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루카스, 아니 성찬의 운명은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는 신탁에 따라 내버려진 오이디푸스의 궤적보다 더 가혹하다. 성인이 된 뒤 한국에 돌아온 성찬에게 정신을 잃은 어머니는 음식 대신 독배를 내민다. 오디션을 거쳐 성찬 역을 따낸 뒤 박상훈은 맨 먼저 외국인들이 배우는 초급용 한국어 교본부터 샀다. “성찬은 외국인이나 다름없잖아요. 극중 성찬의 대사가 외국인이 서툴게 한국말 하는 거랑 비슷할 것 같아서요.” 그보다 중요한 건 ‘뿌리 뽑힌’ 성찬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해외로 입양된 분들을 많이 만났죠. 외국인 부모가 어릴 때부터 ‘너는 백인이다’라고 끊임없이 세뇌를 한대요. 모국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다 커서 아는 경우가 많고.” 그들의 말투와 개인사를 입력한다고 해서 성찬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성찬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밀려나간 존재잖아요. 백인들에게 밀려난 애버리진(Aborigine)의 정서와도 닮았어요.”
호주 원주민 이야기가 뜬금없진 않다. 박상훈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호주에 갔다. “놀러가는 줄 알고” 짐 쌌는데, 거기서 10년을 살았다. 결과적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외톨이 생활을 오래한 경험도 성찬에게 다가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촬영하기 전엔 박지아 선배님과 모텔 침대에서 뒤엉키는 장면이 가장 걱정됐는데 그건 그냥 ‘후르륵’ 지나갔어요. 대신 도입부에 들판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이 더 어려웠어요. 안선경 감독님이 제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는데, 간단한 대사를 바꿔도 감정 톤이 달라지잖아요. 욕심을 부릴수록 디테일이 늘어나고. 디테일에 빠져서 허우적대느라….”
4년 전부터 ‘멜로브리즈’라는 그룹을 결성해 음악 활동을 해온 박상훈이 연기에 관심을 가진 건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익히 알려졌듯이, 그는 배우 박근형의 막내아들이다. 호주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가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역정은 엄청났다. “음악 하는 것을 받아주신 다음이어선지 연기한다고 했을 때는 별 말씀 없으셨어요.” 올해 여름 연극 <나쁜 자석>에도 출연한 뒤 매년 연극 1, 2편은 하고 싶다는 박상훈. 대선배인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벌써 생각해 둔 작품이 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 근데 아직 멀었어요. 전에 연극했던 누나가 아버지와 같이 연기한 적이 있는데 야단을 너무 많이 맞아서 매일 울었거든요.” 배우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빚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