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남자단체전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선 네 남자의 눈앞에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오랜 인내와 시련 끝에 얻은 금메달이었다. 1996년 무주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한 전시용 팀으로 창단된 국가대표 스키대표팀의 주장 밥(하정우)은 감격을 억누르며 옆자리에 선 흥철(김동욱)을 바라보았다. 흥철은 오른손을 가지런히 왼쪽 가슴에 올린 채 눈물 범벅인 채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근데, 내가 지금까지 정말 궁금했던 게 있는데.”(밥)
“뭔데?”(흥철)
“왜 동해물이 마르면 우리가 만세인 거야?”(밥)
흥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밥을 보며 귀엣말로 속삭였다.
“너는 한국 온 게 몇년인데, 아직 <애국가> 가사도 못 외우냐. 모르면 그냥 외워. 입만 뻥끗거리든가. 유 돈 노 립싱크?”
흥철의 말대로 입을 뻥끗거리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의 눈에 국가란 아직 젖먹이었던 그를 외국으로 입양보내고, 경기 중에 다리가 부러진 칠구(김지석)를 군대로 끌고 간 매정한 존재였다.
칠구가 빠진 여파는 컸다. 군 제대 뒤 제대로 연습을 못한 칠구의 컨디션 난조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좋은 성적을 못했고, 기다린 2006년 토리노에서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스키점프는 애물단지였다. 그래서 선수들은 흥철의 소개로 입사한 나이트에서 ‘삐끼’로 일해 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밥과 흥철은 서로를 보며 “우린 생계형 국가대표”라며 웃었다.
‘이제 한국에 온 지도 10년이 넘는구나.’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 한국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나라였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고 태극기를 보며 맹세했고, 일본이나 독도와 관계된 일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침을 튀기며 상대를 몰아붙였다. “그럼 한국인들은 국가와 민족이 나쁜 일을 해도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하나?” 밥의 물음에 흥철은 귀찮다는 듯 가운뎃손가락을 곧게 펴 ‘퍽 큐’를 날렸다.
“야! 너 뭐해. 빨리 뻥끗거려. 너 노래 안 부르면 네티즌한테 추적당한다.”(흥철)
“아, 알았어.”
‘근데 하나님이 보우하사에서 보우는 무슨 뜻이지?’ 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의 허리를 자르고 립싱크를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는 찾았으니까, 그리고 금메달도 땄으니까. 인생 뭐 있어?’ 밥은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웃었다. ‘그래도 아직 어머니께 집은 못 사드렸는데, 서울 집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