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cine scope] 달콤, 살벌한 이층 남자
2010-07-27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한석규, 김혜수 주연의 <이층의 악당> 촬영현장
창인 역의 한석규가 쪼그려 앉아 감독의 슛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 옆의 단발머리가 김혜수.

툭 하고 건드리면 뽀얗게 먼지가 일 것 같은 지하실. 앤티크 자기들은 철제 선반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고 빈 박스들은 어지럽게 지하실에 널려 있다. 그곳에 ‘이층의 악당’ 창인(한석규)이 숨어 있다. 창인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른 채 집주인 연주(김혜수)는 탁탁 슬리퍼를 끌며 지하실 계단을 내려온다. 연주의 시선을 피해 창인은 지하실을 황급히, 그러나 몰래 빠져나간다. 연주는 이런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7월14일,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 제3스튜디오에서 <이층의 악당> 25회차 촬영이 진행됐다. 카메라 위치와 동선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몇번의 컷 소리가 났을 뿐, 능숙한 배우들은 NG를 내지 않았다.

김혜수는 사춘기 딸과 함께 살면서 우울증에 밤마다 술을 찾는 연주 역을, 한석규는 연주의 집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그녀의 2층 방에 세든 사기꾼 창인 역을 맡았다. 15년 전 <닥터 봉>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어서인지 한석규와 김혜수의 호흡은 매끄러웠다. 대사나 감정을 주고받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연기를 소화해낸 다음, 상대 배우가 연기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타이밍이 좋았다. 한석규는 “지금은 완전히 리듬을 탔”기 때문에 쉽게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김혜수는 <이층의 악당>이 내겐 ‘일종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두 가지 고민을 했다. 우선 연주는 일상성에 기반한 여자인데, 나는 일상성이 떨어지는 배우인 것 같아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하나는 코미디 연기다. 내가 코미디 센스가 좀 없다. 그런데 손재곤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코미디 연기 안 해도 된다고.”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를 할 필요 없었다지만 <이층의 악당>은 코미디영화다. 손재곤 감독의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을 떠올리면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손재곤 감독은 코미디와 범죄와 로맨스를 한데 섞는 장기를 <이층의 악당>에서도 발휘한다. 물론 “체력”이 뒷받침돼야 장기도 발휘될 수 있다. “고질적인 체력 저하로 밤샘 촬영은 잘 못한다. 4년 동안 <이층의 악당> 대본 쓰면서 생활 리듬이 불규칙해졌는데, 촬영하느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참 힘들다. 어떻게 하면 빨리 찍을 수 있을까, 그런 것 고민한다.” 군더더기 없는 촬영현장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11월 개봉예정.

창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소설가로 위장해 연주의 집에 세들어 사는 캐릭터다. 한석규는 그런 창인을 “진폭이 넓은 인물”로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연주(김혜수)는 앤티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김현옥 미술감독은 연주네 집 지하실을 앤티크숍 창고 같은 느낌으로 표현했다.
손재곤(오른쪽) 감독과 두 배우가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다. 김혜수는 손재곤 감독이 “해맑은 학생 같다. 사람 자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하다. 작품도 그렇다”고 말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