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회고록]
[박중훈 스토리 17] 신창원 잡으러 각목 들고 출동까지
2009-09-18
정리 : 주성철
글 : 박중훈 (영화배우)
인정사정없이 이명세 감독의 완벽주의 체험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8년 일본으로 나를 찾아온 이명세 감독은 아이처럼 웃으면서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시나리오를 건넸다. 물론 내가 명세 형을 존경하고 작품세계를 좋아하지만 그의 전작들인 <남자는 괴로워>(1995)와 <지독한 사랑>(1996)이 차례로 흥행에 실패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런 선물 굳이 안 줘도 되는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이걸 선물이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농담처럼 하면서 어쨌건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 오랜 세월 형, 동생 사이로 영화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감히 명세 형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그는 배우의 개성을 굉장히 인정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감독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확실한 색깔과 라인이 있다. 배우는 그 라인을 잘 따라가면 되는데 그걸 그저 또 따라가기만 하면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걸 따라가는 가운데 자기 것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이명세의 영화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미묘한 자리다. 그래서 이명세의 영화는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만드는 영화다.

또 이명세 감독에게는 대중적인 코드를 읽고 그걸 분석한 뒤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화감독으로서 자기만의 관심사와 견고한 자기 세계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잘 맞으면 히트를 한 반면, 자기 세계가 더 도드라져 보일 때는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물론 이명세 감독의 마니아들은 늘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명세 형과 24년 세월을 함께 지낸 사람으로서, 명세 형의 세계가 좀더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시계를 특정한 시각만 생각해 멈춰놓으면 하루에 두번은 정확하게 맞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히려 타인에게 내 시간에 맞게끔 그저 기다리라고 말하는 불친절함 같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명세 형의 출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그 대중의 시계에 맞춰 태엽을 감아줄 필요도 있다. 그런다고 해서 자신의 시간이 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함께했던 작품들이기도 한데, 그런 그의 영화가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던 것 같다.

발만 한참 찍은 첫날부터 출연 후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일단 시나리오의 생생한 묘사와 집요함에 반했고, 무엇보다 내가 추격자라면 도망자가 안성기 선배였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촬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명세 형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기할 때 넌 그냥 산이고 돌이며 강물이라고 생각해.” 사실 지금도 그게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는데(웃음) 아무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하라’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그렇게 이명세 감독이 전작들의 흥행 실패 끝에 절치부심한 작품이다. 실제로 강력반 형사들을 3개월 정도 쫓아다니면서 인천의 한 조직폭력배를 체포하기까지 거의 형사처럼 함께 생활하며 쓴 시나리오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도 함께 수사를 다니면서 취재한 사실에 기초한 내용이었다. 영화의 라스트신은 폐광 기찻길에서 서로 주먹을 날리며 끝나지만, 실제로 도망 다니던 범죄자는 어머니 상을 당하면서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자수한 것이 실제 사건의 결말이다.

촬영할 때 이명세 감독의 완벽주의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영화에 대한 고민이야 모든 감독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는 정말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영화 생각만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영화에 던졌다는 말이 너무나 적확한 사람이다. 그 완벽주의로 인해 출연 결정을 후회하게 만든 것도 촬영 첫날부터였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동건과 ‘비 오는 날 고생스럽지만 집요하게 수사를 하는 형사들’의 ‘발’을 찍었다. (웃음) 형사들 발, 그렇게 4개의 발만 가지고 한참을 찍은 거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처마 밑에 숨어 비를 피하는 두 형사’까지 그렇게 두컷만 찍으며 밤을 꼬박 샜다. 내가 왜 이거 한다고 했지, 하는 생각에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런데 정작 그 두컷은 영화에 쓰이지도 않았다. (웃음)

