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송새벽] 유쾌한 고집불통
2010-06-1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마더> 이후 두 번째 스크린 도전작 <방자전>의 송새벽

“변태, 에잇! 흐흐흐. 또렷해~.” 송새벽은 얼마 전 <마더>에서 함께 작업한 봉준호 감독에게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방자전>에 변학도로 출연한 그를 보고 보낸 문자라 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송새벽은 변태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포승줄로 묶어놓고 엉덩이 때리며 ‘좋지?’라고 묻는 변학도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려면 변태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또 송새벽은 또렷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구사하는, 어딘가 허전한 전라도 사투리로 송새벽은 <방자전>의 방자와 춘향, 이몽룡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배우로서 처음 맡았던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가 영화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잔재미를 선사했다면, <방자전>의 변학도는 송새벽이 더이상 쉽게 지나쳐선 안될 배우임을 일깨워준다. 극단 연우무대를 거쳐 단 두편의 영화 출연작으로 충무로에 이름 세 글자를 확실히 아로새긴 송새벽을 만났다.

# 당신 전라도 사나이 맞지?

제가 고향이 전라도예요. 전라북도 군산. 말투만 들어도 아시겠죠? 저는 표준말 쓴다고 쓰는데, 대사를 듣는 분들은 아, 당신 전라도 사람이지, 하고 단박에 알아차리더라고요. 연극도 고향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형을 잘 따랐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형이 자기 대학에 동아리가 하나 있는데, 저보고 학교 입학하면 같이 다니자는 거예요. 그렇게 극회에 들어갔어요. 첫날 가자마자 휴대용 가스레인지(일명 부르스타)에 전 부쳐서 막걸리 마시다가 입회원서 썼죠. 덕분에 전공인 철학이랑은 너무 멀어져버렸고.

처음엔 사람냄새 나는 분위기가 좋아서 어울렸던 거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지역 극단 ‘사람세상’의 공연을 보고 한방에 훅 가버렸어요. 이만희 선생님 원작의 <돌아서서 떠나라>라는 작품이었는데요, 그전까지 선배들이랑 학생회관에서 볼펜 물고 앙앙앙, 연습하는 거랑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굉장히 매력있었어요. 그때부터 연극이 좋아 사람세상에 입단했다가 군대 제대하고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군바리 정신으로 상경했죠. 서울 올 때 좀 알아보고 왔어야 하는 건데…. 하하하! 극장에서 숙식 생활하고, 고생 좀 하다가 연우무대에 입단했어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면? 못할 것 같아요.

# 변학도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제가 사투리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극단에서 전라도 사람 역할을 종종 맡았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두번 보시고 <마더> 캐스팅 제의를 해주신 연우무대의 연극 <해무>에서는 밀항하는 막내 선원 역할이었고요. <이>라는 공연에서는, 흐흐흐, 또 남원 부사였어요. 이번에 <방자전> 촬영할 때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변학도가 남원 부사더라고요.

아무튼 첫 촬영날은 조금 당황했어요. 승범씨랑 막걸리 마시면서 여자들이랑 자고 싶어서 공부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는데, 다들 너무 웃어서 NG가 많이 났어요. 저는 정극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안 보이나요? 하긴 제가 개인적으로 말 더듬는 설정을 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 뉴스 보니까 제가 ‘죽죠’라고 발음한 걸 ‘&#46273;죠’라고 쓰셨더라고요. 선천적으로 혀가 좀 짧은가, 그 생각도 했었어요. 가장 힘든 장면은 조여정씨 엉덩이를 때리는 신을 찍을 때였어요. 여정씨를 대본 리딩날 보고 그날 처음 만난 거거든요. 그런데 만나자마자 바로 엉덩이를 때려야 하니, 제 마음이 어떻겠어요. 게다가 조여정씨는 여자잖아요. 얼마나 조그맣고 예뻐요. 때리는 장면이 계속 약하게 나오다보니 나중엔 여정씨가 “오빠, 세게 때려도 돼” 이러더라고요. 제가 보기보다 마음이 소심하고 여려서 찍기 정말 괴로운 장면이었어요. 다만 변학도 캐릭터를 연기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니에요. 저는 변학도에 연민이 있어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그가 잘못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해가 가고요. 그래서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한번 더 가자’란 말이 무서워?

연극무대에서 촬영현장으로 옮겨오면서 당연히 걱정을 많이 했죠. 특히 첫 촬영이었던 <마더> 현장에서는 더더욱 긴장했고요. <방자전>은 그보다는 좀 낫다는 느낌이지만,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의 차이가 얼마나 나겠어요. 열한 번째, 열두 번째의 차이라면 몰라도.

아직도 부담스러운 건 재촬영을 요구하는 건데요, 연극은 오랫동안 연습해서 한번에 가는데, 영화는 다음 테이크를 가려면 스탭들이 다들 바쁘게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게 아직도 너무 죄송해요. 김대우 감독님이나 조감독님은 “새벽씨가 아쉽다고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얘기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그게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연극무대에 선 경험이 영화를 찍을 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두달, 세달, 극단에서 인물 분석을 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부분들이 있는 듯해요. 그런 부분들이 영화현장에서 집중할 때 하나둘씩 나오는 것 같고. NG 많이 안 낸다는 말은 좀 들었어요. 흐흐흐.

# 정극 연기만을 고집한다고?

얼마 전에 <해결사>의 촬영을 끝냈어요. 오달수 선배님의 단짝 형사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멀쩡한 역할은 아닙니다. 하하하! 시나리오 리딩 때 또 다들 웃으시더라고요. 설경구 선배는 “너네 둘이 형사 맞니?” 하시고. 저는 굉장히 정상적으로 한다고 하는 건데, 그걸 재미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의 엉뚱한 면이나 어리버리한 기질이 캐릭터에 살짝 묻어나는 걸까요?

6월부터 <제7광구> 촬영에 들어가요. 어떤 캐릭터가 될지는 계속 김지훈 감독님과 얘기하는 중이고요. 어쨌든 저는 이제까지도 정극 연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정극 연기를 할 겁니다. 저에게 잘 어울릴지 모르겠는데, 언젠가는 진한 사랑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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