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날 다리오 아르젠토는 <지알로>의 상영장에 들러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영화를 봤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는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거장에게 바치는, PIFF답게 열렬한 헌사였다. 아르젠토 역시 자신을 향한 부산의 애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관객의 수도, 참여도와 열정도 정말 스펙터클한 영화제다. 개막식 때 코스타 가브라스와 입장하면서 그랬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개막식은 처음이라고.(웃음)" 작년 <눈물의 마녀>와 올해 <지알로>를 통해 또다시 전성기의 기운을 되살리고 있는 거장을 만났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대부분의 한국 호러영화들이 당신의 영향력 아래 나온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영화를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한국 호러영화가 내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안다. 한국 감독들이 다른 영화제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더라고.
-신작의 제목이 무려 <지알로>라는 말을 들었을 땐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자기가 창조한 장르의 완벽한 총정리를 보여주거나, 둘째. 자신이 만든 지난 작품들을 오마주 혹은 패러디 하거나.
=이번 영화는 2명의 미국인이 시나리오를 썼다. 내 영화세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내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듯 쓰려고 노력했다. 내 영화들을 패치식으로 짜깁기했기 때문에 총정리 같은 느낌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하고 싶었던 것은 요약이라기보다는 ‘다른’ 영화였다. 그런데 <지알로>는 내가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거다. 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단지 감독만 하는 것 보다는 영화의 작가로서 시나리오까지 다 쓰고 싶다.
-작년 <눈물의 마녀>로 <서스페리아>와 <인페르노>로 이어지는 마녀 3부작을 완결했다. 기분이 어떤가.
=아. 이제는 끝났구나. 안도감을 느낀다. 수년전부터 어깨에 짐을 진 것처럼 압박을 느꼈으니까. 그런데 <뉴욕 타임즈>는 4번째 마녀 시리즈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냐고 하더라. 절대로 안하겠다고 대답했다.(웃음)
-고어는 당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당신 영화중 가장 잔혹한 <눈물의 마녀>와 <지알로>조차 요즘 호러와 비교하자면 고어가 지나친 편은 아니다. 영화적 폭력이 적절한 선에서 조절되어야 한다고 믿는 건가. 고어는 당신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감독으로서 나는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근의 폭력적인 미국 영화는 사디즘으로만 가득하고 심리적인 공포는 부족하다. 위대한 작품이 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고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을 고어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고어는 우리 악몽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팬들이라면 잘 아는 사실인데, 검은 장갑을 낀 살인마의 손을 언제나 직접 연기한다. 지속적으로 연기하는 이유가 뭔가.
=첫 장편은 저예산이라 손만 나오는 배우를 위해 돈을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그냥 나보고 하라더라. 근데 의외로 효과가 좋아서 계속 하게 됐다.(웃음) <지알로>에서도 물론 내 손이다.
-효과가 좋았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손만 보이면서 난도질 하는 건 방향을 잘 잡아야 해서 생각보다 힘들다. 근데 내가 아주 잘하더라. 원하는 만큼.(웃음)
-80년대만 해도 한국 극장에서 람베르토 바바나 미켈레 소아비 등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을 매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호러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경제위기 때문이다. 호러영화는 자본이 많이 든다. 이탈리아에서 웬만한 감독들은 돈을 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신이 미국이나 영국과 합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인가.
=물론이다. 영화를 보다 글로벌하게 진행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와도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국제적인 공조가 있으면 더 큰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공동 작업 제의도 들어온다면 받아들일 거다. 아시아에는 재능 있는 인재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도 낯설고 흥미롭다. 미국 감독들처럼 도시 자체를 단순히 이국적 배경으로 사용하려는 건 아니다. 도시 속으로 들어가서 아시아인들의 삶을 이해한 뒤 심도 있게 작업해보고 싶다. 친구인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합작 가능성을 소니와 타진해 본 적이 있긴 한데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이 인터뷰를 본 한국 제작자들이 합작을 타진한다면 정말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구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