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뭘 그렇게 쓰고 계세요?
=시를 쓰려면요, 평소에 이렇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해요. 저 꽃 너무 슬퍼 보이지 않아요? 김용탁 선생님이 그랬어요. 사소한 것 하나라도 깊이 파고들면 시가 될 수 있다고.
-실제로도 영화 속 ‘미자’의 모습과 참 닮으신 것 같아요.
=저는요, 마음이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요,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싶고요, 한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싶어요. 영화에서는 양미자지만 사실 제 본명도 손미자잖아요? 이것저것 잘 까먹고 세상 주변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게 저랑 참 비슷해요. 아, 그 뭐더라? 영화 속에서 이런 병을 뭐라고 하던데… 파키스탄병인가?
-파킨슨병이요.
=맞다. 파킨슨병. 하하 내가 원래 이래요. 실제로 잘 까먹어요. 그렇게 계속 단어를 잃어버리고 사는 여자다 보니 메모를 하는 거죠.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데 시를 써야 하고 참 힘들어요.
-칸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소감은 어떠셨나요?
=너무 좋았죠. 프랑스 사람들도 <시>를 참 좋아하더라고요. 사람들 눈을 보면 다들 이해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칸에도 수첩 가지고 갔었거든요. 좋은 시가 나올 것 같아서요. 제가 프랑스어를 좀 하잖아요? 사람들 얘기하는 거 다 받아 적었어요. 프랑스어로도 시를 써볼까 해요.
-김희라 선생님과의 호흡도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 두분이 함께했던 영화들이 떠오르니까 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비에 젖은 두 남매>(1971), <누나>(1973)에서는 남매로 나와 윤정희 선생님이 힘들게 뒷바라지했는데 그 은혜도 모르는 못된 동생으로 나왔었죠.
=제가 노출 연기를 한 것보다 김희라씨가 몸이 불편한 캐릭터라는 걸 알면서도 출연 용기를 보여준 게 더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둘이 나쁘게만 나온 건 아니었어요. <저녁에 우는 새>(1982)에서는 강제로 결혼해달라고 귀찮게 하던 남자이긴 했지만 <석화촌>(1972)에서는 연인이었고, <신궁>(1979)에서는 일찍 제 곁을 떠난 그리운 남편이었어요. 세월 참 빠르네요.
-<시>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터뷰 때 감독님도 그러셨던데, 저도 거기에는 대답하면 안될 것 같아요. <시>가 보여주는 열린 결말이나 해석의 다양성을 모두 다 가슴 깊이 느꼈으면 해요. 모두 가슴속에 서로 다른 시 한편 품고 사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쨌건 레드카펫 밟으며 입장할 때 방아타령이 안 나온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날 방아타령 생각만 해도 이런 시… 죄송합니다. 욕이 나올 뻔했네요.
=하하 아니에요. 시… 에서 멈춘 게 어디에요. <시>도 그런 영화예요. 한 호흡 멈추고 세상을 둘러보세요. 여러분 모두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