장동건, 참 많이도 넘어졌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백과사전적인 영화적 테크닉과 활력이 충만한 영화다. 그런데 그게 배우에게는 엄청난 고역이다. 가령 배우의 연기력과 별개로 NG가 날 수밖에 없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가 있다. 특수효과가 들어갈 것을 가정하고 찍는 숏, 배우의 연기도 좋고 카메라워크도 딱딱 맞아야 하는 이동숏, 조명이 중요한 나이트신의 롱풀숏, 합이 제대로 맞아야 하고 진짜로 때려서도 안되지만 가짜 같은 티가 나서도 안되는 액션신, 그리고 연기나 김이 원하는 방향으로 피어올라야 하는 숏이 그런 경우다. 그런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한컷에 들어가 있다. (웃음) 게다가 배우에게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롱테이크도 많다. 그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게 되면 다시 촬영해야 한다. 촬영 끝까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라스트신, 안성기 선배와 둘이 싸우는 장면을 정확하게 11일 동안 찍었다. 5월 강원도 태백에서 해뜨고 해질 때까지 찍었는데 해발 600~700m가 되니까 굉장히 추웠다. 거기에 빗속에서 싸우는 장면이라 하루에 소방트럭으로 두 트럭분의 물을 뿌렸다. 나중에는 그러고도 모자라서 냇물을 퍼담아서 뿌린 적도 있다. 그 11일 동안 맞은 물의 양이 내 영화 인생 25년 동안 맞은 것보다 더할 거다. 성기 형도 오래전 ‘미스터 M’으로 나온 <적도의 꽃>(1983)에서 비를 참 많이 맞았었는데 당연히 그보다 더했고. 난 그런 경험조차 없었으니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추우니까 따뜻하게 있으려고 내 딴에는 꾀를 써서 가죽점퍼 안에 털을 좀 댔다. 그런데 비를 맞으면서 그 털이 물을 먹으니 몸 전체에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굉장히 묵직했다. 성기 형은 작업용 멜빵바지를 입고 있어서 몸이 가벼웠을 텐데 난 액션신 찍을 때 어찌나 힘들던지. (웃음) 반대의 순간도 있었다. 싸우기 전에 성기 형이 자전거로 도망가고 내가 지프차로 쫓는 장면이 있는데, 역시 같은 비 장면이라 나는 차 안에 있어서 비를 안 맞고 성기 형은 계속 비를 맞으면서 비틀비틀 자전거를 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비를 더 맞은 거다. 차 안에서 그걸 보는데 많이 미안했다. (웃음)

또 명장면으로 언급되는 장면은 내가 인천 부두에서 권용운을 쫓는 신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면서 롱테이크로 계속 질주하는 장면인데 거의 2km를 전력 질주했다. 첫 번째 컷에서 오케이가 났는데 찍고 토하고, 또 토하고 다시 찍고 반복하면서 계속 뛰었다. 고생한 거 하면 장동건도 빠지지 않는다. 바로 그 전 장면에서 나이트클럽 앞에서 잠복근무를 하던 중 동건이가 권용운을 덮쳤다가 뒤로 넘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쳤다. 그러고 보니 장동건이 이 영화에서 참 많이 넘어졌다. (웃음) 주유소에서 잠복근무하다가 범죄자를 덮치는 장면에서는 겨우내 꽁꽁 얼어 딱딱한 돌바닥을 슈퍼맨처럼 붕 날아서 덮쳤다. 떨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잘 대야 하는데 그게 앵글에 걸릴까봐 나중에는 매트리스를 빼고 무릎과 팔에 보호대를 대고서 촬영했다. 거의 무릎이 다 나갔을 거다. 사실 그전까지 말랑말랑한 청춘드라마와 멜로영화를 많이 찍었던 장동건의 몸 고생이 시작된 영화가 바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다. 나중에 <아나키스트>(2000), <친구>(2001), <해안선>(2002), <태풍>(2005)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워밍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참 맺힌 게 많을 거다. (웃음)

