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들이 만났다. 주인공은 <무사>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을 촬영한 한국의 김형구 촬영감독과 <요시노 이발관> <코끼리의 등> <미안해> 등을 촬영한 일본의 우에노 쇼고 촬영감독이다. 우에노 쇼고 감독은 다른 9명의 일본촬영감독과 함께 ‘일본영화촬영감독협회 부산 사진전’으로 부산을 찾았다. <맨 얼굴의 부산>이라는 제목의 이번 사진전을 기념해 부산영상위원회는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대담을 마련한 것. 다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이승무 감독(<전사의 길> 연출)의 사회로 12일 오후 4시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아주 특별한 현장의 기록이다.
사회자: 이번 대담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말해 달라.
우에노 쇼고: 9명의 일본 촬영감독들과 함께 부산을 찍었고,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에서 사진을 전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부산에서 사진을 찍다가 직업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아주 멋진 장면을 놓쳤는데, 나도 모르게 “한번 더”라고 외쳤던 것이다.(웃음)
김형구: 우에노 쇼고 감독은 평소에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 일본 촬영감독들이 외부의 시각으로 부산이라는 로케이션 장소를 바라본 사진들을 보니,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친숙한 것도 있었던 반면에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와 같은 느낌을 준 작품도 있었다.
사회자: 각자가 생각하는 사진과 영화라는 매체는 무엇인가.
우에노 쇼고: 사진은 움직이는 풍경을 순간적으로 판단해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이다. 대상의 이미지를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영화는 사진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프레임 안에서 원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형구: 영화나 사진이나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해서인지, 사진이 익숙하다. 몇 년 전에 롱테이크?롱숏이 특징인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카메라의 이동, 클로즈업 하나 없이, 하나의 숏을 고정해놓고 그 안에서 인물을 움직였던 방식이다. 그건 분명히 영화지만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 사진은 한 장면 찍을 때 영화보다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롱테이크·롱숏이 주가 되는 영화를 만들 때는 정말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우에노 쇼고: 롱숏을 찍으면서 원하는 장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것 같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롱숏으로 찍는 게 정말 어렵다. 가끔 촬영하다가 멋진 장면에 반해서 거기에 넋 놓고 있으면, 감독으로부터 “어딜 찍냐”는 타박을 받기도 했다.(웃음)
사회자: 아무래도 한?일을 대표하는 촬영 감독이다 보니, 현장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김형구 감독이 예전에 작업한 <역도산>이란 영화가 있다. 일본의 옛 이야기를 한국 스탭들이 만들었는데. 우에노 쇼고 촬영감독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나.
우에노 쇼고: <역도산>은 굉장히 좋은 작품이었다. 일본의 영웅이었던, 재일 조선인의 삶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벚꽃이 떨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일본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벚꽃 지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로 한꺼번에 떨어지는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나 역시도 매번 애를 먹는데, 김형구 촬영감독은 <역도산>에서 굉장히 섬세하게 담아냈다. 사회자/ 촬영감독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현장 시스템에 대해 듣고 싶다.
김형구: 한국의 경우, 감독이 프로듀서보다 현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다보니 한국 촬영감독들은 그림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조금씩 찍는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우에노 쇼고: 일본에서는 촬영감독이 직접 현장을 이끈다. 감독과 머리를 맞대어 무엇을 찍을 건지 고민을 하지 말고, 카메라의 위치부터 잡아서 먼저 찍어야 한다.(웃음) 그런 식으로 촬영감독이 감독보다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
김형구: 나도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카메라를 세팅했는데 감독이 갑자기 와서 “(카메라의)위치를 저쪽으로 바꾸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우에노 쇼고: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촬영감독이 카메라 옆을 떠나지 말고 지켜야 한다.(좌중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