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 자기 복제의 나르시시즘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 장르영화의 한계를 성토하는 견해를 제출한 입장에서, <아저씨>의 출현은 반갑다. 제목이 풍기는 투박함과 달리 이 영화는 장르의 관성을 자기 동력으로 삼아 발전하는 이야기다. 장르영화로서 <아저씨>의 가치는 종래의 장르 관습에 편승하고 때로는 대결하는 변용에서 찾아진다. 누차 얘기되었던 <레옹>이나 <테이큰> <맨 온 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드라마 전개는 새로운 구석이 없지만,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스타일의 다채로움과 텍스트의 짜임새 속에서 의미를 얻는 이미지의 세공, 계산된 편집의 리듬, 상투적인 설정 안에 캐릭터의 복잡성을 녹이는 연출이 능란하고 유창하게 구사된다. 여기에 흡입력있는 연기를 보여준 원빈의 스타 이미지를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여성 관객의 절대적 지지를 끌어내며 종지부를 찍는다. 이는 이정범의 데뷔작 <열혈남아>에서 보다 느슨한 방식으로 실현되었던 개성이지만, 자기 완결적인 장르 스타일로 승화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던 전작에 비해 <아저씨>는 장르 스타일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성공적인 장르의 화용론
이정범이 ‘아저씨’로 호명되는 주인공 태식을 내세워 제공하는 이야기는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익숙한 것이다. 가족의 부재라는 비극적 상실의 메타포 위에 사회 안전장치의 부재로 인한 공동체적 이상의 파괴 상황을 포개놓은 이 영화는 홍콩 누아르와 마초적 남성 세계를 감싸고 도는 특유의 공기를 낯익은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르 연출가로서 이정범은 범죄 스토리에 능숙하며, 범죄적 세계라는 특수한 풍정을 자연스럽게 환기하는 대사, 멜로드라마적인 무드와 둔탁한 액션, 남성 인물들간의 미묘한 심리에 대한 복합적이고 정교한 탐사를 장기로 하고 있다. 장르 관습의 화용론이라는 측면에서 이정범의 영화는 완고한 일관성을 보이는데, 이렇듯 전형적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장르 스타일에선 몇 가지 특이점이 발견된다. 이와 관련해 버려진 소녀와 옆집 아저씨의 의사(擬似) 부녀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서브 플롯은 서로를 추적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성 캐릭터들간의 관계이다. 양식적으로 <아저씨>는 냉혹한 세속의 타락상 속에서 사라져가는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애상적 동경을 구성적인 미장센과 편집, 공들인 촬영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대중 상업영화의 생리를 철저히 연구한 결과로 보이는 <아저씨>에 제기된 비판 중 하나는 원빈이 분한 캐릭터 태식을 향한다. 비판의 요체는 그토록 멋지고, 싸움 잘하고, 비밀이 많은 옆집 아저씨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저씨’라는 단어의 투박한 어감과 희대의 청춘 아이콘 원빈의 스타 이미지 사이에 놓인 어쩔 수 없는 간극에서도 이런 저항은 비롯된다. 단순히 원빈이 조각 같은 외모의 스타이기 때문일까? <아저씨>의 태식은 모든 면에서 원빈의 매력 이상을 전시하는 인물이다. 상대를 불문하고 단숨에 제압해버리는 신출귀몰한 무술 솜씨와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 애정의 대상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애정, 온후한 표정에 어린 고독은 판타지 만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아저씨>의 맥락은 이런 외양보다 풍요롭다. 표면적으로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한 남자가 자신의 근원적 트라우마(부재하는 가족)를 건드리는 존재를 만나 교감을 이루며 이를 통해 부정한 세계의 타락상을 교정하고 참다운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를 엮어가는 실이 되고 있다. 여기에 ‘착취의 카르텔’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범죄조직과 이를 수수방관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이정범은 암시적으로 현실 세계의 맥락을 끊임없이 환기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실상 극사실적으로 보이는 영화의 묘사가 존재론적으로 확실한 현실을 제시한다고 믿는 것은 어리숙한 생각이다. 이와 반대로 <아저씨>는 오늘의 현실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한 허구적인 상황을 설정하면서도, 실상은 사나운 시대의 탁류 속에서 쓰린 상처를 입게 되는 이들(주로 아이들이 희생자로 그려진다)을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부박한 현실의 단면을 드러내려 한다.
