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반칙왕>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입대하기 얼마 전이라 불쌍해 보였는지 친구들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다. 그래서 보게 됐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마냥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칙왕>이 그 기분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많은 분이 봤겠지만, 영화의 내용은 찌질이 직장인이 레슬링을 하면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뒤 그간의 속박을 모두 깨고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이야기…. 뭐 어쨌든 영화의 이야기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로부터 4~5일 뒤 군대에 입대하게 됐다. 갑자기 군대 얘기를 한다니 여성분들은 완전 싫어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얘기는 아니다.
훈련소에서였다. 500원씩 내면 문화활동을 시켜준다는 거였다. 군인도 공무원인데 공짜로 보여주지라는 생각만 하고 하는 수 없이 끌려갔다. 500원을 냈는데 이게 뭔가. 영화를 보여준다며 <반칙왕>을 상영하는 게 아닌가. 본 건데, 하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에 푹 빠져들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웃었다. 잠시 군대에 와 있다는 것조차 잊고 말이다. 그러다 어느 장면이었더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관 의자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그 재미있던 영화보다 빡빡 깎은 머리에 밀리터리 룩에 폼나지 않은 군복을 입은 머스마들만 눈에 들어왔다. 속에선 벌써 육두문자를 한번 내뱉었다. 한순간에 영화는 긴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민간인이 느끼는 기분과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 안에 있을 때 느끼는 기분의 극과 극을 맛본 것이다. 정말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기분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기분을 요즘 자주 느끼게 된다. 군대도 아닌데…. TV를 보다가도, 인터넷을 하다가도,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 가면 더더욱 그렇다. 그곳에 모인 이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군대가 된 듯한 느낌이다.
아침에 출근해 인터넷을 열면 하루에 하나 정도는 꼭 있다. 좌와 우로 나누는 그 어떤 이의 발언과 방송 하차, 학교 서열화, 국정감사 중인 찌질이 국회는 또 어떤가. 도대체 왜 국민 모두 머리를 빡빡 깎이고 간지 안 나는 군복을 입히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 찌질한 이들에게 레슬링이라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