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난해한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메멘토>를 꼽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봤다면, 처음부터 전혀 이야기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영화 속의 시간이 역방향으로 전개되는 구성상의 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혹성탈출>을 꼽고 싶다. 당연히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시퀀스에 지구가 원숭이들의 행성으로 변해 있는 그 황당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에 대해 누구도 그럴듯한 ‘설’을 만들어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수입한 직배사에서조차 ‘마지막 시퀀스의 해석을 기자들이 물을까봐 무서워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흘러다녔을 정도니, 그럴듯한 ‘설’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황당하다는 측면에서 불가해한 <혹성탈출>을 제외하면, 사실 <메멘토>보다는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훨씬 더 난해한 영화다. 물론 <이레이저 헤드>로 시작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 대부분이, <스트레이트 스토리> 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난해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이 끝까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영화였던 데 반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어떻게든 스토리라인이 한 가닥으로 정리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 스토리라인 만들기를 포기 못하는 사람들에게,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한 수입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의 스토리를 해체, 재창조하는 이벤트를 열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감상문 등을 올리라는 이벤트는 딱 질색이지만, 이번에는 영화가 영화이니만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른 관객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관객의 의견 중에는 ‘린치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꿈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꿈이란 인간의 성적 압박과 증오, 혹은 고통들이 현실의 불규칙한 조건들의 흡수없이 독자적으로 이미지나 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라며, ‘한 여자(베티)의 현실과 비현실(꿈 혹은 상상)을 꿈 혹은 다른 세계에서 다이안이 깨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양분했다’는 해석이 있었다. 이런 해석은 상당수 관객의 해석과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현실의 베티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 또는 상상 속에서 이루려 하는 것이 영화의 전반부라고 보는 시각이다. 또다른 해석은 이러한 스토리라인 자체보다는 이 영화가 ‘권력에 대한 불평이며, 할리우드에 대한 허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렌시오 극장에서의 장면이 이러한 해석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의 논리의 핵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관객의 해석이 엇갈리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웹진 중 하나인 살롱닷컴(Salon.com)이 ‘당신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대한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실은 것도, 바로 그런 다양성에 자신들의 시각도 얹고 싶어하는 필자들의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롱닷컴은 다수의 관객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비슷하게 영화를 전반부(파란 상자가 열리기 전)와 후반부로 나누고, 후반부가 실제 존재했던 사건들을 보여준 것이며 전반부는 후반부에서 자살한 다이안의 상상 혹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반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상황은, 후반부의 다이안의 의식 속에 존재하던 상상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감독 아담은 현실에서는 잘 나가는 감독이지만, 다이안의 상상 속에서는 부인이 바람을 피고 신인 여배우를 강요하는 엉뚱한 제작자에게 시달리는 불행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
살롱닷컴에 의하면 그 상상 속에서는 자신을 버린 카밀라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여인 리타로 등장하며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싶었던 자신의 옛 모습도 아직 남아 있는, 자신만의 천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이 진짜 정답인지는 데이비드 린치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데이비드 린치마저도 어떤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마저도 허구에 기반한 영화이고, 영화라는 매체는 실렌시오 극장 장면이 주는 교훈처럼 그저 공허한 허상일 뿐이라는 일부 관객의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장을 나오면서 자신이 두 시간여를 본 영화를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하는 것이,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적인 관객치고 린치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욕망이 생겨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린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감독임에 틀림이 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공식 홈페이지 http://www.mulhollanddrive.com/
<멀홀랜드 드라이브>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mulholland.co.kr/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