불합리하고 모순이 많은 현실을 응시하는 이정범의 눈은 한 군데 고착되어 있지 않다. 본분을 방기하는 국가권력의 무능을 암시하는 설정들이 단속적으로 제시되는데, “삼청교육대 세워서 싹 다 잡아 처넣어야 나라가 산다”고 내뱉는 오명규 사장(송영창)의 말이나, “한국 놈들은 꼭 닥쳐야 일을 해요. 올림픽해야 다리 놓고…” 운운하는 종석의 푸념, 태식의 신고에 무감한 경찰의 무신경, 무엇보다 이 거대한 착취의 네트워크를 가능케 한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병풍처럼 깔려 있다. 그러므로 소미(김새론)를 구하기 위한 태식의 오디세이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풍경들을 관통하는 탐문과 각성의 과정으로 묘사된다. 유괴와 폭력, 착취, 공권력의 직무유기, 마약, 고문, 신체훼손, 살인, 장기밀매, 외설 등 극악한 범죄의 풍조는 무고한 아이들이 납치되어 지하 범죄에 유용되는 무망한 현실에 대한 내밀한 공모의식을 부추긴다. 태식의 과거가 국가권력의 필요에 의해 제조된 인간병기였다는 것이나, 그러한 인물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가족을 상실했다는 것, 그리고 다시 한번 동어반복적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희생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대물림과 악순환을 멈추게 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는 설정 등에서 이런 암시는 두드러진다. 중요한 것은 <아저씨>의 다각적인 현실 환기력이 철저하게 장르의 규범적인 양식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아저씨>에서 이정범의 재능이 일정한 성취에 달하는 것은 참신한 장르의 부조(浮彫)와 관련해서라고 여겨진다.
어머니와 아들(<열혈남아>), 아버지와 딸(<아저씨>)의 유사 가족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족 멜로드라마의 지류로 볼 수 있는 이정범의 두 영화는 성차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 멜로드라마의 영역을 한뼘 넓히는 데 기여했다. 전체가 장르영화 특유의 픽셔널한 감각으로 채워진 <아저씨>의 설정들은 죄 정도를 벗어난 과잉의 산물이다. 리얼리즘의 잣대로 판단하자면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는 과잉은 대중영화가 제공하는 소비적 판타지라는 차원에서는 장르에 통달한 스타일리스트의 재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확인시킨다. 원빈이 연기하는 태식과 같은 아저씨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미와 아저씨간의 유사 가족 관계 또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들이 쌓아가는 우정이 현실적이지 않다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지극히 양식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과묵한 용병 킬러 람로완(타나용 웡트라쿨)의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해 이정범이 이룬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는 주, 조연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배우들로부터 활기찬 연기를 끌어냈다는 점에 있다. 훌륭한 감독은 인물의 복장이나 장식, 말버릇, 일상의례와 같은 너절하고 범속한 삶의 양식 속에서 현실을 암시할 줄 안다.
대칭과 역설의 캐릭터
<아저씨>에서 캐릭터를 묘사하는 이정범의 주요 아이디어는 대립적인 성질을 한몸에 지닌 역설적인 인물의 구현에서 찾아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르적 인물형의 구현으로부터 이 영화를 관류하는 핵심원리가 도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원리를 체현한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주인공 태식이다. 검은색 정장 슈트, 길게 늘어뜨린 머리와 맵시있게 깎은 짧은 머리를 오가는 헤어 스타일을 포함해 원빈이 연기하는 태식은 외모와 패션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연하다. 그는 한국 범죄 장르에서 일반화된, 범죄적 세계에 몸을 담근 우락부락한 터프 가이가 아니라 조각 같은 외모에 멋진 슈트를 걸친 과묵한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있다. 시종일관 여심을 홀리는 이 동안의 아저씨 배우는 상실한 가족을 연상케 하는 옆집 소녀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로맨티스트적인 면모와 그 수려한 미모를 배반하는 야수적 살인병기의 잔혹성을 한몸에 지닌 역설적 존재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강철 같은 투지의 결정체이자 물욕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낭만화된 인간애의 아이콘인 것이다. 지난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수년을 잠행해온 유약한 정신성과 모골이 송연해지는 폭력의 주체로서 강렬한 물질성의 대립.
