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아바타> 천만 돌파, 충무로는 고민중
2010-01-25
글 : 강병진
글 : 이주현
글 : 김성훈
외화 사상 최고 기록 수립이 한국영화계에 미칠 영향을 영화인 12인에게 물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제임스 카메론을 넘어설 기세다.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개봉 5주차를 맞은 <아바타>의 전세계 흥행수익은 1월19일 현재 16억624만달러다. 역대 1위인 <타이타닉>의 흥행수익은 18억429만달러였다. 관계자들의 예상대로 <아바타>의 수익이 20억달러를 넘어선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경신한 셈이 될 것이다. 수익뿐만 아니라 <아바타>를 둘러싼 여러 징후들이 10년 전 <타이타닉>을 연상케 만들고 있다. 지난 1월17일, 제임스 카메론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미 10년 전 감독상을 수상했던 그 시상식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번에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10년 전 “나는 세계의 왕이다!”라고 외쳤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수상소감을 밝힐지도 관심거리다.

<아바타>의 전세계적인 기록 경신에 앞서, 이미 한국에서 사상 최초의 기록이 달성됐다. <씨네21>을 펼친 당신은 이미 <아바타>의 1천만 돌파 소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외화인데다가, 그것도 SF영화에 1천만명의 한국 관객이 열광했다는 사실이 또 다른 열광을 낳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인들은 <해운대>의 1천만 돌파를 경험했다. 당시에는 한동안 외면받던 한국영화가 다시 관객의 관심을 얻게 됐다는 점에서 반갑게 여기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재난영화란 할리우드만의 장르를 한국적으로 해석해 성공시켰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다짐케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아바타>의 1천만 돌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구동성으로 “놀랍다”, “경이롭다”, “무섭다”라고 입을 뗀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한국 3D 산업도 가속화될 것”

강종익/ 인사이트비주얼 대표
<아바타>가 나오기 전에는, ‘이 정도만 하면 할리우드와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보니 다시 따라잡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래도 <아바타> 덕분에 국내 3D 영화산업이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얻은 것 같다. CG 관련 분야에 더 많은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고, 산업적으로 파이 역시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3D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번 <아바타>의 흥행으로 극장들은 3D 상영에 적합한 제반시설(영사기 등)들을 확충했고, 그로 인해 3D의 유통기회가 늘어났다. 가전제품을 구입하든 영사기를 구입하든 성공사례가 있어야 산업이 힘을 받는 것처럼 <아바타> 덕분에 3D 영화산업이 앞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3D로 전환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이다.

심재명/ MK픽쳐스 대표
영화라는 매체가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리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당연한 말이기는 한데, <아바타>의 정도의 기술력, 기획, 인프라 등이 한데 모일 수 있었던 건 거대 자본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심플한 게 와닿았다. 3D가 영화 내에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야기가 심플하기 때문이다. 현재 MK픽쳐스에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2D로 제작하고 있는데, 극장에서 3D로 만들어볼(그러니까 2D로 먼저 만든 뒤에 부분적으로 3D로 컨버팅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라는) 필요가 있지 않나 고민을 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한국 영화인들 모두 새로운 기술에 긴장하고, 우리에게 적합한 환경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이진훈/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팀장
언젠가는 외화도 1천만명을 달성할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거지. 그동안 한국 관객은 할리우드영화를 볼거리 위주로 선택했다. 한국영화는 볼거리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로 채우려 했다. <아바타>는 이 두개의 카테고리를 넘어선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3D에 대한 고민을 좀더 깊게 해보게 됐다. 물론 투자 제안을 해오는 3D영화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왜 3D를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기술력과 이야기, 캐릭터의 3박자를 잘 맞춘 프로젝트가 나와야 할 것이다. 이제 한번 맛을 본 이상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조민환/ 나비픽쳐스 대표
<아바타>의 흥행이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효과는 예전의 <쥬라기 공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쥬라기 공원>이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당시 정부에서 영화산업을 장려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이 나왔는데, <아바타>가 딱 그렇지 않나. 지금 당장 차기작을 3D로 제작하겠다는 감독들도 몇몇 있다. 또 많은 제작자들이 다음 라인업을 3D로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보편적인 감정이야말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다 좋아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같은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역시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3D라는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보여줬기에 대중이 <아바타>에 열광한 것 같다.

“스토리텔링이라는 ‘그릇’을 고민한다”

김성수/ 영화감독, <무사> <영어완전정복>
두번 봤고, 한번 더 볼 계획이다. (웃음) <아바타>는 워낙 강렬하고 센 영화잖나. 좋은 창작물이 나오면 그만큼 경탄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바타>가 성공했다고 해서 한국영화산업이 3D로 모두 눈을 돌리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기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릇이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그런 건 배웠으면 좋겠다. 3D는 극장에서 큰 스크린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이 극장에 돈을 내러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등돌린 관객을 극장 앞으로 불러들일까를 고민한 셈이다. 지금 우리는 현재 한국영화산업에 적합한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이 어디까지 와 있나를 생각해야 한다.

