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1992년이다. 후배가 건네준 불법복사 비디오로 처음 본 작품이 <마녀의 특급배달>, 그때까지 난 이 천재감독의 이름도 몰랐었다. 그리고 다시 <이웃집 토토로>를 보았다. 후배를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이 사람 누구냐?”
나는 촌놈이다. 인터넷 아이디도 ‘산골소년’이다.
사실 서울에 10년 넘게 살았고, ‘산골’을 떠나온 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지만, 누군가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촌놈 소리를 듣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인데 통성명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 하게 되면 으레 옛날에 봤던 영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요즘 즐겨보는 만화 등등이 단골 메뉴가 되고 그러면 금방 출신성분이 들통난다. 결정적인 건 이런 경우다.
“우리 동네에는 극장이 없어서 <로보트 태권V> 못 봤는데요.” 읍내에 극장이 생긴 게 언제쯤이었을까? 그나마도 신작로를 따라 10리길은 가야 했다. 언젠가 극장이 생겼다는 소문이 들린다 싶더니 비실비실하다가 마침내 망해버렸고 지금까지도 내 고향에는 재개봉관 하나 없다. 결국 고교 시절 단체관람 몇편을 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다. 하지만 몇편 본 영화들도 그다지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그냥 ‘재밌다, 멋지다’ 정도였다. 이소룡, 주윤발의 액션이나 스필버그의 SF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영화가 끝나면 장면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저런 영화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토토로>를 보고 처음으로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약간 색이 바랜 영상들이었지만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른 작품들도, 극장에서 본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토토로>의 느낌과는 달랐다. ‘사츠키’에게 구멍난 우산을 내미는 ‘칸타’의 모습이 내 어릴 적과 겹쳐서였을까? 아니면 그 마을 어딘가에 우리집도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였을까?
확실히 <…토토로>는 미야자키 감독의 멋진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작이다. 현실에 상상력을 덧붙였다기보다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에 현실세계와 배우들을 불러들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얼마 전 미야자키 감독의 최근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작품도 역시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내 상상력 어때?’ 하고 묻고 있는 감독의 귀여운 얼굴이 스크린에 겹쳐지는 것 같았다.
<…토토로>는 내가 가장 여러 번 본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볼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달라져서, 결국은 또 다시 보게 된다. 처음엔 ‘토토로’와 ‘고양이버스’가 주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몇번 보니 이 영화의 주연은 ‘사츠키’와 ‘메이’다. 이것 역시 최근의 느낌이니 다시 보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동생 ‘메이’의 연기(동작, 애니메이션 움직임)가 단연 압권이다. ‘메이’와 ‘사츠키’ 그리고 ‘칸타’ 등 인물 캐릭터의 동작 연기는 실사영화의 리얼한 움직임과는 다르다. 약간 과장된 듯한 이들의 연기는 훨씬 사실적으로 보여 애니메이션 캐릭터 연기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또, 매번 볼 때마다 웃는 시점과 슬퍼지는 장면이 달라진다. 한번은 ‘검댕이 먼지’가 저녁하늘을 지나 이사를 가는 장면에서 눈물이 날 뻔했는데, 다음번엔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토토로>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동을 자꾸만 자가 증식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는 감독이 전하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뒤로 더 많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게 됐다. 그렇다고 첫사랑 <…토토로>에 비할 수는 없지만, 바야흐로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아서 별의별 좋은 작품이 많다. 갈 길은 멀고 마음만 급하다. ‘토토로’가 산골소년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혹시 길을 잃으면 ‘고양이버스’를 불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