<아저씨>에서 대립적 특성을 통한 캐릭터의 구현은 침묵과 폭력으로 규정된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태식과 동류의 인간으로 묶을 수 있는 람로완에게서도 나온다. 소미를 제외한다면, 람로완은 태식과 가장 깊은 교감을 이루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의 관계는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상호 반영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 적대적인 관계의 캐릭터이며, 동남아 용병 출신이라는 물리적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두 인물의 교류는 먼 거리를 두고 이뤄진다. 내면적으로 가까우며 외면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부딪히는 몇몇 시퀀스들에서 대립적인 성질의 공존은 가장 확실하게 표현된다. 여기에 <아저씨>의 특이점 중 하나가 있는데, 태식과 람로완이 부딪히는 액션장면들은 ‘액션’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는 사실이다. 범죄 세계의 일원들로부터 ‘독고다이를 좋아하는 월남 군바리’쯤으로 치부되는 람로완은 출신성분과 세계관, 심지어 행위의 동기가 묘연한 인물로 그려진다.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 온 동남아 이주노동자처럼 범죄 조직의 하수인으로 사는 그는 잔학한 암수의 귀재이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인간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소미의 엄마가 종석에게 헤어 드라이기로 고문당할 때 소미의 눈을 가려주는 것도, 전당포에서 태식을 처음으로 맞닥뜨렸을 때 종석의 살해 명령을 거부하고 인간적 호의를 베푸는 것도, 안구를 적출 당할 상황에 처한 소미를 구제하는 것도 람로완이다. 말하자면 그는 범죄 조직 안에 암약하는 차태식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모든 면에서 람로완은 악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태식의 얼터 에고이다. 두 사람은 군인 출신이며, 말수가 적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하기 힘든 외톨이(단독행동을 즐기는 람로완의 기질)이다.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 이미지로서 태식과 람로완의 관계는 <아저씨>의 핵심 설정 중 하나이다. 한 사람을 둘로 쪼갠 그들의 관계는 심지어 태식과 소미의 의사 부녀 관계만큼이나 주의 깊게 설정되었다. 이를테면 태식과 람로완이 마주치는 장면들은 거의 예외없이 대칭적인 카메라 구도와 앵글, 동일한 사이즈의 숏, 합을 맞춘 시선의 교환으로 연출된다. 전당포에서 만나는 첫 대면과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의 두 번째 대면, 그리고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는 만종 형제의 아지트에서의 세 번째 대면은 모두 대칭구도와 평행적인 숏의 교차, 상호 응시하는 시점숏로 짜여진다.
특히 폭력의 강도라는 측면보다 캐릭터의 스타일화를 세심히 고려한 만종의 아지트 시퀀스에서 이런 특성이 여실해진다. 가속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현란한 편집에 의해 조종되는 이 시퀀스는 근접 숏과 파노라마적인 숏을 적절히 배합해가면서 액션의 안무를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태식과 람로완의 대결은 동작과 제스처가 아니라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전까지와 달리 사운드를 제거한 무음의 액션을 전시하면서 이정범은 격렬한 싸움의 와중에 찰나의 정적을 연출한다.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찍었다는 태식과 람로완의 교차 시점숏은 흡사 거울을 보듯 서로의 모습을 응시하는 이미지들을 연쇄적으로 이어붙이고 있다. 시야의 범위를 한껏 좁힌 프레이밍을 통해 이정범은 캐릭터의 내면이 슬쩍 드러나는 육체적 제스처들을 우세하게 만들면서 두 사람을 감싼 정신적 교류와 물리적 갈등을 한 장면 안에 녹여내고 있다.
<아저씨>에 널리 끼어든 이야기들은 연출자가 대중영화의 생리와 현실의 영화적 가공 사이에서 얼마나 부심했는가를 짐작게 한다. 다소간 허풍이 동반된 액션장면과 비현실적 공간의 미장센은 이 영화의 약점이 아니다. 격렬한 액션장면 뒤에 펼쳐지는 고요한 뒷골목 풍경, 악행의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환락의 공간들, 조금씩 살을 붙여가며 고조되는 캐릭터의 내면에 대한 탐사 등 의미와 내러티브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요소들의 조합이 둔중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범죄드라마의 눅눅한 기운을 시종일관 유지하며 장르의 쾌감을 비등점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아저씨>는 실상 무력한 국가권력을 대신해 악을 일소하는 영웅적 개인의 활약을 그린 액션영화이다. 동시에 홍콩 누아르와 마이클 만 유의 남성 판타지를 강력한 서브 플롯으로 깔아둠으로써 지금은 추방되고 없는 실종된 가치를 환상하게 만든다. <아저씨>에서 주목할 것은 세속의 삶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가치를 장르의 장력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관습에 대한 방종한 유용이나 자기 복제가 횡행하는 근년간 한국영화의 타성을 극복하는 <아저씨>가 장르와 작가의 욕망이 협상을 벌이는 텍스트로서 지닌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