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손님 여기 종점이거든요? 안 일어나세요?
=안돼, 그만! 가지 마 제발. (벌떡 일어나며) 진짜 손만 잡고 잘게 자기야~ 가지 마!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깨웠나봐요. 근데 저도 퇴근을 해야 해서….
=(입가의 침을 닦으며)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저야말로 종점까지 온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몽정을 하다보니, 아니 아니 그냥 꿈에서 저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를 만났죠.
-몸이 허하면 꿈을 많이 꾼다는데 보약이라도 드셔보심이….
=정말 그래야 할까봐요. 그저께 꿈에서도 칼리가리 박사의 교실에서 4교시 추리영역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반장이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아야 한다며 학생들을 방과 후 옥상으로 다 불러내더라고요. 다들 여고생이라 시집을 가야 한다나 뭐라나 자꾸 헛소리를 하기에 그냥 깼어요. 그러다 오늘 꿈에서 너무나 멋진 연인을 만났는데 그만 종점이라. 이럴 줄 알았으면 영원히 깨지 않게 2호선을 탈걸 그랬나봐요.
-저는 만날 거위의 꿈밖에 안 꿔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요. 중간에 깨도 다시 이어서 똑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모르니 다시 눈을 감아봐요.
=두눈을 감으면 꿈처럼 다가오는 너의 모습을 내 마음 깊은 곳 새하얀 캔버스에 그려보네. 너의 웃는 모습을 그려보았지, 화난 모습 우는 모습 차례차례 그려보았지. 이런 그림들이 추억이 되고 그리움으로 변해버릴 때, 나는 꿈에서 깨어나지만 쓸쓸한 바람만 스쳐가네.
-하긴 원하는 꿈을 시나리오대로 꿀 순 없으니까, 그래서 꿈인 거죠. 그런데 정말 <인셉션>을 보니까 꿈에서 거리가 포개지고 없던 길도 생기고 너무 멋지더라고요.
=어젯밤 꿈에 나도 보았죠. 하얗게 뻗어나가 있는 길 옆의 그 거리를. 언제나 가슴으로 그리던 곳을 난 꿈을 타고 찾아낸 거죠. 어지럽던 내 사랑도 이제는 하늘 저 멀리 구름 위로 날려버린 채 숨가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그곳은 내 꿈에서 본 거리일 거야.
-부럽네요. 사실 저도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죠. 조그만 나의 꿈들을 풍선에 가득 싣고요. 이 자리를 빌려서 꿈속에서 만난 여인에게 못다한 얘기라도 하시죠.
=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 모를 너를 나는 못 잊어.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지난 꿈 스쳐간 연인이여. 나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봐, 나 눈 못 뜨고 그대를 보네. 물거품처럼 깨져버린 내 꿈이여, 오늘 밤에 그대여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