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
[김종구] 무대 울렁증, 논문으로 이겨냈어요
2010-05-19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시>의 박형사 연기한 김종구

<시>의 박 형사는 묘한 기운을 내뿜는 인물이다. 시를 한 소절 읊고 나서 음담패설로 마무리하는 박 형사는 미자(윤정희)의 주변에서 배회하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도 하고, 미자의 선택을 은연중에 돕기도 한다. 낯익은 얼굴의 배우였다면 이 독특한 분위기의 남자를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태> <귀족놀이> <테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등을 공연하며 30년 가까이 국립극단 무대에 서왔던 김종구(55)에게도 <시>의 박 형사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연극 연습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홍어>라는 창작극인데, 완고한 아버지 역할입니다. 다들 연습 끝나고 홍어 먹으러 갔는데, 저도 인터뷰 끝나고 가봐야 해요.

-<시>가 첫 영화인가요.
=큰 역할은 처음입니다. 전에 <우묵배미의 사랑>(1990) 했어요. 박중훈씨 형 역할로 나왔습니다. 잘 아는 선후배 사이인 김의석 감독이 전화해서 “형, 바람이나 한번 쐽시다”라고 해서 또 몇편 찍었습니다.

-이창동 감독과는 <시> 전에 인연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에이전시쪽에서 오디션 보러 오라고 했어요. 집이 일산인데 감독님 댁이랑 영화사가 다 일산에 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왔죠.

-시나리오 속 박 형사는 어떤 인물이던가요.
=대단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인데 직업이 경찰일 뿐이지요. 이기적인 도시에서 떠밀려 시골로 왔지만 지금 생활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에요. 감독님께서도 이 인물의 전사(前史)에 대해 따로 이야기해주신 건 없었어요. 다만 연극배우들이 영화하면서 힘들어하는 점들, 에너지를 못 맞추는 것이나 과잉 연기를 주로 많이 교정해주셨습니다. 아, 그리고 윤정희 선생께서 저와 첫 만남에서 박 형사와 똑같다고 해주셔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시 낭송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전에 연극배우와 시인과의 만남 같은 자리가 있어 낭송을 해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좀 걱정이 됐습니다. 감독님께서 시란 낭독자의 정서에 맞게 하면 된다, 그게 정답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정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미친 척 읽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사실 제가 자주 가는 버스정류장에 쓰여져 있어서 좀 편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너에게 묻는다>의 경우, 조금 강하게 도발적으로 읽어달라고 주문하셨습니다.

-평소에 음담패설을 즐겨하나요.
=이창동 감독님 첫 질문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럼요, 그런데 제가 하면 잘 안 웃습니다’ 했습니다. 연습 때든 촬영 때든 그 장면에서 감독님이 항상 웃어주셨습니다.

-시와 음담패설을 뒤섞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박 형사도 미자처럼 시를 한편 쓰고 싶은 인간일 겁니다. 다만 남들이 시 낭송하고 철학과 인생을 논할 때 그는 음담패설로 시를 해석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도 고상한 무엇이 있겠지만, 이 사람의 문법이 결국 음담패설을 내뱉게 하는 것 아닐까요.

-시의 잔향 위에 음담패설을 올렸다고 해야 할까요. 음담패설을 시적 운율로 낭송했다고 할까요. 낭송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굉장히 튼튼하고 치밀한 시나리오입니다. 박 형사의 시 낭송과 음담패설은 같이 맞물리기도 하고, 아슬아슬 빗나가기도 하고, 영화 속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배드민턴 치는 장면은 어땠나요.
=첫 촬영이 그 장면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찍었는데 가장 힘들었습니다. 많이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침울해할 수도 없고, 톤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후반부에 박 형사의 등장에 대해 영화는 특별한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시나리오에도 없었고, 감독님도 따로 덧붙여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술집장면에서 경찰의 직감이 발동해 미자에게 다가갔고, 젊은 형사에게 조사를 해보라고 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면 시 낭송을 할 때와 그 뒤 장면의 앵글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처음엔 별 개성없는, 성깔 안 나오는 평범한 인간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술 마실 때는 형사 얼굴이 조금씩 비칩니다. 참 잘 만들어주셨어요. (웃음) 이게 영화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년이면 국립극단에 들어간 지 30년입니다.
=아직도 저 극단에 가면 허리예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셨던 장민호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신데 제가 어찌. 사실 저는 울렁증이 한때 좀 있었어요. 배우들이 다들 그렇죠. 그래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연기자의 무대공포에 관한 연구를 했어요. 그걸 하고 나니 울렁증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박사과정을 끝내고 일상에서 무대에 오를 때 배우의 심리 경계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에요. 그걸 마무리해야 하는데 잘 안 풀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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