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석근] 해운대 백사장에 소주병 1천개 꽂는다?
2010-01-22
글 : 문석
사진 : 최성열
‘부산프로젝트’ <카멜리아> 제작하는 오석근 발콘 대표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강동원, 송혜교의 만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일본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와 설경구의 결합, <시티즌 독> <검은 호랑이의 눈물>의 타이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과 김민준의 조합. 이 모든 것은 이제 곧 촬영에 돌입하는 새 영화 <카멜리아> 안에 들어가게 된다. 무슨 영화기에 이렇게 화려한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냐고? <카멜리아>는 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 프로젝트>라는 가제로 발표됐던 옴니버스영화다. 이 영어 단어(camellia)의 뜻은 글쎄 동백꽃이란다. 이 프로젝트가 특이한 점은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 영화사 (주)발콘에서 제작한다는 사실이다. ‘영상도시’, ‘아시아영화의 중심’으로 불려왔지만 상업영화 한편 제작하기가 어려웠던 부산에서 이 글로벌 프로젝트가 탄생한 데는 발콘의 오석근 대표의 공헌이 컸다. <101번째 프로포즈> <연애>의 감독이자 부산영화제의 초대 사무국장이며 이제 프로듀서로 전업한 오석근 대표는 함박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네왔다.

- 표정이 굉장히 밝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다. <카멜리아>가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니까. 방금도 장준환 감독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제작팀이 함께 쓰는 사무실에 다녀왔다. 두팀이 약간 서먹하기에 모두 불러내서 폭탄주를 돌리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웃음)

- <카멜리아>의 각 에피소드는 언제 촬영을 시작하나.
= 가장 먼저 시작하는 건 장준환 감독의 <Love For Sale>이다. 1월15일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2월10일 전후에 마칠 예정이다. 그 다음이 타이의 위시트 사사나티앙이 만드는 <Iron Pussy>인데, 18일쯤 시작해서 1월 말쯤 마무리할 계획이다. 일본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카모메>는 1월28일부터 2월 초순까지 촬영한다. 3월15일 정도 A프린트가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그게 칸영화제 일정에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하던데.
= 칸을 목표로 하는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감독들을 선정하고 나니 칸영화제에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준환 감독은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하나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고, 사사나티앙 감독도 뤽 베송이 관리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의 감독이며, 유키사다 감독 또한 일본의 흥행감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내시장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해외시장에 초점을 맞추려면 칸영화제가 가장 적절하다고 봤다. 그들이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추진하는 것이다.

- <카멜리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 2008년 김지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나에게 “우리가 <도쿄!> 같은 영화를 못 만들 이유가 뭐냐”고 이야기했다. 김지석은 30년 지기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우리 학교에서 영화배우 이름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는데, 다른 학교에도 그런 아이가 있다고 해서 알게 됐다. 옛날에는 그런 것으로 배틀을 하고 그랬다. (웃음) 하여간 그렇게 말하기에 나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도쿄!>의 완성도가 낮다는 말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부산이 글로벌 프로젝트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김 프로그래머에게 “감독은 네가 찾고 돈은 내가 구하자”고 이야기했다. 부산영화제쪽과도 논의하면서 본격적으로 감독을 찾아나서기 시작한 것이 2009년 2월쯤이었다.

- 세명의 감독은 어떻게 선정했나.
= 사실 여러 감독과 접촉했다. 지난해 2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만나러 테헤란으로 갔던 게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조니 토, 고레다 히로카즈, 장이모, 첸카이거 등과 연락했다. 그런데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았다. 결국 스케줄이 맞고 취지에 공감하는 세명의 감독이 선정된 것이다. 나는 다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세 감독 모두 지금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다.

- 장준환 감독은 어떤 생각에서 섭외했나.
= 한국 감독을 정하는 건 더 어려웠다. 자칫 부산영화제가 특정한 한국 감독을 찍었다는 뉘앙스를 주지 않을까 부담스러웠다. 내부 논의와 여러 감독과의 상의 끝에 장준환 감독으로 정했다. 데뷔작 한편만으로 아직도 기대감을 모으는 존재인데, 우리가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장 감독은 준비하던 <타짜: 리벤저>까지 엎어져 의기소침한 상황이었지만 의욕적으로 임했다. 2주 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고로 고쳐 만들었고, 또 2주 만에 콘티를 만들었으니까.

- 공통 주제라든가 감독들에게 제시한 게 있나.
= 별것 없다. 부산을 배경으로 하여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라고 했다. 단, 주제는 사랑이라고 못박았다. 부산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부산이 더이상 마약이나 조폭의 도시로 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익숙함 속의 낯섦’을 찾아내주기를 바랐다. 그들의 눈을 통해 부산을 재발견했으면 좋겠다.

