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류의 반복주입식 정치 프로파간다들이 그러하듯, 매년 잊을 만하면 등장해주는 ‘나치사탄-유대박해 무비’들에 도무지 호감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만, 그럼에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등장하는 나치 친위대(SS) 장교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에 대해서만큼은 필자,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왜냐. 일단 비주얼부터 그렇다. 항간에 나쁜 놈의 궁극으로 칭송받는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를 보자. 알다시피 조커는 1편부터 고집해온 변장급 분장으로 치솟는 분장비를 감당치 못해 급기야 최근엔 흘러내리고 번지고 지워지는 저질야메 화장품으로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극빈 비주얼을 보여주는 바, 이는 나쁜 놈의 절대 금기 중 하나인 동정심 유발행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한스 란다’는 얄팍한 품격, 미량의 느끼함, 은근한 변태성이 조화된 야비한 마스크를 통해 ‘평범 속의 비범’, ‘품격 속의 야비’라는 나쁜 놈 비주얼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더불어 얘는, “당신의 젖소도 따님들만큼 훌륭하군요” 등의 은근 변태스러운 대사와 식사 시 상당히 불쾌하게 움직여주는 입모양 및 데시벨 높은 쩝쩝 소리 등으로 비주얼이 안기는 불쾌지수를 십분 끌어올린다.
하나 그보다 ‘한스 대령’의 불쾌지수를 본격 높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잔머리다. 스포일러가 될까 하여 상세히는 말 못하겠으나, 혼자서만 날름 빠져나가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막판 생존전략에서 노출된 야비함은, 이 시대 나쁜 놈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곱씹어봐야 할 이 영화의 백미다. 급박한 운명의 갈림길 한가운데에서도 치밀한 정세분석 및 분위기 파악을 통해 일신의 영달을 관철해내려는 그의 잔머리… 그것은 비단 나치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나쁜 놈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비주얼과 잔머리를 넘어서 ‘한스 대령’을 특A급 나쁜 놈으로 우뚝 세운 덕목은 따로 있다. 바로 근면성실함이다.
얘는 4개 국어에 완전 능통한 것은 물론, 광범위한 심문과 세심한 정보 수집을 통해 브래드 피트를 필두로 한 착한 놈 진영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뿐인가. 얘는 오로지 나쁜 놈질 하나만을 위해 프랑스 오지 시골마을까지의 여행을 마다않는 것은 물론이요, 각종 사건 현장을 친히 찾아다니며 그 야비하고도 섬세한 눈길로 착한 놈 진영의 흔적을 잘도 적발해낸다. 더욱이 부하를 동원하지 않고 굳이 자신의 손을 써 직접 착한 놈을 처단하는 솔선수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한번 맡은 사냥감의 냄새를 잊지 않는 집요함, 그리고 “역사 속에서는 뜻밖의 운명이 모든 걸 바꿔놓지” 같은 지식인스런 대사까지 날려주는 위장술 등 또한 모두 근면성실함을 기반으로 탄생한 덕목들이다.
하니, 기억하라. 모름지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나쁜 놈은, 자신의 직분에 더없이 충직하고 근면성실한 나쁜 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