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1960년 감독 김기영 상영시간 111분
화면포맷 1.53: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한국어
자막 한글, 영어, 프랑스어, 일어 출시사 한국영상자료원
화질 ★★★★ 음질 ★★★ 부록 ★★★☆
<하녀>를 김기영의 대표작으로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하녀>를 대표작으로 생각하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김기영과 그의 영화를 기억하거나 평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이하다, 이상하다, 그로테스크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생전의 기록과 인터뷰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 사실이고, 그의 영화들이 분명 악취미에 바탕을 뒀지만, 진실과 거리를 둔 선입견들은 김기영의 작품과 관객 사이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섹슈얼리티, 욕망, 가학성, 히스테리, 중산층의 악몽, 여성과 괴물성’은 (한국적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웬만한 외국 평자들도 김기영의 영화를 설명하다 들먹이는 언어들이고, 그런 지겨운 해석으로는 김기영의 다른 걸작들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 <고려장> <렌의 애가> <육체의 약속> <이어도> <느미> 등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다.
김기영의 영화를 그냥 신기하게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장면을 찍었을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진짜 질문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다. ‘사선을 넘나든 자가 추구한 생의 의지라는 측면에서 김기영의 영화를 봐야 한다”는 평론가 모은영의 말은 그의 영화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인 1996년 12월, 평론가 이연호와 나눈 대화에서 김기영은 “(막 탈고한 시나리오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남자의 이야기여서 제목은 ‘생존자’다”라고 했다. 김기영 세대의 영화인에게 영화작업은 예술을 위한 사치가 아니었다. 죽음과 배고픔의 시기를 통과한 김기영에게 영화 만들기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푸는 과정과 동의어였으며, 그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는지도 모른다. <하녀>를 포함한 김기영의 영화에 수없이 등장하는 ‘죽음’은 매혹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동시대와 밀접하게 연결된 김기영의 영화에서 남자는 근대화의 우울한 패잔병이다. <육체의 약속>의 청년, <이어도>의 천남석,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남자, <느미>의 윤준태가 그렇고, 끊임없이 변주된 <하녀>의 남자주인공이 무엇보다 그러하다. 느슨하게 삶을 영위하는 김동식의 주변에는 온통 여자뿐이다. 그는 여공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음악선생인데, 헌신적인 아내 덕분에 그와 가족은 이층집으로 이사하기에 이른다. 지독스럽게 현실적인 삶에 집착하는 아내와 욕망을 추구하고자 죽음을 불사하는 하녀는 공히 동식을 두려움의 무기로 억압한다. <하녀>에서 출발한 악녀의 실체는 이후 ‘불가사의한’ 이미지로 발전하는데, 김기영 영화 속 악녀는 장르영화의 팜므파탈과 다소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다기보다 상대적으로 나약한 남자가 경의의 시선을 품도록 만드는 존재에 더 가깝다. 그 근거는 그녀의 삶의 의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녀는 외친다. “죽으면 뭐가 있어요. 행복이란 살아서 있는 거예요.” 그녀의 투쟁은 죽음조차 초월하며, 삶을 마친 그녀의 눈동자는 불멸의 심상으로 남는다.
<하녀>의 DVD는 세계영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큰 열정으로 복원한 결과물을 담았다. 예전 판본의 열악한 상태는 물론, 2008년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불완전 복원판의 어색함마저 떨쳐낸 복원작업이 실로 인상적이다(원본 네거필름의 분실로 인해 영문자막이 붙은 프린트를 복원한 부분의 이질감은 어쩔 수 없다). 부록으로는 봉준호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음성해설, 복원 전후 영상 비교(29분), 영화평과 복원과정을 수록한 책자를 제공한다. 세계 관객에게 내놓기에 손색이 없는, 올해의 한국 DVD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