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리 고헤이(56)는 지금 일본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96년작 <잠자는 남자>에 안성기씨를 출연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한국으로 건너가 경찰관을 하다가 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때 오구리 감독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가야코를 위하여>(84년)는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재일동포 2세와 일본 여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생각이 안 바뀌었다. 나는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인이 재일동포인 그는 지금까지 열 번 가까이 한국에 왔지만 이번 방한은 의미가 남다르다. 광주영상축제가 한편도 개봉한 적이 없는 그의 영화 네편을 모두 가져와 상영하는 특별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의 완고한 보수성과 민족차별 감정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오구리 감독은 데뷔작 <진흙강>(81)에서부터 소수자와 주변인에게 주목했다. 일본의 전후 부흥기인 50년대 후반, 보통 가정의 어린이와 배를 타고 강을 떠도는 매춘부의 아들 사이의 우정을 매개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낸다. <가야코…>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시각이 전제돼있음은 물론이지만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재일동포 문제를 다루면서 미묘한 문제를 느꼈다. 나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할지, 카메라를 얼마 만큼 멀리 둘지, 또 내러티브를 어떻게 번역할지. 단순한 이야기로 번역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한 컷 한 컷에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화 <죽음의 가시>(90)는 영화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법이 전면에 나선다. 정적인 화면이 계속되다가 툭툭 잘려나가듯 다른 화면으로 바뀌고, 피안의 세계 같은 환상적 장면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이를 통해 바람핀 남편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미쳐가는 한 부인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 끌고가는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카메라는 현실을 찍는 게 아니다. 카메라가 들어설 자리가 이야기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의 눈은 신의 눈인지도 모른다. 그 눈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꿈을 꿀 때 카메라의 위치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