경찰서 합숙하며 실제 범인 체포도

너무 고생해서 나중에 농담 삼아 “이명세 감독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 20개를 받고 개런티 1조를 준다고 해도 다시는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웃음) 그런데 지금도 그때 얘기를 꺼내면 명세 형은 너무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야, 내가 언제 너를 그렇게 고생시켰냐”고 되물으며 “제발 과장해서 말하지 마”라고 한다. 정말 충무로에서 가장 독한 감독 중 하나다. 그래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내 대표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 중 하나다. 1999년 7월31일 최민수, 정우성 주연의 <유령>과 같은 날 개봉했는데 처음에는 언론에서 <유령>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명세 감독의 전작 성적이 안 좋았고 나와 안성기 선배가 나오니 영화를 좀 ‘올드’하게 본 거다. 그런데 시사회 직후 그 기세가 역전됐다. 물론 <유령>도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그해 여름 한국영화의 힘을 함께 과시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캐릭터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를 동일시해야 하는 메소드 연기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촬영 전 이명세 감독은 실제 강력반 형사를 만나게 해줬다. 어느 경찰서, 누구라고 밝힐 수 없는 게 내가 마스크를 쓰고서 실제 범인을 체포한 적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그냥 뺀질뺀질한 배우로 보고 코웃음을 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원래는 점심만 먹고 헤어지는 거였는데 내가 대뜸 세면도구 등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부터 무조건 같이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함께 숙직실에서 자고 당연히 목욕은 꿈꿀 수도 없고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함께 생활했다. 영화에서 내가 썼던 그 모자도 쓰고 말이다. 그렇게 그 일주일을 포함해 거의 한달 이상을 붙어다녔다. 그러니까 나를 좀 인정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때부터 마음을 열면서 많은 얘기를 해줬다. 얼마나 함께 붙어다녔냐면, 한번은 신창원이 탈주했을 때, 물론 나중에 허위제보로 밝혀지긴 했지만 같이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출동한 적도 있다.

고통스러웠던 ‘고문 모습 견학’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배우와 역할의 경계였다. 배우는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살인자라도 영화에서는 바로 그 인간이 돼야 하고 그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가령 <마누라 죽이기>나 <할렐루야> 같은 작품은 그런 남편이나 목사가 실제로 된 것 같은 실감이 아니어도 테크닉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칠수와 만수>나 <우묵배미의 사랑> 그리고 <게임의 법칙> 같은 작품들은 철저하고 절실하게 그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배우로서 그 감정 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역할이었다. 내가 맡은 ‘우 형사’ 역할이 일종의 ‘고문 형사’인데 지금은 없어졌으리라 믿고 싶고 또 그래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죄 추궁 전담 형사들이 있었다. 용의자를 수사해서 해당 범죄가 밝혀져도 범죄 수법 등의 연관성을 단서 삼아 이전의 미제 사건들을 추궁하려고 고문 형사가 나서는 것이다. 전과자에 대해서는 그 강도가 더한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추궁하면 밝혀지는 여죄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 사람을 쫓아다니며 고문하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다. 물론 고문기술자 이근안처럼 전기고문이나 관절빼기 같은 걸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린치를 가하는 수준의 그런 고문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런 걸 내 캐릭터의 스타일로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에 반해 내 마음은 이번 역할을 통해 다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머릿속에서 내내 어지럽게 충돌한 거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거라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또 얼마 안 있어 둘째아들이 태어났다. 안타깝게 누군가를 보내면서 또 다른 사랑하는 이를 얻은 거다. 그 모든 격한 상황들이 한데 뒤엉켜 나로서는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아내는 둘째를 낳으러 큰아이와 함께 일본에 가 있던 상태라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땐 정말 주사가 심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 정말 어렵게 고백하건대 당시에는 술만 마시면 접시며 술잔이며 뭐든지 던지고 깼다. 취기가 오르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치 싸움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 누구와도 시비가 붙을 태세로 공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나도 내가 무서웠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나와의 술자리를 슬슬 피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정말 그때 나 때문에 불편해했던 모두에게 일일이 사과해야 할 일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는 그렇게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하고 위태로운 상태에서 탄생한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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