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장님, 일어나세요. 사람이 죽었어요.”
2000년 3월11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미군부대 ‘캠프 스탠리’ 앞. 대학교 2학년에 벼락치기로 토익 고득점자의 반열에 오른 까닭에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카투사로 입대한 김중필 병장은 졸린 눈을 부비며 ‘후임’ 이 일병의 재촉에 눈을 떴다.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일이야?” 부대에서 헌병으로 배치받은 그는 주말 밤마다 미군을 상대로 한 술집들을 돌아다니며 술 취한 미군들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그 아줌마, 락시에서 얼굴 화장 진하게 하던 그 아줌마가 죽었대요.”
“뭐라고?”
김 병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군복으로 갈아입고 내려간 부대 앞은 이미 소란해져 있었다. 부대 앞 유흥가에 흑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Roxy’란 클럽이 있었다. 김 병장은 그곳에서 짙은 화장에 40대로 보이는 ‘그 아줌마’와 자주 마주쳐야 했다. 2년 전 제대한 박 병장은 그 아줌마를 보며 “내 선임이었던 조 병장 때도 있었다는데 언제부터 여기 다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병장은 그 아줌마를 볼 때마다 ‘저 나이에 여기서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경멸어린 눈초리를 보내왔던 터였다.
미군범죄수사대(CID)와 함께 현장을 찾은 김 병장은 비로소 그 ‘아줌마’의 신원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은 서정만, 숨질 때 나이는 68살이었고, 청각장애인이라고 했다. 갑자기 무언가에 가슴이 콱 찔리는 듯한 통각이 느껴졌다.
“그 아줌마 완전 할머니였네요.” 이 일병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
서씨는 양눈과 입가가 심하게 멍들어 있었고, 치아 두개가 부러져 있었다. 주민들은 “전날 밤 11시50분께 서씨가 키 180cm의 보통 체격인 한 흑인과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소리를 듣지 못해 생계 대책이 없었던 그는 술 취한 미군들을 집으로 데려가 싼값에 유사성행위를 제공한 대가로 살고 있었다. 팬티 바람으로 침대에 옆으로 누운 채 발견된 주검을 바라보며 김 병장은 1992년 윤금이의 이름을 떠올렸다.
예상대로 미군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사건은 미군수사대를 거쳐 한국 검찰로 넘어갔다. 미제로 남은 ‘이태원 살인사건’ 때문에 의정부지청으로 좌천돼 있던 박 검사(정진영)가 사건을 맡았다.
“검사님, 범인은 잡을 수 있을까요?”
박 검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국 경찰은 사건의 용의자를 한번도 직접 심문하지 못했고, CID는 “핵심 용의자를 본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때로는 그저 현실에 눈을 감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 다들 그러고 살잖아.” 술에 취한 박 검사는 김 병장에게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그런데 가장 슬픈 게 뭔지 알아? 이 모든 비극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