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를 보다가 <해운대>의 파일유출 사건이 떠올랐다. 출연자 안재욱은 “중국에서 많은 콘서트를 열었지만 공연실황을 담은 DVD는 한번도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공연 2, 3일 뒤면 온갖 백화점에서 불법 DVD를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웃긴데도 차마 웃을 수 없는 부분은 그 다음 멘트였다. “몇년 뒤에 음향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이 누가 잭 2개만 빼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잭 2개만 빼준 건데….”
<해운대>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관계자의 소행이거나 실수일 것이란 가능성을 내비쳤다. 유출본의 영상이 극장판 직전 버전이었으며 음향은 극장판과 동일한 최종버전이었고, 유출본은 그 둘을 조합한 형태였다는 것이다. 정말 관계자의 소행이라면 안재욱 콘서트의 음향감독이 겪은 일과 유사하지 않을까? 그냥 USB 잭 2개만 빼준 건데, 혹은 그냥 외장하드 2개만 끼워준 건데. 안타까운 건 안재욱은 10년 전의 중국에서 겪은 일이고,<해운대>의 파일 유출은 2009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해운대>의 파일은 지난 8월29일, 토요일에 떴다. 영화인들은 웹하드 모니터링이 뜸한 주말을 노렸다는 점에서 그 간교함에 놀랐다. 유출된 파일이 화질도 좋고 음향도 좋은 고급파일이라는 점에서 더 크게 놀랐다.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건 파일형태였다. 1.1GB용량의 VOB파일 4개가 합쳐져 4.4GB의 폴더형태로 유출됐다. VOB파일은 DVD를 구성하는 파일이다. 어떤 기사에는 VOB를 VOD로 착각해 ‘Video on demand’로 설명하고 있는데, VOB는 ‘Video Object’의 약자다. 일반적으로 발매된 DVD에서 뽑아내 압축하는 DVDrip파일과 다르다. 압축하지 않기 때문에 DVD 원본의 화질과 음향을 거의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극장상영 중인 <해운대>는 어떻게 VOB파일로 유출됐을까.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이창현 과장은 “DVD 작업은 진행에 들어가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시사용 DVD에서 유출됐는가 하면,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 해외 시사용 DVD는? 만들기는 했으나 이런 DVD에는 로고가 박힌다. 하지만 유출된 파일에는 아무런 로고가 없다. 결국 제작에 참여한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원본소스를 유출했고, 다시 누군가 이 소스를 VOB로 변환했다는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어야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해운대> 유출사건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불법다운로드의 또 다른 맹점을 드러냈다. 그동안 영화인들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홀드백(극장 상영 뒤 2차 판권부터 4차 판권까지 넘어가는 과정) 순서를 조정하는 것으로 불법다운로드의 폐해를 막으려 했다. 이제는 제작공정상에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 관리도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준동 부회장은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영화제작과정의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원본소스를 한 서버에만 두고 다른 곳에서 불러내 수정하는 등의 관리는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불러놓은 상태에서 유출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작과정만의 관리만으로도 부족하다. 파일을 옮겨야 할 곳은 후반작업뿐만 아니라 개봉 준비단계에서도 많다. 앞으로 신경은 더 쓰겠지만, 그래도 관계자들의 책임감에 기대를 수밖에 없다.” 이글을 쓰는 와중에 <해운대>의 불법 DVD가 중국에서 900원에 판매된다는 기사가 떴다. 10년 뒤에도 해프닝으로 추억할 만한 일이 아닌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