘할 자신이 없다기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안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지금은 옆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다가 자신을 깨닫는 이야기들에 끌린다. 뭐, 그렇다고 내가 이스트우드 형님처럼 <그랜토리노>를 만들 만한 나이는 아니고. (웃음) 일단 나는 더 겸손해지고 싶다. 매번 생각한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를 겸손하게 지키고, 더 성숙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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