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톰 크루즈에 가려진 `눈`, <바닐라 스카이>
2001-12-18

<바닐라 스카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데이빗 애담스(톰 크루즈)란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잘 생긴 외모에 카리스마적 매력을 지녔고, 12살 때 부모가 죽으면서 물려준 거대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지만 삶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여자는 하룻밤 섹스 파트너일 뿐이다. 하지만 생일파티에서 친구 브라이언이 데려온 여자친구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매혹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되찾는다. 새롭게 열심히 살아보자고 결심하며 소피아의 집을 나서는 순간 그의 앞에 섹스 파트너였던 줄리(카메론 디아즈)가 나타난다. 그리고 데이빗을 차에 태운 줄리는 자신이 단순한 섹스 파트너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줄리는 죽고 데이빗은 살아난다. 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면서 절망감에 비틀려진 그의 태도는 소피아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놀라움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한가지, 영화는 데이빗의 잠을 깨우는 알람의 목소리 `오픈 유어 아이즈`로 시작해 모든 영상이 사라진 뒤 까맣게 된 화면에서 역시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오픈 유어 아이즈`로 끝을 맺는다. 이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단서다.

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가 제작 주연한 이 영화는 1997년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연출한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다 4년만에 다시 만드는 작품이라 영화를 보며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두 영화의 줄거리는 똑같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악몽이 돼버린 환상 속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당신에게 있어 행복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관객들은 `힘든 현실과 멋진 환상이 앞에 놓여 있다면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생각하며 한동안 영화가 준 충격을 되새김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바닐라 스카이>는 원작에 비해 시각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화려하다. 영화의 첫부분에서 데이빗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대형 광고판만 번쩍이는 타임 스퀘어를 달리며 두 팔을 벌리고 맴도는 장면은 일요일 새벽 타임 스퀘이 40블록을 통제한 채 찍었다. 데이빗의 생일 파티 장면에 나오는 재즈 연주자 홀로그램 등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크루즈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크루즈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사실성은 상당부분 희생된다. 구성도 진실의 반대방향으로 이야기를 계속 몰아가다 막바지에 가서야 `꽝`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터뜨리는 식으로 더욱 센세이셔널하게 바뀌었다. 그 결과 <바닐라 스카이>는 톱스타 크루즈의 매력과 막판 반전 그리고 이어지는 잠시의 혼란스러움이 원작이 지녔던 에너지와 여운을 대신한다. 같은 시나리오를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옮겨오면서 더 많은 제작비와 스타로 무장했지만,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와 메시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감독 카메론 크로우. 18살 이상 관람가. 21일 개봉.

신복례 기자bo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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