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감독이라. 떠오르는 이름은 코스타 가브라스와 테오 앙겔로풀로스 정도다. 전자는 사실상 프랑스 감독이고 후자는 익숙한 거장이다. 익숙하다는 건 구태의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서른여섯 젊은 그리스 감독이다. 두번째 작품 <송곳니>로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았다. 봉준호의 <마더>를 제친 이 영화가 어떠냐면, 그리 만만치가 않다. 담장으로 외부와 격리된 교외 저택의 가족이 주인공이다. 삼남매는 독재자 아버지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막내아들의 성욕 해소용으로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데려오는 한 여자에 의해 그들만의 세계는 폭력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송곳니>는 억압적인 체제를 비판하는 부조리극이라 할 수 있을게다. 그러나 란티모스는 설명을 주저한다. "그런 알레고리를 상정하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영화를 만든다. 관객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영화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 사실 <송곳니>에서 이야기보다 중요한 건 극도로 미니멀하고 즉흥적으로 구성된 형식이다. 란티모스는 간결함이라는 덕목을 지키기 위해 음악도 완벽하게 제거했다. "음악은 견딜 수 없다. 음악은 장면에 구체적인 감정을 집어넣는다. 음악을 제거하면 신(scene)이 더욱 강력해지고 의미도 많아진다." 그가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강조한 단어는 ‘열려있음(Open)’이다. 확실히 <송곳니>는 관객의 머리통을 내리치는 잔혹한 지적 사유인 동시에 열린 시네마다. 하네케의 데뷔작을 처음 본 느낌이 이랬을까? 물론 그는 하네케보다는 브레송과 카사베츠를 언급하지만 말이다.
<송곳니>가 새로운 그리스 영화의 출발점이 될까? "그리스에서 영화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믿을 건 오로지 정부 지원인데 늙은 감독들만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새로운 그리스 필름 센터의 위원장은 젊은 감독들에게 지원을 주기로 결정했다. 일종의 혁명이다." <송곳니>와 요르고스 란티모스, 젊은 그리스 감독들은 늙은 사자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기로 한 모양이다. 피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혈을 위해서다. 글 김도훈·사진 박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