신정원/ 영화감독, <차우>
제임스 카메론을 좋아했었다가 한동안 싫어했다.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때는 가식적인 느낌이 있었고 <타이타닉>을 봤을 때는 이건 아니지 싶었다. <아바타>는 20대 이후 처음으로 흥분하면서 본 영화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도 제임스 카메론이 잊고 있었던 정신이 다시 살아난 듯 보였다. 미 제국주의를 다루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만든 점이 놀라웠다. 거기에 기술력이 뒷받침되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감독이 아닌 한명의 관객으로서 매우 만족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아바타> 이후에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많이 힘들어진 것 같지만, 이걸 계기로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윤철/ 영화감독, <말아톤> <좋지 아니한가>
영화가 활동사진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동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최우선 과제로 놓아야 할 것 같다. 나름 영화공부를 한 20년 했는데,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껴본 것 같다. <아바타>가 뤼미에르나 멜리에스 다음으로 영화의 미래를 짚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제는 3D가 대세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기술에 종속되어 장비업체만 돈버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영화의 본질을 새롭게 고민해야겠다는 거다. 지금 <아바타>를 본 관객은 영화 역사적으로 볼 때 운이 좋은 쪽일 것이다. 영화사에 기록될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최준환/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본부장
<아바타>가 1천만을 넘었지만, 여전히 외화의 한계는 800만명 정도일 것이다. <아바타>의 경우를 기존의 영화개념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관객은 <아바타>를 놓고 재밌냐 안 재밌냐, 좋으냐 나쁘냐, 옳은 거냐 그른 거냐를 이야기하지 않는 듯 보인다. 아예 차원이 다른 무언가를 경험한 게 아닐까? 2D를 본 사람들이 3D도 보고 다시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는다. 재밌어서 한번 더 보자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확대 재생산의 동력이 된 거다. 이제 한국영화도 단지 할리우드와 경쟁하겠다는 목표보다는 아예 새로운 걸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건 기술적인 측면의 고민일 수도 있지만, 장르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현재 관객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배운 것 같다.

“한국영화에 맞는 아이템 개발 시급”

김원국/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대표
<아바타>가 1천만을 돌파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400만, 500만 정도 예상했다. SF적인 내용으로 1천만까지 간 게 대단한 거 같다. 바람을 탄 이유는 역시 비주얼이다. 감동을 마구 주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섬이 떠다니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완벽에 가깝게 신기하니까. 1천만을 넘긴 한국영화들도 그렇고 볼 수 없었던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수입사 대표로서는 당연히 부러웠다. 외화도 1천만을 할 수 있다니.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할리우드가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아바타>의 1천만 관객 기록을 깰 외화는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이성훈/ 프로듀서, <태극기 휘날리며> <미인도> <식객: 김치전쟁>
부럽더라. 기술력으로 상상력을 밀어붙일 수 있는 할리우드에 더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아바타> 같은 외화가 1년에 5편 정도 개봉된다면 한국영화는 초토화될 것 같다. 돈주고 보는 관객에게 더이상 한국영화를 위해 봐달라고 하는 것도 창피하다. 한때 관객이 한국영화를 사랑했을 때, 더 노력해야 했다. 더이상 할리우드를 이겨보자는 건 무모한 도전 같고. 같은 동양권인 일본과 중국시장을 공격적으로 두드려야 할 것이다. 이제는 진짜 아이템 싸움이다. 한국이나 넓게는 아시아가 공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짜내야 한다.

장성호/ 모팩 스튜디오 대표
누가 그런 평을 했더라. <아바타>의 3D 효과가 소극적으로 쓰인 거 같다고. 그건 정말 잘못된 분석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기술을 완벽히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어비스>의 물기둥 기술이 결국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이라는 역작을 탄생시켰다. 가장 진보적으로, 적극적으로 기술을 써서 늘 역사를 새로 쓰는 게 바로 그다. CG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망감을 느꼈다. 제임스 카메론하고 똑같은 티켓값을 받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니. 밥숟가락 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 요즘 3D 붐이 일고 있는 데, 3D이기 때문에 성공할 거란 믿음은 오해다. 기술은 작가가 표현하려는 이야기를 위해 유용하게 쓰이는 도구 아닌가.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한국영화라면 축하라도 해줘야겠는데 난감하다. <아바타>는 볼거리가 주인 영화다. 볼거리 자체로 경이로웠다. <아바타>로 서사를 따지는 건 의미없는 것 같다. 그건 어불성설이고, 그 자체로 경이로운 축제로서 즐겨야 할 것 같다. 제작자로서 볼 때, 할리우드에 맞대응을 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3D시장이 확장됐으니, 시도는 해야겠지만, 3D를 가지고 대적하는 건 무리다. 규모와 사이즈로 견주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3D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즐기지 못했다. <아바타>가 시리즈로 만들어진다는데 무섭다. 그래도 (<아바타> 관계자들에겐) 축하한다고 전해달라. 현실은 정말 무서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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