- 캐스팅도 대단하다.
= 감독들에게 가급적이면 한국 배우들과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가장 먼저 캐스팅된 게 설경구다. 유키사다 감독 영화의 작가가 <역도산> 때 스크립터였단다. 그래서 이 친구가 ‘설경구 아니면 안된다’고 감독에게 적극 추천했다. 차승재 전 싸이더스 대표나 봉준호 감독도 설득에 동참해줬다. 설경구도 <역도산> 때 일본 스탭과 작업한 게 좋았는지 개런티에 개의치 않고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강동원, 송혜교도 꿈같은 캐스팅인데 원만한 조건으로 출연해준다. 사사나티앙 감독의 <Iron Pussy>는 사실 주인공 캐릭터(타이 배우 마이클 샤와나사이)가 거의 다 이끌고가는 영화다. 조연의 비중이 너무 작아서 캐스팅이 어려웠는데, <시티즌 독>을 굉장히 좋게 봤던 김민준이 출연 결정을 해줬다. 비중을 조금 늘리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각각의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Iron Pussy>는 1970년대 부산에 스파이로 온 타이 요원의 이야기다. 이 스파이는 여장 남자인데 한국인인 김민준과 사랑에 빠진다. 뮤지컬영화인데 아주 독특하다. 오죽하면 해운대 백사장에 소주병 2천개를 꽂으면 안되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1천개만 하자고 그랬다. (웃음) 시원소주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웃음) 유키사다 감독의 <카모메>는 현재의 부산이 배경이다. 설경구가 촬영감독인데 유령 같은 여성에게 빠져든다는 이야기다. 장준환 감독의 <Love For Sale>은 사랑에 관한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강동원은 옛사랑의 기억을 뺏은 자를 추적하는 남자로, 송혜교는 강동원의 기억 속 옛사랑의 주인공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큐피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쪽으로 풀려갔다. 장 감독이 부디 이 영화로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각각이 부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도 특이하다.

- 부산 어디어디서 찍게 되나.
= 전역이라서 꼭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부산시에서 파격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국제시장을 오후 6시부터 통째로 막아서 찍거나 보수동 책방골목을 완전 통제한 채 촬영을 한다거나.

- 부산시 차원에서도 관심이 있는 듯하다.
= 부산시 입장에서도 도시의 재발견을 통해 브랜드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관광 홍보 역할이 있을 것 같다.

- 부산의 스탭들도 참여하나.
= 일단 주요 스탭 몇명은 해외에서 들어오고, 서울에서 오는 스탭도 있다. 나머지는 모두 부산의 스탭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자극과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들 3개 에피소드에는 프로듀서가 각각 한명씩 붙어 있는데 모두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다. 장준환 감독 영화를 찍는 홍경표 촬영감독에게도 일부러 “뺑뺑이 좀 돌려라”라고 말했는데(웃음), 그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 발콘을 만든 것은 언제인가.
= 그것도 2008년이다. <연애>를 만든 뒤 부산영화제로 돌아가 영상센터 사업본부장으로 일했다. 업체 선정과 설계 등 밑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 발콘을 만들었다. 발콘(BALCON)은 ‘Busan ALternative COntent Network’의 약자인데, 그동안 부산영화제가 일궈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올해 15회를 맞는데 그동안 만든 아시아와 유럽의 네트워크가 대단하다. 이것이 어딘가로 환원됐으면 했고 기왕이면 부산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생각은 미국 선댄스영화제의 ‘선댄스 채널’처럼 ‘PIFF 채널’을 만드는 것이었다. 부산영화제의 상영작이나 아시아의 중요한 영화들을 보여주는 케이블 채널 말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영화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로 보였다. 아시아와 부산이 함께하는 제작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게 기본 구상이다. 그리고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위한 제작환경을 만든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에게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다.

- 부산영화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질 것 같다.
= 사실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일부 투자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민감한 점도 있다. 영화제의 기본 업무는 당연히 축제를 잘 꾸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특정 영화를 편들기도 애매한 입장일 것이고. 우리가 잘해서 교통정리를 깔끔하게 할 계획이다.

- 앞으로 발콘의 계획은 무엇인가.
= 일단 김동호 위원장님은 이런 부산 프로젝트를 매년 만들기를 원한다. 조니 토 같은 경우는 올해나 내년에 또 만들게 되면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아시아의 다른 도시를 정해서 옴니버스영화를 만드는 게 있다. 타이와 말레이시아에서는 벌써 제안을 하더라. 하여간 아시아 프로젝트이건 부산 프로젝트이건 시리즈로 가져가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 영화인들과의 네트워크가 단단해져서 공동제작을 위한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다. 부산과 발콘을 중심으로 아시아 합작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이야기다. 부산의 감독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 또한 진행할 것이다. 조종국 기획이사, 이승진 이사 등과 꾸준히 논의 중이다.

- 그동안 부산을 기반으로 한 제작사인 라이트하우스필름과 필름나루를 만들어 운영해왔다. 어려운 여건인 게 뻔한데 굳이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려는 이유가 뭔가.
= 대학 다니던 시절부터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영화아카데미에 갈 때도 그곳에서 영화를 배워서 부산에서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특히 부산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니까 꿈이란 게 충분히 현실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0년을 해왔는데 시행착오 끝에 이제야 부산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연계하는 방안을 찾은 것 같다. 발콘이 부산에서 영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 이제는 꿈이 이뤄진 셈인데 행복한가.
= 무엇보다 일을 통해서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 좋다. 부산영화제 때도 사실 영화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선뜻 나가기 어려웠다. 이제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젊은 영화인들도 일로 만나야 하는 입장 아닌가. 행복하다는 말은 감히 쓸 수 없고 그저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행복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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