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마감 중임에도 무리까지 해가며 시사회를 찾았던 건 거대한 물음표 때문이었다. 그 물음표는 여러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두번씩이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릴 만큼 표현이 강하다는데 대체 어떻기에, 라는 궁금증 말이다. 결론적으로 표현 수위는 무척 세다. 그렇다고 두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뭐, 몇몇 장면에서는 눈을 가리긴 했지만). 이전 버전을 보지 못해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시신을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이나 인육을 먹고 개에게 주는 장면 등이 덧붙여져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을 것 같다. 이미 <아저씨> 시사회 직후 “<악마를 보았다>가 <아저씨>보다 100배 세다”는 말을 들었고, 영화 안에서도 이병헌이 ‘약혼녀가 당한 이상으로 복수하겠다’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는 터라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다시 꺼낼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판정은 몇몇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문제삼은 듯한 느낌이긴 하다.
이 영화를 좋게 본 쪽이건 끔찍하게 본 쪽이건 동의하는 지점은 김지운 감독이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일 것이다. 김지운 감독이 극단을 추구한 결과가 영화미학적 성공을 의미하는지, 대실패를 의미하는지는 이후 좀더 세밀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동안 한국영화가 극단적 표현에 인색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시도는 나름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를 평가하는 데 있어 올리버 스톤이 했던 다음의 말은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내가 극단의 힘을 믿는 것은 극단 속에서 인간은 더 거대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팽창함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본다는 얘기다.”
또 하나 개인적 관심은 요즘 들어 한국영화의 표현 수위, 특히 폭력의 수위가 왜 높아지고 있는가이다. 영화산업 내적으로 본다면 <추격자>의 성공이 만들어낸 ‘잔혹 스릴러 신드롬’이 여전히 작동 중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의 유행과 경향을 사회 흐름과 연관짓는 일은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그런 무리수라도 던지게 만든다. 그러니까 최근의 영화가 자아내는 과도할 정도의 폭력성과 광기가 지금 한국의 어떤 집단심리적 풍경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이야기다. 절절한 삶의 요구가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부러져 나가는 이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2010년의 한국영화는 복수와 응징의 폭력이라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군사정권 시절, 무협지 속 ‘판타지 액션’으로 난세를 구한다는 은밀한 꿈을 꿨던 나로서는 ‘리얼 잔혹액션’으로 세상에 임하려는 최근 한국영화의 꿈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