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에게 첫눈에 반한 조폭 정웅인, 그녀와 식사를 하게 된다. 어색함을 떨치고자 “피클 좀 드시죠”. 세련되고 섹시한 그녀, 국어책 읽는 말투로 대답한다. “전 오이 안 먹어요. 오이 앨러지가 있거든요.” 앨러지? 뚱한 표정의 정웅인에게 또박또박 설명한다. “보통은 알레르기라고 하죠.” 정통 영어발음을 구사하는 ‘콧대있는’ 실력파, 그러나 조금은 ‘맹하고’ 꿈 속에 사는 듯한 영어선생님 이지선. <두사부일체>에서 송선미가 맡은 캐릭터다. “이지선의 코믹한 말투를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를 많이 했어요. 귀엽게도 해봤는데, 테스트 촬영을 해보니 건조한 톤이 좋더라구요.” 그러나 이지선은 교장에게 성추행당한 뒤 사표를 던지는 비운의 여교사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에서 볼 때는 웃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할 때 보니 심각하더군요.”
<두사부일체> 촬영장에서 생긴 일이라면 ‘취중연기’ 한 토막을 빼놓을 수 없다. 정웅인과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장면.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를 열창해야 하는데 몸이 풀리지 않았다. 그전까지 록밴드의 공연장엔 가본 적도 없고, 촬영 전에 기웃거렸던 홍대 앞 록카페에서도 밴드의 공연을 볼 기회를 놓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 애를 쓰는 송선미를 본 감독의 한마디. “술 마시고 해볼래?” 소주 1병을 마시고 격정적인 헤드뱅잉에 다시 도전했고, 바로 오케이가 났다.
지난 96년 SBS슈퍼엘리트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 미니시리즈 <모델>,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일일드라마 <자꾸만 보고 싶네> 등 주로 TV드라마에 출연했던 송선미에게 <두사부일체>는 두 번째 스크린 나들이다. 영화 데뷔작은 98년 <미술관 옆 동물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춘희가 쓰는 시나리오 속 여주인공 다혜 역이었다. 그때 연기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럽다. “영화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회의도 많이 했어요.” 그땐 너무 어렸을까. <미술관 옆 동물원> 찍을 때는 “내가 영화를 찍는구나” 하는 생각말고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두사부일체>를 찍으면서 비로소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쫓겨 스쳐지나가는 TV드라마와 달리 여유를 갖고 고생하는 것도 좋고, 고생의 결과물이 자신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도 좋았다. 연기의 맛, 연기의 멋을 알 것 같다고. 그래서 12월14일은 그녀에게 중요한 날이다. <두사부일체> 개봉날이기도 하고,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 <가스펠>로 난생 처음 무대에서 관객과 조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두사부일체> 촬영 때문에 <가스펠>에 한달이나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요즘 하루 열 몇 시간씩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의 소망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 송선미에 따르면 ‘좋은 배우’란 멋이 있는 배우, 거기에 좋은 인간성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